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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위사(自我爲私)한 마음’을 닦아 버리다

글/ 요녕 대법제자 정사(静思)

【명혜망 2008년 2월 19일】 어느 한 차례 단체 법공부에서 수련생이 『전법륜』제 8강 ‘누가 연공하면 누가 공을 얻는다’의 첫 구절, “친척이나 친한 친구가 고통을 겪을 때 당신이 마음을 움직이는가 움직이지 않는가, 당신이 어떻게 가늠하는가 하는 것으로 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는 바로 이처럼 어렵다!”까지 읽었을 때 듣고 듣다가 무의식중에 아내를 바라보던 나는 마음이 움직이면서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이런 변화는 나로 하여금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이때 나는 이미 자신의 육친정이 아주 중함을 의식할 수 있었다.

정법시기에 진입해 수련하면서 나는 육친정은 나의 수련 과정 중에서 아주 버리기 어려운 하나의 집착임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발정념으로 제거하고 억제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것을 제거할 때면 또 그렇게도 힘들다는 것을 늘 느끼곤 했다. 어떤 때는 자신이 마치 아주 담담하게 그것을 대하고 정을 뛰어 넘어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 같았지만 일단 마난이 오기만 하면, 특히 아내가 장기간 병업관을 넘지 못해 고통에 시달릴 때면 육친정의 집착이 곧 뛰쳐나와 나를 고뇌하게 했다.

내 아내가 병업관을 넘기는데 이미 3년이 넘었다. 그 관을 넘는 것은 느리고 힘이 들었고 또 매우 고통스러웠다. 구세력, 흑수 썩은 귀신, 사악한 요소에게 박해 당했는데 어떤 때는 그야말로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그녀에게는 버려야 할 집착이 있긴 하지만 구세력은 박해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동수로서 내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바로 법리상에서 그녀를 도와 제고하게 하며, 그녀로 하여금 확고하게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게 하며, 아울러 발정념을 해 주었지만 효과가 크지 못하였다. 그럴 때면 나도 아주 고민스러웠고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이 때문에 동수들도 적지 않은 도움과 교류를 했고 내게 육친정이 너무 중해 아내가 병업관을 넘기는데 장애가 되고 있으므로 마땅히 버려야 한다고 제출했다. 그때 나는 입으로만 “그렇습니다.”라고 말하긴 했지만 안을 향해 잘 찾아보지 않았고, 법에서 깨닫지 못했으며, 깊이 뿌리를 파보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나더러 육친정을 늘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가? 늘 그것 때문에 힘들고 얽매이고 괴롭고 헤어나지 못하는가?

나중에 나는 “우리 많은 수련생들은 속인 중에서 수련하기 때문에 많은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으며, 많은 마음은 이미 자연적으로 형성되었으나, 그 자신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전법륜』)라는 법을 학습할 때 잠시 멈추면서 생각나는 바가 있었다. 왜 멈췄는가? 사부님께서는 나더러 법에서 법을 인식하고, 자신을 진정으로 법 중에 용해하고 법 중에서 법을 이해하여 그로부터 법을 배우고 법을 얻으라고 점화하신 것 같았다. 나는 단숨에 많은 것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왜냐하면 이전에 법공부를 하긴 했지만 지나쳐 버렸으므로 법은 많이 공부했으나 마음속에 들어온 것이 없어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이때 나는 또 다시 안을 향해 찾아보았고, 깊은 곳을 파헤쳐 보았다. 장기간 내려놓지 못한 육친정, 법을 벗어난 이면에 아직 자신이 모르는 그 무슨 근본 집착이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았다.

바로 이렇게 마음을 조용히 하고 안으로 찾아보니 과연 내가 육친정이 아주 중해 내려놓지 못하고 고민하던 배후에는 자신이 느끼지 못했고 아울러 자연적으로 형성된 아주 중한 자아위사(自我爲私)한 두려운 마음이 촉성한 것임을 끝내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은가? 아내가 병업관을 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나는 몹시 중하게 보았고, 진상을 알릴 때 아내가 병업관을 넘지 못해 대법에 부적인 영향을 주고, 대법에 먹칠을 할까 봐 두려웠으며, 마음속으로 늘 세인들이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으나 아내는 오랫동안 수련을 했으면서도 신체가 아직 이 모양이고 뚜렷한 변화가 없으니 사람들에게 어찌 대법이 좋다는 것을 믿게 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늘 아내의 병업관이 얼른 지나가고 정정당당하게 법을 실증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결과는 내가 원하던 것과 정반대로 되었다. 빨리 지나가기를 원할수록 더욱더 넘지 못했고, 매번 진상을 알리고 법을 실증하면서 사람을 구원할 때, 내 아내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수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렇게 중한 병에 약도 먹지 않고 주사도 맞지 않고도 아주 좋은 것은 대법이 정말로 신기한 것이라면서 대법이 좋다는 것을 믿고 3퇴하곤 했다. 그러나 내 아내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의 외모를 보고는 그녀의 병이 나은 다음 자신도 연공하고 탈퇴하겠다고 말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은 괴로웠고, 더욱 조급해졌으며 아내의 병이 빨리 낫기를 바라는 집착이 더욱 강렬해 졌다.

결국 아내가 병업관을 빨리 넘도록 도울 때, 끊임없이 그녀의 공간장에 명리정(名利情) 등 자아위사한 물질을 더해 주었던 것이다. 나는 날마다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발정념을 해서 당신의 공간장을 청리해 빨리 고비를 넘고 법을 실증하며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도록 도와줄 테니 당신은 잘 협력해야 해.” 말 밖의 뜻인 즉 자신은 아내보다 수련을 더 잘하여 층차가 높다는 것인데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과시하고 자아위사한 마음이 드러났다. 나중에 아내는 이런 말을 많이 듣게 되자 반감이 생겼고 협력도 하지 않았다. 아내에 대한 나의 태도도 자비가 아니라 싫어하고, 원망하며, 조급하여 결국 다른 공간의 사악에게 틈 탈 기회를 주어 나와 아내 사이의 간격을 커지게 했으며 인위적으로 아내의 병업관을 넘는 것을 방해하는 마난을 증가시켰고 시간을 연장시켰다.

아내가 병업관을 넘는 것에 대한 집착에서부터 자신의 명리정(名利情) 등 자아위사한 속인의 마음, 정말로 내려놓을 때의 고뇌가 폭로되었다. 나는 “사람의 수련 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버리는 과정(『전법륜』)이란 박대정심(博大精深)한 내포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어떠한 속인 마음이든 모두 ‘집착’이며, ‘집착’은 바로 ‘자아’이고 ‘자아’는 바로 ‘위사’이며, ‘위사’는 바로 ‘사람’이다. ‘집착심’을 버릴 때가 바로 ‘무사(無私)’이고, ‘무사’는 바로 ‘무아(無我)’이며, 바로 ‘신(神)’이다. 다시 말해서 ‘각자(覺者)’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개인 층차에서 깨달은 것이오니 만일 부당한 곳 있다면 동수들이 시정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2월 19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8/2/19/1726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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