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4월30일】 근 몇 개월 이래,명혜망에서 중공 악당의 지시 하에 악인, 악경들이 많은 동수들을 협박하고, 납치한 소식을 보았다. 어느 한 지역에는 한 번에 몇 십 명이나 납치되었다. 감옥과 노교소에서 참혹한 시달림을 받고 있는 동수들, 심지어 박해받아 치사하는 악랄한 사건도 거의 매일 발생하고 있었다. 이것이 모두 악당이 소위 “올림픽”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기치 하에 진행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악들이 이미 최후 발악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다.
사악들의 발악은 이상할 것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독약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보고 이러면 안 된다고 하여도 안 되는 것이다. 이들은 시시각각 모두 우리에게 곤란을 조성하여, 교란하고, 박해하면서 마난(魔难)을 주고 있다. 이들은 바로 우리를 위해 왔으며, 우리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바로 이런 환경에서 수련하면서 사람의 모든 집착을 버리고 대법에 동화되어 중생을 구도하면서 수련인의 과위를 성취해야 한다. 문제는 바로 우리 수련인들은 이 도리를 모두 잘 알고 있다. 어떤 생명이든 모두 이 대법을 위하여 존재하며, 어떠한 생명이든 모두 신의 길로 가는 대법제자를 박해할 수 없다. 그러나 1999년 7월 20일 이래 사악, 사당은 동수들과 대법을 박해하기 위해 사나운 바람과 거대한 파도를 얼마나 일으켰는지 모른다. 일부 동수들은 오늘날까지 참혹한 박해를 여전히 계속 받고 있다. 이 문제는 확실히 깊이 생각해야할 가치가 있다. 정법이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는 오늘까지 무엇 때문에 사당이 아직까지도 능히 우리 동수들을 박해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우리가 어느 방면에 제대로 하지 못했는가? 우리는 반드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문제 상에서 나는 오랜 한시기 머리가 청성하지 못하였다. 수련생이 납치되면 마음이 긴장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워, 동수들의 안전을 위하여 빠른 속도로 소식을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방비할 수 있게끔 하였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 방법은 속인들의 관념에서 생각하고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이것은 구세력의 안배를 철저히 부정하지 못했을 뿐더러, 도리어 사악을 도와주는 작용을 하였다. 후에 반복적으로 사부님의 각 시기의 설법과 경문을 보고, 동수들과 부단히 교류하면서 한 가지 도리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법의 각도에서 사당이 조성한 각종 교란과 마난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나는 많은 것을 분석하고 깨달았다.
나는 이 문제에서 깨달은 바를 동수들과 교류하면서 타당하지 못한 곳은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린다.
본래 아주 높은 층차의 공간에는 모두 두 가지 부동한 성질의 물질이 존재한다. 아래로 내려오면 올수록 이 두 가지 부동한 성질의 물질은 더욱 서로 대립된다. 여기서 상생상극이 형성된다. 이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면, 곧 선과 악이 존재함이 표현된다. 많은 좋은 일을 하면, 바로 많은 악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수련인은 부동한 층차의 수련 중에서 크고 작은 부동한 교란과 마난이 나타난다. 만약 한 대법 수련자로서, 수련 과정에서 아무 일도 없다면, 교란과 마난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모두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수련에서 정과를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련 중에서 모두 많은 괴로움, 곤란한 것, 교란, 마난 등과 부딪치게 된다. 진수제자로 놓고 보면 이것은 모두 좋은 일이다. 여기에 그 무슨 공포와 두려움을 논할 가치가 있는가? 당신은 어떤 마음이 움직였는가?
