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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인에 대한 의뢰심을 닦아 버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내심으로부터 분명해야

[명혜망 2008년 1월 25일] 정법이 오늘에 이르렀는데도 허다한 동수들은 여전히 속인에 의지하는 관념을 수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생각은 의연히 “견고”하여 중생구도와 정법수련 중의 경계가 승화되는 것에 엄중한 영향을 주고 있다. 본 문장에서는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세 가지 의뢰하는 문제를 서술하려 한다.

첫째, 속인 중의 민주국가에 의뢰하는 것

의뢰하는 사람의 이런 관념은 비록 사부님께서 법중에서 이미 여러번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지금 허다한 동수들에게 아직도 남아 있다. 다만 그다지 분명하지 않을 뿐이다. 예를 든다면, 한 노년 수련생은 이 방면에 대한 사부님의 설법을 금방 나에게 말하고 나서 말하기를 “우리는 속인에게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무의식” 중에 또 말한다. “모모(모 나라 대통령), 이 사람은 정말 못됐어. 이렇게 큰 시비 문제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표시하지 않다니.” 그의 말을 통해 나에게도 이런 염두가 얼핏 스쳤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 스스로 인정하기를 ‘나의 이것은 그를 위해 애석해 하는 것이지 내가 그에 대해 집착하는 것이 아니다. 속인은 대법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다만 표면일 뿐 자세히 따져보면 그 말 속에 그에 대한 원망, 불만, 실망이 있었던 것이다. 이 “실망”은 바로 그에게 품었던 “희망”이 만족되지 못하여 생긴 것이 아닌가? 변상적인 의뢰심이 아닌가? 다만 방식을 바꿨을 뿐이다. (사람이 잘하지 못했거나 나쁜 일을 해도 자신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자비한 자로서의 우리는 마땅히 더욱 이러한 생명을 아끼고 불쌍히 여겨야 하지 원망할 것이 아니다.)

이런 관념을 구성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민주”, “인권”, “신앙자유” 이런 구호에 대한 “미신”이다. 사람의 “물건”이 대법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데, 사실 이는 주된 것과 부차적인 것이 전도된 것으로 실제적인 생각과는 부합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자신은 다만 이런 사람들의 이념을 이용하여 진상을 알려주고 있으며 사람의 집착에 따라 말해 주어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쉽게 접수하도록 하는 것 뿐이란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나 역시 “6.4”시기의 학생이기 때문에 진상을 알리는 가운데 “6,4”를 “더욱이” 중시하였고, 민주 자유를 제창한 “6.4”학생 회장에 대한 “그리움, 숭배”의 심리를 품고 있었다. 구세력은 당신이 사람의 물건에 대해 이렇듯 집착하는 것을 보고 이 문제상에서 반복적으로 틈을 타고 들어와 “난을 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사람에 대해서는 오로지 자비만 있을 뿐 기대가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신이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닌가?

둘째, 사당(蛇黨)을 중시하다

사부님께서는 《호주 수련생에 대한 설법》 중에서 말씀하셨다. “어떤 수련생들은 줄곧 얼떨떨 하여 중공사당을 해체하고 중공 사당 정권을 뒤집어 엎는것을 제일 중요한 일로 여기는데 기실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중공 사당을 폭로하는 것 역시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비디오를 본 후에 어떤 수련생은 아직도 마땅히 중공 사당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여긴다. 내가 느끼건대 이 문제가 존재하는 것은 두 가지 심리 때문이라고 본다. 하나는 중공에 대한 원한 심리가 아직도 잔존해 있는 것이다. 자기 가족, 친우나 자신이 중공에 박해 당한 적이 있거나 심지어 아주 비참하게 박해 당해 역사적으로 남아 내려온 정서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신이다. 신의 경지에 서서 보면 작디 작은 사령(蛇靈)이 다 무슨 물건짝이겠는가? 그에 대한 미움은 자신을 앝잡아 보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그래 당신이 미워할만한 가치가 있는가? 다른 하나의 원인은 바로 두려움이다. 사람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사당을 두려워 하고 그래서 인위적으로 생각한다. “중공아, 빨리 무너져라. 내가 좀 홀가분하게 살 수 있도록…”

