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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스승으로 모시며 정확한 선택을 하여 세 가지 일을 잘 하다

글 / 칭도우(青岛)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3월 17일] 《법공부를 잘 하여 교란에서 걸어나오다 @사부님 평어 》라는 문장을 읽고 또 최근 사부님의 《오스트레일리아 수련생에 대한 설법》 을 여러 차레 보고 약간의 감수가 있어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정법수련의 길에서 일부 외적인 요소에 의해 움직이며 심지어는 교란을 받게 되는 원인 중 하나는 법공부를 잘 하지 않고 법을 스승으로 모시지 않으며 대법의 표준하에서 자신이 정확한 선택을 하지 못한데 있다. 내가 목격한 것은 두 가지 경우이다. 하나는, 어떤 동수들은 자신의 주견이 없어 무슨 문제가 있으면 다른 동수들이 말하는 것을 듣기 좋아하는데 특히는 “명성이 있는” 동수들의 말을 듣는다. 그런데 만약 그 동수의 인식에 편차가 있으면 주견이 없는 동수에게 부면적인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

예를 하나 들겠다. 전 한 시기에 한 수련생이 불법적으로 잡혀가 박해를 받게 되었는데, 어떤 동수들은 명혜망에 사악을 폭로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그 사악을 폭로하면 사악의 더욱 큰 박해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주견이 없는 동수들도 같은 의견이었다. 물론 지금 와서는 모두 공동의 인식을 형성하여 반드시 명혜망에 사악을 폭로해야 함을 명백히 하였다. 그러나 만약 사부님의 사악을 폭로하는 것에 관한 법을 잘 학습하였더라면 당시 이 법을 매우 독똑히 깨달아 응당 무엇을 해야 하면 무엇을 했을 것이다. 또 자신이 장기간 한 층차에 머물러 있었던 것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며 붙잡힌 동수도 더욱 큰 박해를 받게 됨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정(人情)에 대한 집착인데, 인위적으로 자신으로 하여금 법을 스승으로 모시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전 한 시기 대륙의 매우 많은 지역의 대법제자 내부에서 고 변호사를 지지하는 서명을 징집하는 일이 나타났다. 고 변호사를 지지함에 있어서 적당히 그의 구원을 성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대법제자 내부에서 서명을 징집하는 것을 표기에 기입하는 것은 사부님의 법에 어긋나는 것이다. 어떤 동수들이 이 작법이 합당하지 않다고 지적하였을 때, 지적당한 수련생은 말하였다. : “나는 나 자신(혹은 모모)가 하는 일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수련의 길은 같지 않다고 하셨는데 나 (혹은 모모)가 그 층차까지 깨달았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깨달음이 아주 높다고 나는 생각된다!” 그리고 그(그녀)는 발끈해 하면서 당신과 싸운다. 이때 그 수련생은 완전히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을 잊어버리고 다만 자신의 체면을 잃지 않고 보호하기 위한 것을 첫 자리에 놓았으며 자신과 사이가 좋은 수련생을 변호하는 것을 첫 자리에 놓았다. 이 때에는 정말 인정(人情)이 법보다 더 큰 것이다. 그리하여 한 시기 일정한 범위 내에서 일부 교란과 파동을 조성하여 잠시 동수들 간의 협조에 영향을 주었다.

자신이 느낀 점을 써내었는데, 동수들이 법공부할 때 법공부가 마음속에 새겨지게 하고 수련 과정 중 시시각각 안을 향해 찾아 세 가지 일을 더욱 잘, 더욱 온건하게 하며 교란을 받지 않을 것을 희망한다.

문장완성 : 2008년 3월 16일
문장발표 : 2008년 3월 17일
문장수정 : 2008년 3월 17일 06:46:08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3/17/1745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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