당연히 교란과 마난이 왔을 때, 부동한 수련인에 따라 표현되는 상태도 역시 가벼운 것과 심한 것으로 부동하다. 그러나 가볍거나 중하거나를 막론하고, 사부님의 제자로 놓고 보면 모두 당신들에게는 무슨 위험이 생길 수 없다. 이 역시 하나의 이치가 관통하기 때문인데 바로 사(邪)는 정(正)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마(魔)는 영원히 도(道)를 초월할 수 없다. 사악의 발광은 최후 일종 표현 형식이다. 사당의 발광은 고립무원한 곤경에서 해탈할 방법이 없으니, 일종 마지막으로 쓰는 고약한 수법, 책임을 타인에게 옮겨놓는 것이다. 이것은 세인들을 속이는데 불과하지만 진수제자에게는 아무런 작용도 하지 못한다. 사람은 신을 좌우지 할 수 없다. 수련인은 근본 이들을 염두에 두지 않으니, 마음은 마땅히 움직이지 않는다. 사부님은 또 이러한 법리를 말씀하셨다. “그것은 우리가 연공하는 데에 무슨 좋은 점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이런 형식을 취해 당신을 교란함을 허용하지 않는다.”(《전법륜》〈제6강〉) 무릇 교란이 왔다면 당신과 일정한 인연 관계가 있는 것이다. 당신이 진정으로 수련한다면 이 관을 꼭 넘길 수 있다. 그러나 특수한 큰 난이 왔을 때는 오직 사부님께 청하면 사부님은 당신을 위하여 고려할 것이다. 나는 늘 갑자기 어지럼증으로 졸도하는 상태가 나타났다. 한번 졸도하면 몇 초이다. 한번은 몇 분이었는데 모두 속인들의 그런 상태이다. 나는 문장 편집일을 한다. 이러한 교란을 어떻게 놔둘 수 있는가? 그래서 나는 사부님께 “사부님! 이 난을 제자는 능히 감당하고 이 관을 넘길 수 있는데, 오직 시간의 필요로 나의 자료 편집에 영향을 줍니다. 사부님 도와주세요” 라고 청하였다. 그 후로는 이런 현상이 한번도 없었다.
대법은 매개 생명에게 모두 공평하다. 생명의 차이, 시간과 지점을 불문하고 모두 이 새로운 생명을 위하여 그의 무량한 신통이 나타난다. 무한한 법리를 당신이 능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당신의 요구에 따라 한다. 어떠한 시간을 막론하고, 어떤 지역을 막론하고, 당신이 모두 우주의 특성 쩐싼런에 따라 수련하는 대법제자라면, 당신은 하늘을 떠인 독존(獨尊)의 신이다. 사악한 생명과 부딪친다면 도망가려고 해도 이미 늦는데, 어디서 감히 당신을 박해할 수 있단 말인가?
충칭시(重庆市) 여자노교소에서 동수 일동이 편지를 위탁해서 보내왔는데, 여기가 아주 사악하여 모두들 그들을 도와 그들을 박해하는 사악한 흑수, 썩은 귀신들을 제거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곳의 동수들이 감당하는 고난에 너무 가슴 아팠다. 매개 동수들, 특히 충칭시의 동수들은 모두 응당 발정념할 때 충칭시 여자 노교소의 사악, 흑수, 썩은 귀신, 구세력을 제거해야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를 막론하고 거기가 얼마나 사악하든지, 모두 그들의 배치에 부합하여 순종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철저히 부정해야 한다. 감옥이나 노교소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수련인이지 살 길을 강구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감옥과 노교소가 수련인이 있을 곳이 아니라면, 대법제자는 거기로 가면 안 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수련의 길을 배치하는 중 이러한 것들은 전혀 없는 것이다. 거기로 가는 것은 우리들의 치욕이다. 그러나 각종 인소로 하여 사악에게 납치되어 거기로 가게 된 것은 자신이 그 길로 가게끔 조건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여기서 자신을 다시 수련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마치 만길 심연 속에 떨어진 것과 비슷하다. 이 일체는 마치 사악의 배치에 따른 것으로 되어 그들에게 마음대로 유린당하여, 정념정행이 없어지고 정체가 없어졌다. 동수들이여, 우리는 속인들이 말하는 그 무슨 동일한 숲의 새들처럼 “큰 재난이 오는데 임박하여 각기 날아가는”그런 것이 아니다. 감옥과 노교소가 수련인이 있을 곳이 아니라면 그곳은 사악들이 악행을 저지르는 장소이다. 우리 수련인의 목표는 수련이며,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당신이 거기에서 어떻게 당신의 서약을 실천하며, 어떻게 당신이 사전의 큰 염원을 완성할 수 있는가? 절대로 당신이 거기로 갔다하여 수련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도태되는 것은 모두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건대 충칭의 여자 노교소가 얼마나 사악하다지만, 그들은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 죄행을 조사하는 국제조직조사단을 무서워하고 있다. 