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4월 13일】 다른 공간의 사악한 생명은 대법제자에게 업력과 집착이 있다는 구실로 우리 대법제자들을 박해하는데 형식은 다양하다. 이를테면 경찰의 불법적인 체포, 악인의 신고, 직장의 탄압, 가족의 간섭 등인데 또 한가지는 바로 대법제자 신체에 대한 박해이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정법시기 신체의 병업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 어찌 제자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팔 다리를 쓰지 못하게 하여 세 가지 일을 하지 못하게 안배하실 수 있겠는가? 이것은 사악의 박해가 분명한데 나는 이 사악한 생명은 바로 다른 공간의 신체 그 부위에 누워있는 영체라고 본다.
“우리 가장 보편적인 것을 말하자. 사람이 어디에 종양이 자랐거나, 어디에 염증이 생겼거나, 어디에 골질증식이 생겼다는 등등이다. 다른 공간에는 바로 그곳에 한 영체가 엎드려 있고, 하나의 아주 깊은 공간 중에 한 영체가 있다.” (『전법륜』)
많은 동수들이 알다시피 경찰에 직면했을 때, 다른 공간의 사악한 생명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경찰의 요구, 명령과 지시에 협력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 신체에 대한 이 영체의 박해에 대해 어떤 동수들은 그다지 똑똑하지 못하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라! 우리 신체의 어느 한 부품이든 모두 우리 자신의 것이다. 이를테면 당신의 손, 당신의 다리, 당신의 입은 당신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곧 하는데 이는 그것이 당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 신체 부위의 일부가 당신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건 분명 다른 공간의 영체가 당신 신체의 부품을 조종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팔을 쓸 수 없고, 다리가 길을 걸을 수 없거나, 혹은 어느 부품에 엄중한 병적 상태가 나타나는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주의식이 반드시 청성해야 하는 바 신체 부품에서 표현되는 이 영체의 어떠한 형식에도 협력하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면, 병적 상태가 나를 누워 있으라고 한다면, 나는 이는 다른 공간의 사령(邪靈)이 나더러 누우라고 하는 것임을 알고 있기에 나는 절대 눕지 않을 것이며, 내가 무엇을 해야 하면 무엇을 할 것이다. 병적인 상태가 나더러 먹지 못하게 한다면 나는 너의 말을 듣지 않고 나는 곧 먹을 것이다. 나의 입, 나의 위장은 내가 주관한다. 설사 먹고 토할 지라도 나는 제대로 먹을 것이다. 만약 네가 팔다리를 쓰지 못하게 한다면 너 영체가 내 몸에서 일으키는 표현을 나는 듣지 않겠다. 나는 내 팔과 다리를 그것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게 할 것이다.
아마 어떤 수련생은 “나의 팔다리가 분명히 움직일 수 없는데 당신이 어떻게 움직이게 할 수 있는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이 당신의 팔다리를 쓰지 못한다고 승인한다면 그것은 다른 공간의 영체가 당신 몸에서 표현하는 형식을 승인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당신은 그 영체가 당신 몸에 오르게 하는 것과 같은데 그렇게 되면 그것은 당연히 당신 몸에 남아서 떠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 이곳에 한 수련생이 있는데 표현 형식은 폐에 병이 있는 상태가 나타났다. 두 달을 입원해도 낫지 않았고, 나중에는 밥도 먹을 수 없었다. 후에 동수들과 교류하고는 곧 밥을 먹기 시작했다. 먹고 토할지라도 다시 먹었다. 결국 며칠 후부터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의사도 괴이하게 여겼다.
『명혜주간』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한 수련생은 옷 한 벌을 입는데 네 시간이 걸렸다. 가족들이 도와주려 해도 단호하게 동의하지 않았다. 며칠 후 그는 곧 바로 정상이 되었다. 또 한 수련생은 포륜(抱輪) 동작을 연마할 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모두 복전포륜(腹前抱輪) 한가지 동작뿐이었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도리어 막대한 곤란을 극복하면서 네 개의 포륜 동작을 연마했다.
또 일본 무사로 전생(轉生)해 해변에서 산 새우를 먹었던 수련생은 꿈에 사부님 법신이 그더러 아래로 삼켜 보라고 했다. 동수의 표면 형식은 목구멍으로 아예 삼킬 수 없었다. 나는 이것이 바로 다른 공간의 영체가 신체상에서 표현되는 형식에 협력하지 않는 것임을 깨달았다.
또 한 가지를 설명하자면, 이 도리를 알고 깨달았다고 하여 오늘 이렇게 하면 오늘 혹은 즉시 팔다리가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는 않다! 바로 그 네 시간을 들여 옷을 입었다는 동수처럼 가령 어떤 수련생은 4분, 혹은 한 시간, 혹은 세 시간 반이 걸려도 아직 이 옷을 입지 못한다. 그가 스스로 옷을 입는 것을 포기하고 더 이상 노력하지 않으려는가?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면서 옷을 입을 수 없다는 이 신체적 박해를 묵인할 것인가? 심지어 5시간, 6시간이 걸려 이 옷을 입거나 심지어 하루나 이틀이 걸릴지라도 여전히 견지해 나갈 수 있는가? 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더는 신체에 무슨 변화가 있을지 집착하지 말아야 하며, 시시각각 신체에 강요된 박해를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 반박해(反迫害) 중에서 자신을 실수(實修)하는 것은 말로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며 행위상에서 진정으로 할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린 것”이며, 사부님께서 다른 공간의 영체를 제거해 주실 것이고, 이쪽의 신체 역시 좋아질 것이다.
