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열려서 수련하는 것에 대한 작은 인식

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4월 9일】 사존께서는 『전법륜』 중에서 점오(漸悟)와 돈오(頓悟) 2가지 형식을 언급하셨다. 오늘날 정법 중에서 대법은 나로 하여금 점오라는 이런 길을 걷게 했으며 내 주변에도 각기 다른 점오형식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잘 걷지 못하거나 어떤 경우에는 이미 훼멸된 경우도 있는데 나 역시 걷는 것이 순조롭지 못했다. 그러나 대법은 필경 내게 이런 무거운 책임을 배치했기에 나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말하여 여러분들이 참고로 할 수 있게 하려 한다. 여러분들이 이 방면에서 이성적으로 정확하게 인식하기를 희망한다.

나의 점오형식은 천이(天耳)로 들을 수 있고 천목(天目)으로 일부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을 수련인으로 간주하지 못했고 보고 들은 것에 집착하며 소능소술(小能小術)에 집착했다. 예를 들어 변질된 사과처럼 다른 공간에서 들은 것에 흥취를 가졌고 그것을 오락의 형식으로 간주했다. 그 결과 집착심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후 갈수록 많은 가상(假相)을 보게 되었으며 결국에는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나중에 법학습이 깊어지면서 나는 새롭게 이런 종류의 수련형식에 대해 정시(正視)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우주가 나더러 이런 길을 걷게 한 것은 내 체계중의 생명 존재방식의 필요에 의한 것이며, 생명의 존재에 대한 부동(不同)한 생명체계의 부동한 요구이자, 천지인(天地人)의 부동한 구조가 만사(萬事)만물(萬物)에 대한 생명의 인식과 표현을 부동하게 한 것이라고 본다. 구(舊) 우주의 본성은 법에 대한 생명의 일체표현과 인식의 기점을 모두 사아(私我)에 두도록 육성했다. 정법은 우주를 바로잡는 것으로 사존께선 중생들이 모두 법을 인식하고 정념으로 법에 동화하게 하셨다. 나는 우리는 주동적으로 수련 성취하는 과정에 있고 일체가 다 닦아서 나온 것이지 이미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 나는 천이, 천목이 열렸다. 그렇다면 내게 필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내가 어떻게 다른 공간과의 관계를 바로잡으며, 천지인의 관계를 바로 잡고, 한 가닥 바른 길을 걸어 나올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법시기이며 나 역시 수련하고 있는 사람이다. 인류 이 기점에 서서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는 것은, 이 일체가 어떻게 수련과정 중에서 중생을 잘 구도할 것인가 하는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내가 듣고 본 것과 느낀 것을 정확하게 대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겪고난 후 나는 이 일체를 인식하는 근본은 여전히 사존의 설법에 입각해 일마다 대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입정력이 부족해 많은 일이 꿈속에서 체현되었다. 갑자기 자신이 잡혀가거나 구타당하고 쇠사슬에 묶이는 등을 보거나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나는 발견했다. 아주 많은 것들이 내 마음에 따라 연화된 것이지 진상(眞相)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당신에게 체험하게 했는가?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무릇 연공(煉功) 중에서 이런 교란, 저런 교란이 나타나면, 당신이 아직도 무엇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지, 당신 자신이 원인을 찾아야 한다.”(『전법륜』)

한번은 내가 잡혀가는 꿈을 꾸었고 나는 당장 집을 옮기려 했다. 사실 이것은 마가 환화하여 내게 보여준 것이다. 나는 다른 공간의 사악이 사부님께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당신이 보십시오, 우리가 잘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고 그는 안으로 찾지 않았습니다. 그가 수련하는 것입니까? 그는 우리가 배치한 길을 걸어가려 하지 않습니까.” 사부님께서는 아무 방법이 없으셨다. 이는 사람마음을 겨냥해 온 것으로 분명히 말하자면 바로 자신이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간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청성(淸醒)할 때 위험, 고험, 모순에 닥치면 모두 안을 향해 찾고 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다른 공간의 광경을 보게 되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한다. 사실 무슨 대단할 것이 없는 것으로 단지 각기 다른 형식일 뿐이다. 물론 생명이 위험할 때는 여기서도 사부님의 점화가 있다.

내가 채용한 방법은 기왕 사람마음에서 온 것이라면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거나, 그것의 진가(眞假)를 막론하고 자신이 무슨 집착이 있는가 보는 것이다. 나는 당시 어떤 생각을 움직였는가, 왜 내게 두려운 표현이 생겼는가, 이는 수련 상태에 부합한 것이 아닌가. 그런 후에 나는 다시 발정념으로 이런 배치를 부정하고 이렇게 배치한 사악의 요소를 제거한다. 만약 내가 두려운 마음이 중해 아무리 해도 안 되면, 나는 표면 형식적인 방법을 채용해서라도 동시에 발정념을 한다. 당신 구세력의 배치는 필요 없고 나는 사부님의 배치를 따를 것이다.

나는 또 발견했다. 어떤 동수들은 문제가 나타난 후 우선 표면적인 곳에서 출로를 찾는데 다른 공간에서는 이런 것이 아니다. 사존께서는 “안을 닦으니 밖이 편안하다”는 법을 말씀하셨다. 내가 본 표현은 다른 공간에서 줄곧 안으로 찾는다면 사악은 곧 전부 억제될 것이며 움직이려 해도 움직일 수 없는데 마치 일종 법력(法力)의 표현과도 같다. 혹은 즉각 물러나지만 물러나려 해도 안 되는데 대법을 박해하러 온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해쳤는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정말 대법을 교란했다면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또 천이(天耳)로 듣는 것이 있는데 지난 5년 동안 나는 여러 차례 다른 공간에서 나더러 얼마나 대단하며 내가 얼마나 높은 대불(大佛)이고 얼마나 높은 대도(大道)라는 등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 또 나더러 사부, 조사(祖師), 마왕(魔王), 소귀(小鬼) 등이라고 부르게 한 것도 있었다. 이외에도 나는 자신에게 얼마나 높은 연화(蓮花)가 있는지 보았고 얼마나 큰 위력이 있는가 하는 등을 보았는데 여기에는 역사적인 요소도 있고 다른 공간의 생명이 격려하는 것도 있으며 내가 있는 층차를 체현한 것도 있고 또 집착심으로 자심생마(自心生魔)하여 조성된 가상도 있다.