무엇 때문에 아직도 걸어나오지 못하는 수련생이 있는가? 더욱이 지금 이 시기에. 자기집에 신당인 위성 안테나를 설치하는 문제를 꺼내기만 하면 우리 어떤 동수들은 곧 화제를 돌리는데, 이는 사당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닌가? “진상을 알리고, 신당인을 설치하면 중공의 박해를 받는다”고 여기는 것은 사람의 “논리”일 뿐이다. 진상을 알리고 신당인을 설치한다 하여 박해를 받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박해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심리상태가 조성한 것이다. 바로 사람이 병을 얻는 것처럼 공기가 차가우면 감기에 걸린다고 하는데, “찬” 것 자체가 병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업력 때문이다. “찬” 것은 다만 인간에게 진상을 덮어 감추는 하나의 가짜 이치일 뿐이며, 아울러 당신이 이런 가짜 이치를 끌어안는 것은 악당 사령을 승인하는 것과 같으며, 그것은 틈새만 있으면 뚫고 들어올 것이다.

셋째, 사당의 지도자와 명성 있는 사람에게 의뢰하는 것

최근 나는 신변의 동수들과 함께 교류하면서 아직도 늘 의논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원(温)씨가 뭐라고 말했다. 후(胡)씨가 뭐라고 말했다. 인권 성화가 어느어느 지방까지 갔는데 모모 사람이 강화까지 했다. 임시정부가 성립되었다.” 말하기 시작하면 아주 흥분까지 한다. 명혜주간의 뉴스를 보고도 역시 그렇다. “모모 명인이 우리를 지지한다”, 내가 느끼건대 이런 표현은 중생이 깨어난 것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일종 속인 변화에 대한 의뢰심에서 얻은 만족, 희열로써 마음은 속인중에 있는 것이다.

나에게 한 단락 경력이 있는데 문제를 아주 잘 설명한다.

2003년, 직장에서는 공개적인 경쟁을 통해 자유 조합 되어야만 취직할 수 있다고 결정하였다. 나는 이것이 대법제자에 대한 일종의 박해 형식이란 것을 인식하였다. 사당의 공포적인 환경에서 게다가 이익 문제까지 겹쳐 많은 책임자들은 감히 주동적으로 나를 쓰려 하지 않았다. (모두 나의 능력과 인품을 알고 있긴 했어도) 하지만 자신이 철저하게 이 일을 부정하려는 마음이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형세”는 여전히 나타났고, 대법제자에 대해 불리한 국면이 조성되었다. 때문에 이런때 나를 선택한 책임자는 모두 “우리는 평소에 관계가 그렇게도 좋았는데 어려움에 있는 당신을 내가 돕지 않으면 남 보기에도 서운한 일이요”하는 식의 완전히 일종의 인정 “빚”을 갚는 격이었다. 구세력이 이런 국면을 만드는 것은 바로 당신에게 압력을 주려는 것이며, 당신을 피동적인 위치에 처하게 하는 동시에 중생들에게 눈치를 보여주어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선악에 보응이 있다”는 천리(天理)의 지위를 교란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나는 법에서 서서히 인식하게 되어 상황에 변화가 있게 되었다. 원래 2년에 한 번씩 경쟁한다고 했는데, 오늘까지도 더이상 제기하지 않고 있다. 허다한 동료들은 괴상하다고 여겼지만 나만은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2003년의 인원 조절에서 철저히 (박해를)부정하지 않았던 탓으로 직장에 새로운 지도자가 오게 되었다. 그는 내가 수련을 견지한다는 말을 듣고 나를 가장 외진 자료실로 보내면서 (쓰지 않으려는 뜻)신문 제 일선의 사업을 시키지 않으려 하였다. 그래서 나와 “한 차례의 담화”를 하려 하였다. 나의 그때의 상태로서는 그와 정면으로 담화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일정한 인식이 있었다. (아주 확고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우연한 일로 언제나 그는 나를 찾을 수 없었고 이렇게 오랫동안을 끌었다.(다른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한번도 만날 수 없을까?) 나중에 그는 사악한 기운에 북받쳐 여전히 나를 찾아 “말해보고자” 하였으나 나중에는 “경제문제 때문에 심문을 받게 되었다.”