아래에서 나는 몸에 병적 상태가 나타난 동수들이 안으로 찾는 문제를 말해 보고자 한다. 나는 법을 배우기 전에 우피선(牛皮癬)을 앓았다. 개인 수련 단계에 3번 소업했는데 최후에 팔과 머리카락 속에 조금 남아 있었다. 그때부터 “나에게 아직도 우피선이 조금 남아 있다”는 이 일념이 시종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정법수련의 초기 몇 년 동안 늘 언젠가는 꼭 나을 거라는 생각만 했다. 아울러 나았나 하고 늘 거울을 들여다보곤 했는데, 마음속으로 고집스레 생각하곤 했다. ‘이 며칠 내가 연공도 아주 잘했고 세 가지 일도 아주 정진했는데 우피선이 왜 아직 낫지 않을까, 마땅히 좋아져야 하는데?’
2006년 어느 날에 와서 나는 갑자기 우피선 이 문제가 시간을 너무 오래 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왜 늘 이 모양인가?’ 이 문제에서 나는 안으로 찾기 시작했다.『도법(道法)』경문을 외우는 것을 통해 나는 내가 장시간 우피선 문제에서 본성의 일면에 대한 인식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신의 몸(神體)이며 병이 없는 것이다. 우피선은 다만 일부 업력의 반영일 뿐이라는 이 문제를 동수들도 모두 깨달았겠지만 실수(實修) 가운데 흔히 쉽게 소홀히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팔을 움직일 수 없고 다리는 걸을 수 없다. 난 여기가 아프고, 난 어디가 불편하다. 여러분 생각해보라, 이런 말 자체가 자기 신체에 ‘병’이 있음을 승인한 것이며, 신체의 비정상 상태를 자신으로 여긴 것이다. 나는 이렇게 했다. 사상 가운데 이런 생각이 나오기만 하면 즉각 제거해 버렸으며 아울러 생각했다. ‘내 몸을 괴롭게 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우피선은 진실한 내가 아니다. 가령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소업이라면 나는 태연하게 접수할 것이고,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 아니라면 단호히 거절한다.’ 나는 발정념으로 자신의 공간장을 청리했다.
이전의 생각을 다시 돌이켜보니 내가 얼마나 집착했던가. 세 가지 일에 정진한 것을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몸에 있는 우피선을 빨리 낫게 하고 신체적인 ‘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는 여전히 그의 관념을 고치지 않았고 그는 여전히 그의 병을 걱정한다. 나의 병이 재발하지 않을까? 스승님은 정말로 나를 책임져 주어 나에게 철저히 고쳐주었는지? 당신이 보라. 그는 마음속에 여전히 있다. 그는 입으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나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스승님은 꼭 나를 도와 병을 치료해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표면상에는 연공하지만 그의 본질은 여전히 병치료를 위한 것이다. 그는 나를 속이고 사람을 속이고 대법을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가 누굴 속이든지 모두 가짜이다. 자신을 속이는 것만이 비로소 진짜이다. 진실한 심리적인 전변(轉變) 그것이 비로소 진짜 수련이다.”(『유럽법회설법』)
“장기간 이래, 일부 수련생들에게는 바로 제거하지 않은 근본적인 집착이 있는 것이다! 최후까지 축적시켜서 넘어가지 못하면 난(難)은 곧 커진다. 문제가 나타나면 心性(씬씽) 상에서부터 가서 찾지 않고 근본 상으로부터 가서 자신을 제고하지 않으며 정말로 이 일을 내려놓고 다른 한 방면으로부터 정정당당하게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을 겨냥하여 아이고, 나의 이 일이 어찌 아직도 지나가지 않는가? 내가 오늘 좀 잘 했으니 마땅히 좀 좋아야 하는데, 내가 내일 좀더 잘 하면 마땅히 좀더 좋아야 하는데! 그는 언제나 이 일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데 보기엔 그래도 마치,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을 당신이 보라고 하면서 놓는 것 같다. 당신이 잘하고 있는 것은 당신이 그것을 위해 잘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결코 진정한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가서 해야 할 것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대 뉴욕 지역 법회 설법 』)
“당신들의 고생은 모두 당신들이 집착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을 때에만 비로소 느끼는 고생이라, — 아, 나는 왜 이렇게 힘든가? 자신은 능히 염(念)이 아주 바르고 진정한 대법제자와 같았는가? 왜 어떤 사람은 항상 나를 좋지 않게 대하는가? 나의 신체는 왜 늘 소업하는가? 사람은 좀처럼 내려놓지 못한다. 최대한도로 얼마나 내려놓을 수 있는가? 정정당당하게 자신을 하나의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기며, 만약 정말로 능히 어떠한 정황 하에서도 모두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고, 자신을 속인과 같지 않은 대법제자로 대할 때라면, 나는 그 일체가 모두 양상이 변할 것이라고 믿는다.”(『2004년 미국 서부 법회 설법』)
나는 병적인 상태에 있는 동수들에게 건의한다.
첫째, 사악이 강요한 신체 박해를 부정해야 한다. 이는 정법시기에 사람의 신체는 중생을 구도하는데 쓰기 위한 것이므로 강요한 것을 모두 승인하지 않으며 행동으로 노력해야 한다.
둘째, 마음을 조용히 하고 안으로 찾아야 한다. 절대로 고생을 참고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을 신체의 병을 없애기 위한 것으로 변화시키지 말아야 하며, ‘내 몸에는 병이 있다’는 이 일념을 사상 깊은 곳에서 뽑아 제거해 버려야 한다. 진짜 신체와 가짜 신체를 분별하고 진정한 나를 찾아 관념을 전변해야 한다.
이상은 동수들과 교류하기 위해 쓴 것이다. 모두들 공동으로 정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4월 1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4/13/176194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