나는 수련하는 사람이기에 잘 닦은 일면은 이미 일찍이 격리되었고 잘 닦지 못한 것은 영원히 사람의 일면이며 수련할 필요가 있는 일면이다. 그렇다면 이 일체 표현은 나더러 수련하라는 것으로 수련은 바로 사람마음에서 착안해야만 함을 나는 깨달았다. 나는 곧 사람마음을 찾았다. 좋은 것을 보았으면 자신에게 어떤 사람마음이 있는지 찾았고, 나쁜 것을 보아도 자신에게 어떤 사람마음이 있는지 찾았다. 그것의 진가(眞假)를 따지지 않았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가리지 않았으며 정념으로 그것을 제거했다.

정법시기에는 한 가지 중대한 역사적 교훈을 남겨놓았는데 바로 소위 무수한 고층생명이 신(神)의 신체와 신의 법력이 있음에도 오히려 신의 심성(心性)이 없어 대법의 표준으로 법을 인식하지 못한 표현이 있었고 결국 그것들이 모두 도태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이 일체를 깊이 명심하고 다른 공간에서 설사 나를 불도신(佛道神)이라 칭하든 혹은 왕(王)이나 주(主)라고 칭하든, 천층의 연화(蓮花)가 있든, 얼마나 여의(如意)한 신통(神通)이 있든, 그것은 단지 표현에 불과하며 생명이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법이 있을 뿐이며 마음속에 품은 것이 오직 眞善忍이어야만 한다. 재간이나 금전 또는 권력을 마음에 품어서는 안 된다.

나는 귀로 듣고 눈으로 볼 수 있으며 다른 공간의 생명과 소통할 수 있지만 나는 모두 집착하지 않으며 이 일체가 열린 것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사용하기 위한 것이며 만약 그것을 실제상황에 사용할 수 없다면 그럼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다. 나는 천이(天耳)로 사악이 무슨 박해를 계획하는지 들을 수 있고, 천목(天目)으로 중생을 구도하는데 있어 부족한 점을 보아낼 수 있으며, 천비(天鼻)로 한번 맡기만 하면 썩었는지 향기로운지, 사(私)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 나는 다른 공간과 소통할 수 있고 토지 신을 찾아 어느 지역이 아직 잘하지 못하는지 물어볼 수 있으며, 다른 공간에서 구도된 고층생명에게 역할을 분담해 일부 구체적인 일들을 하도록 건의할 수 있다.

내가 보거나 들은 것이 반드시 진상(眞相)은 아니기에 누가 내게 무엇을 알려주면 나는 다른 공간의 이런 것들을 직접 여러분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직접 현지에 가서 관찰해보고 난 후 필요하다면 사람속의 정황을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집착심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이다. 우리 지역에서 한 꼬마수련생이 저녁에 하늘에 올라가 한차례 법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 법회에서 사부님께서는 그에게 모월 모일에 정법이 결속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돌아온 후 모두에게 이 일을 알렸고 모두들 도처에 가서 이것을 알렸다. 결국 법을 바로잡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교란했으며 부면(負面)적인 작용을 일으켰다. 그가 들은 것은 아마 그 공간에서는 진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 세상에 대응되면 1년이나 혹은 더 긴 시간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인간 세상의 시간과는 다른 것이다. 그럼 왜 그더러 듣게 했는가? 그가 수련하는 사람이기에 그것은 그더러 시간을 다그치라고 알려준 것으로 이에 집착해선 안 된다. 이 일은 바로 자신을 수련인으로 간주할 수 없고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한 표현이다.

동수들은 나의 일부 표현을 아주 부러워하는데 나는 조금도 어떻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늘 은신법(隱身法)을 써서 자신을 보호하지만, 나는 아무런 수법도 쓰지 않고 정념만으로 할 수 있는 그런 일부 동수들이 부럽다. 얼마나 편안하고 자재한가, 무슨 수법을 쓴다면 여전히 두려운 마음이 있어 채용한 것이다. 한번은 사부님 법신께서 내게 내 주변에 있는 동수들 중에서 내가 수련이 가장 떨어진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내가 불법으로 노교소에 감금되어 있을 때 매번 발정념을 하면 모두들 위로 날아오르는데 매번 내가 가장 느리고 가장 낮은 것을 보았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일깨워주고 싶은 것은 신통은 심성을 대표할 수 없다는 것으로 심성이 높다고 하여 꼭 신통을 드러내거나 신통을 운용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사존께서는 파룬따파를 전하고 계신다. 명백한 사람은 절대 사형제(師兄弟) 중에서 과시해 여러분에게 집착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우주대법을 수련함에 마땅히 집착이 없고 누락이 없어야 하며 중심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이성적으로 수법과 형식을 선택해야 한다.

이상은 나 개인이 소재한 층차에서의 인식이다. 내가 인용한 사존의 설법에는 더욱 깊은 내포가 있을 것이다. 단지 몇 구절만을 얕게 말함은 동수들에게 참고로 제공하기 위함이다.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시정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4월 9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4/9/176128p.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