불법으로 파룬궁 수련생을 감금한 이 감옥의 4대대는, “육심(育心)학교”로 변하였으며, 전국의 “선진회사”로 불렸다. 관람하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자기들이 아주 아끼는 것처럼 분장하였다. 실질은 그들이 사람들에게 보일 수 없는 형벌 도구는 모두 치워버리고, 각종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신체에 벌을 주는 식의 혹형으로 동수들을 박해하였다. 이런 신체상의 형벌은 험악하여, 박해받은 사람은 어떻게 다쳤는지 말을 못한다. 구체적으로 상처가 어디에 있는지, 표면에는 붉지도 않고, 부은 데도 없다. 그러나 신체 속은 도리어 참을 수 없이 아프다. 퉁량이(桐梁一) 수련생은 혹형을 받은 후 그 이튿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였으며 말을 하지 못하였다. 노교소에서는 자기들의 책임이 두려워 급히 그를 집으로 보내었다. 그의 신체 표면에는 상한 흔적이 없다. 이것을 그들이 감옥의 의사가 마음대로 부르는 병이름 탕쏴이료스(搪塞了事)로밖에 부를 수 없다. 여기는 모든 혹형을 모두 채용하였다. 예컨대 강도 높은 노예식 노동에 투입시키고, 작은 방에 가두고, 강제적이고 야만적인 세뇌, 바오자(包夹)의 인간성이 없는 감독, 형기를 늘이기, 각종 체벌(군인들이 앉는 자세, 군인들이 선 자세, 오리걸음, 늙은소 수레끌기, 호랑이처럼 엎드리기, 서서 벌서기, 달리기, 구정물 먹이기, 혈위를 찍는 식으로 서로 엉키는 동작 등) 등은 모두 정신상에 공포를 주어 사상을 교란하고, 당신의 정신으로 하여금 붕괴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당신으로 하여금 마음을 조용히 하지 못하게 하고, 사념(思念)으로 돌아오기 힘들게 되여, 강제적으로 당신을 낮은 층의 생명 상태로 밀어 버린 후, 득의양양해 하며 당신을 마음대로 박해하고 있다. 이것은 얼마나 음험하고 악랄한 수단인가?
그러나 사악이 얼마나 사악한지를 막론하고, 모든 이 일체는, 우리에게 마난을 조성한 정도가 크고 작음에 따라 부동할 따름이다. 이들도 우리들의 수련상태에 근거하여 움직인다. 우리도 역시 이것을 좋은 일로 변화시켜야 한다. 비록 이 지역이 아주 특수하더라도, 아주 음침한 공포로써 속인들에 대해서는 가능하게 아주 유효하지만, 수련인에 대해서는 마땅히 아무런 작용도 일으키지 못해야 한다. 수련인은 집착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생사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난이 큰가 작은가 여기에는 또 얼마나 큰 구별이 있는가? 만약 당신이 법리가 명확하지 못하면, 머리가 청정하지 못하여 시종 여기는 바로 염라대왕궁전, 지옥문으로 여기고, 매일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고 있다. 이것은 정말로 당신이 사악에게 놀람을 당한 것이 가능하다.
나는《이웃을 청해 자리를 권하다(请与我比邻而坐)》이 한 수의 가사를 정말로 잘 섰다고 느낀다. 교관, 감옥장, 바오쟈(包夹)는 대법제자들이 서로 간에 도와주지 못하게 하며 서로 말도 못하게 한다. 거기는 바로 조용한 곳이다. 옆 사람에게 자리를 권하고 두 눈을 살며시 감고 역시 우리의 마음속의 목소리를 높이 외치고 싶다. 우리는 강대한 정념으로 혹형과 능욕, 일체 박해를 제지해야 한다. 거기의 모든 수련인은 모두 능히 정념정행 하여, 견정불이한 정체를 형성했다면, 거기의 사악들이 아직 존재할 수 있는가? 박해는 일찍 없었을 것이다.
수련인에게 교란, 마난이 오는 것은 원인이 있는 것이다. 원인은 일정하게 자신과 각종 인소의 하나하나가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수련인은 각자 부동한 수련 상태에서 심성관, 병업관, 각종 교란과 고험이 부딪치는 것, 가족과 친우와의 관계, 사회상의 관계, 수련을 시작하면서부터 이러한 것들은 끊임없이 나타난다.
사부님의 2000년10월21일《미국서부법회에서의 설법》에서 “하나의 수련인은 수련 과정에서 줄곧 최후의 일보까지 모두 수련자에 대한 근본적인 고험을 떠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기실 바로 사부님이 이것을 이용하여 우리들의 심성을 수련시키는 것이다. 만약 능히 당신들이 교란과 마난이 왔을 때, 담담하게 움직임 없이 냉정히 안에서 그 원인을 찾고 결심하고 그것을 깨끗이 씻어 버린다면 하나하나씩 수련해 올라갈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제고이다. 이렇게 바로 한걸음한걸음 실속 있게 자신을 수련하고 3가지 일을 잘하여,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며, 당신의 서약을 실천하고, 사전의 큰 염원을 완성하여야 한다.
문장완성: 2008년 4월3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8/4/30/1775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