이 지도자가 간 후 새로운 “지도자”를 파견해 보냈다. 그는 몰래 말하기를 “파룬궁 문제는 바로 문화혁명이므로 우리는 함부로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했다. 나중에 접촉하는 가운데 그가 나에 대해 비교적 존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당시에 대법의 표준에 부합되었기 때문에 사악은 뚫고 들어올 수 없었다. 그 사람은 비록 나쁜 일을 하고자 했지만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한사코 하겠다고 한다면 그럼 당신은 이곳에 있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다시 다른 각도로부터 말해 보자. 가령 대법제자에게 커다란 누락이 있다면 사악은 쉽사리 침입해 들어와 이 나쁜 사람을 이용해 대법제자를 박해할 기회가 있게할 것이다. 가령 당시에 이 위치에 있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면 대법을 박해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사악도 감히 이런 사람을 쓰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천리를 위배) 이런 좋은 사람을 “이동해 보낼” 것이며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오게 하여 박해를 유지하고자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사악의 논리와 배치이므로 우리는 승인하지 않을 뿐더러 그것을 철저히 제거해 버려야 한다.) 때문에 사람은 다만 도구로서 구세력이 우롱하는 희생품일 뿐이라고 말한다. 큰 일에서도 아주 전형적인 예가 있는데 인상 깊은 것이었다. 미국 원래의 국방부장은 사당에 대한 태도가 아주 강경했었지만 (탈당문제를 지지) 구세력에게 끌려 갔다. 일찍이 한 수련생이 이 문제를 말한 적이 있다. 구세력은 대법제자에게 사람의 마음이 있다는 구실로 바른 요소를 교란하여 정법 형세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대법제자의 몸에 남아있는 이런 사람 마음은 마찬가지로 구세력의 일부분(그것들은 생생세세 앞당겨 당신에게 당신 자신이 긴긴 세월속에서 변이된 것을 안배하였다)으로서, 만약 우리가 타파하지 못한다면 정법의 진행을 방해할 것이다. 속인사회에 표현되는 것이란 바로 일부 일과 인원배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여러분은 모두 반복적으로 사부님의 이 구절 법을 교류하였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데, 실제로 속인사회에서, 오늘날에 발생된 일체의 일들은 모두 대법제자들의 마음에 의해서 촉성(促成)된 것이다.” (《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 법회 설법》) 우리야말로 세간 “형세변화”의 “주요 원인”이며 주체적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어떠한 사람, 그의 신분이 어떠하던지를 막론하고 모두 자신에게 미래를 선택해주는 것이지, 그는 정법의 형세를 개변할 수도, 또한 개변하는 것을 더구나 윤허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다만 자신을 위해 미래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여기까지 말 한 김에 동수에게 일깨워주고자 한다. 최근의 미국과 대만 등지의 대통령 선거에 대법제자의 마음도 영향을 받고 있지나 않은지? 사실 누가 당선되든지 모두 원칙적으로 문제가 아니다. (중공악당은 제외) 정법 형세가 그곳까지 밀고 나간다면 정말로 나쁜 사람이라 할 지라도 정법의 형세를 개변시킬 수 없다. 우리 대법제자의 정념은 그때에 가면 오늘 우리가 보기에 일체 “나쁜 사람”과 “나쁜 일”을 개변시킬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런 것에 집착하지 않으면 정신(正神)들은 이 일체를 보호해줄 것이며, 제일 훌륭한 결과를 선택해줄 것이다.

위에서 서술한 것을 종합한다면 내가 느끼건대 의뢰심 이런 심리의 배후에는 또 하나의 원인이 있는데 바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이 바로 “정천독존한 신(顶天独尊的神)”이라는 인식이 없다. 일상 생활에서의 표현은 바로 발정념시 정념이 강하지 못하고 자기의 능력이 얼마나 “헤아릴 수 없이 높고 깊으며”, “위력이 비할 바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자신을 속인과 같게 대하거나 심지어 사람보다 낮게 본다.(더욱이는 권세있고 명성이 있는 사람보다) 곳곳마다 일 마다에서 모두 자신을 사람의 위치와 상태에 놓는다.

문장발표 : 2008년 1월 2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1/25/1709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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