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청우(清宇)
【명혜망 2008년 1월 22일】 해외 수련생이 개인적으로 만든 모 인터넷 토론방에는 늘 자신이 일시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문제를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하는 대륙수련생이나 개인적으로 얻은 명혜 편집부의 답변을 올리는 일부 수련생들이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나는 개인의 견해의 한번 말해보고자 한다.
1. 아주 많은 경우 수련생이 반드시 제기해야 할 문제라고 여기는 것은 사실 모두 자신이 법학습을 잘하지 못하고, 법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으며, 또 밖을 향해 구함으로써 조성된 것이다. 아울러 꼭 물어봐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어떤 자료점에서 사부님의 모든 설법을 새로 조판하는 것을 보았다. 글자체, 글자 크기도 새로 선택하고 한 행에 몇 개의 글자가 들어가며 한 페이지에 몇 줄의 행이 들어가는 것 등등. 그럼 이런 행위는 법에 있지 않은 것이 아닌가? 답은 너무나 분명하며 이것은 수련 중의 사람이 개인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일찍이 원판 책은 움직일 수 없으며 단지 레이저로 그대로 찍은 것만 가능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여전히 내용만 변하지 않으면 된다면서 고집을 피웠다. 논쟁 중에 일부 동수들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곧 명혜 편집부에 문의했다.
몇 차례 문의를 했지만 명혜에서도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이에 일부 책을 만드는 동수들은 줄곧 이렇게 했는데 여러 차례 교류해도 소용이 없었다. 명혜에서 대법 서적은 새로 조판할 수 없다는 답변이 온 것을 본 후에야 비로소 이런 행위를 중단했다.
왜 밖에서 구하는가? 왜 법에서 명확히 쓰셨음에도 따르지 않는가? 마땅히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사실 진수제자(眞修弟子)로서 자신이 진정으로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학습하면 사부님께서는 모두 답안을 주실 것이다. 이것은 또 왜 사부님께서 대법제자들에게 반복적으로 “법을 스승으로 삼으라”고 요구하신 이유이기도 하다.
2. 인터넷 토론방에서 수련문제를 토론하는 것은 손실이 더 커
일부 동수들은 아주 많은 기술 외적인 문제들을 모두 인터넷 토론방에 가져가서 토론하는데 개인적으로 느낌이 아주 좋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는 대륙에서는 아직 박해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이렇게 토론하는 것은 단지 개인의 안전뿐만 아니라 정보의 안전에도 문제가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소홀히 한 것이다.
또 왜 꼭 인터넷에 접속해 토론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은 질문하는 것을 좋아하며 스스로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외지나 해외 수련생과 교류하기를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본지 동수들과 모순이 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말하기만 하면 그대로 믿으면서 맹종하는데 법으로 가늠하여 판단하지 않는다.
매 사람은 수련을 시작한 후 수련이 끝날 때까지 모두 무수한 문제들에 봉착할 것이다. 만약 모두 다른 사람에게 물어 답안을 찾는다면 단지 자신을 수련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제고할 기회를 밀어버리는 것으로 다른 사람(질문을 받는 사람)을 수련시키는 것이다. 또 자신은 장기간 판단력이 부족해져서 밖에서 구해온 답안이 정확한 것인지 똑똑히 가리지 못하게 된다. 이는 아주 근본적인 손실이 아닌가? 겉으로 보기에는 시간을 절약한 것 같고 생각을 절약한 것 같지만 사실은 수련의 근본에서 벗어난 것이다.
반대로 만약 문제와 곤란에 봉착해 모두 법에서 깨닫고, 법에서 수련인의 지혜를 개발하고,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학습하는 가운데 구함이 없이 스스로 답안(사실 사부님 법신과 정신들이 당신이 합격한 것을 보고 당신에게 준 답안이다)을 얻는다면 그럼 모두들 다 아주 빨리 제고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지름길이며 아주 많은 손실을 줄일 수 있고 자신에 대한 교란을 감소시킬 수 있으며 사람을 더 잘 구도할 수 있고 동시에 자신도 법에서 빨리 제고할 수 있다.
사실 대법제자 서로 간에 교류하고 돕는 것은 필요하며 이것이 왜 대법 수련에서 단체 환경에 참가하는 문제를 강조하는가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자기 신변의 동수들과 교류하는 것인데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진정으로 필요한 모순환경, 교류환경이다. 이외에 상호 교류와 상호 협조가 필요하지만 이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과는 다르다. 의지하는 마음은 수련에 장애를 조성할 수 있고 심지어 자신을 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3. 많은 기술문제들은 마음을 조용히 하고 보면 그리 어렵지 않아
기술을 배우는 사람은 기술과 방법에 집착하기 쉽다. 기술을 배워보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기술문제에 직면하면 당황하고 긴장하게 되며 심지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된다. 사실 그때 ‘모르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 들떠 스스로 당황하고 자신을 속인으로 여긴 것이다. 또는 약간의 고생을 무릅쓰고 연구하고 싶지 않아 조성된 것으로 사실 정말로 어려운 것이 아니다.
믿지 못하겠다면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라. 도대체 불법(佛法)이 높은가 아니면 외계인이 높은가? 글자를 전혀 모르는 할머니가 진심으로 법을 배우자 단시간에 『전법륜』을 능숙하게 읽을 수 있는데, 우리 글을 아는 사람들이 진상을 알리는데 사용하는 도구를 배우려한다면 어찌 배울 수 없겠는가? 반드시 배울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초상적인 사람이며 수련인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말해서 외계인이 현대인에게 준 기술은 상당히 저급한 것이다. 과거 고대인들은 달을 하늘에 쏘아 올릴 수 있었고 그 달은 이렇게 오랫동안 정상적으로 운행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외계인들이 사람에게 준 기술, 가령 컴퓨터, 프린터, 팩스와 같은 이런 기본적인 전자제품들은 비록 끊임없이 개선되고 기술이 날로 좋아지는 것처럼 보이며 어떤 때는 아주 복잡하고 기계적으로 보이지만 그 기본적인 요령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므로 특히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조용히 하고 시간을 좀 들이면 모두 알 수 있다. 아울러 속인의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컴퓨터 전공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또 일부 자주 나타나는 기본적인 기술고장이 종종 교란을 조성하기도 한다. 정말로 파손되어 부품을 교환해야 하는 경우는 제외한다. 이 방면에서 우리 대법제자들은 더욱 우수한 점이 있으니 우리가 안으로 찾고 자신의 심태를 조정한다면 곧 내부적인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 여기에 발정념을 결합한다면 외부적인 교란을 제거할 수 있으며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것 역시 인터넷 봉쇄에 직면해 ‘기술 전문가’들도 어쩔 수 없는 것을 컴퓨터를 모르는 일부 어린 제자나 할머니, 농민대법제자들이 초상적인 우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원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각자는 법에서 닦아낸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물어나 나온 것이 아니다. 수련은 마음을 닦는 것을 중시하며 근본적으로 속인의 관념을 개변해야 한다. 여러분들이 각도를 바꿔 문제를 보고 공동으로 더 잘 정진하길 희망한다.
개인의 인식이니 삼가 대법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문장발표 : 2008년 1월 2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1/22/170849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