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련대법제자 자심(慈心)
【명혜망 2008년 2월 7일】 진상을 알리고 ‘3퇴’를 권하는 것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잘하라고 하신 ‘3가지’ 일 중의 하나이다. 나는 줄곧 그것을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로 간주하고 해왔다. 최근에 와서 친한 사람을 퇴출시킨 후에야 비로소 3퇴를 권하는 것이 자기 수련의 일부분이며 이 일을 하는 과정 중에 자신을 더욱 빨리 제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람은 한 동수 딸의 사돈이었다. 그들 두 가족은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수련생이 이미 탈퇴시켰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는 문득 만일 수련생이 그에게 ‘3퇴’를 말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할까하는 생각이 떠올라 다시 그를 만나면 꼭 물어보기로 작심했다. 그에게 물어보니 정말 ‘3퇴’란 이 일을 모르고 있었다. 그가 “나도 탈퇴 하겠다”라고 말하자 장기간 차고 축축하며 누렇던 그의 얼굴이 단번에 온화하고 불그스름하게 변했다. 탈퇴하고 안 하고 이 일념의 차이가 사람 표면에서 이렇게 큰 변화가 일어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내가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것은 그 수련생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탈퇴시켰으면서도 왜 자신의 사돈에게는 알리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 일부 친척들도 수련인인데 역시 이런 상황이 있었다. 얼마 후에야 나는 이것이 오직 다른 사람만 보고 자신을 보지 못한 것으로 수련은 곧 자신의 마음을 닦는 것이며 “사부가 문으로 이끌어 들였으나 수행은 개인에 달린 것으로, 전적으로 당신 자신이 어떻게 수련하는가를 본다.”(『전법륜』)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할당량을 정해주지 않으셨다. 그러나 나 자신은 도리어 마음속으로 다른 사람에게 임무를 분담해 주었으니 이는 속인의 사업이 된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사업이 아니라 수련이다』라는 경문을 쓰신 적이 있고 대법 중에서도 사람을 구도함에 있어 조건을 논하지 않고 보수를 따지지 않으며 이름도 남기지 않고 오직 자비심으로 해야 한다고 하셨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하늘이 중공을 멸망시키고자 커다란 빙산이 곧 중공 사당의 ‘도적선’을 부숴 가라앉힌다면 우리 대법제자들은 ‘구조선’을 몰고 와 당표, 단표, 소선대표를 손에 쥐고 ‘도적선’에 올라 죽음의 길로 가는 사람들, 분분히 물속에 떨어지는 사람들을 보이는 대로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찌 이 사람은 누구의 친척이고 저 사람은 누구의 친척인가를 따지면서 그의 친척이 와서 구하길 기다리겠는가? 여기에 어디 자비심이 있는가?
나는 ‘3퇴’를 권해 사람을 구하는 것은 선(善)을 수련하고 자비심을 수련하는 중요한 부분이며 사부님께서 다시 한 번 결속시간을 연장하신 것은 대법제자들로 하여금 보다 많은 사람들을 구도하게 하시려는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마땅히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을 원융하고 ‘3퇴’를 권하는 것을 잘해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자신이 잘함과 더불어 탈퇴를 권하는 수련생이 호신부가 필요해 나를 찾을 때 이튿날로 기차를 타고 외지에 가서 구해주었다. 진상자료를 만드는 재료를 살 때 가게 사장님이 나와 언니에게 2개의 자기 컵(역주: 자기 컵을 뜻하는 磁杯는 慈悲와 발음이 같다. 이 글을 쓴 작자는 이를 자비라고 이해했다)을 선사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우리가 눈바람과 엄동설한을 무릅쓰고 밥을 먹을 겨를도 없이 오직 차가운 물과 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사람을 구도하는 것을 첫자리에 놓는 이런 자비심을 보시고 우리를 격려하신 것이라고 인식했다.
문장발표: 2008년 2월 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8/2/7/171934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