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월 16일】 최근 대륙 각지에서 여전히 동수들이 박해받는 소식이 끊임없이 전해져 온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가슴이 아픈 것을 제외하고, 사고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정법 최후의 관두에 왔음에도 여전히 이렇게 많은 동수들이 박해 받는가?’ 우리는 이것이 모두 그 동수들의 심성(心性)문제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의 정체이며 그들의 일은 바로 우리의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과 일부 동수들의 심태를 자세히 관찰해본 후 우리가 늘 일종 속인의 인식에 의해 장애받음이 아주 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문제를 보는 것이 늘 자신도 모르게 일종 속인의 사유논리에 빠져버리는데 가령 무슨 일에 부딪히면 우리는 늘 그 일속에 빠지고, 우리가 어떠어떠하게 해결해야 하고 어떠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하면서, 거기에서 벗어나 법에서 그 일을 보지 못하고 심성에서부터 자신의 원인을 찾지 못한다.
예를 들면 일부 동수들은 평상시 아주 확고하며 늘 진상을 알리는 일부 일들을 하지만 사실 사상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사람의 그런 인식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늘 ‘만약 체포되면 어떻게 하지? 그 악경들이 억지를 쓰면 어떻게 하지? 지금 정부와 국가 모두 억지를 쓰는데 나처럼 힘없는 백성이 정부에 대항할 수 있을까?’하면서 근심한다. 이런 사람의 인식은 평상시에는 모두 ‘눌려’있을 수 있기에 법리상에서 분명히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일단 이런 동수들이 사악에 의해 검은 소굴에 납치되면 마음속으로 감당할 수 없어 사람의 관념과 인식이 모두 나올 수 있다. 그 결과 무형 중에 사악의 박해를 승인하게 되며 최후에는 박해가 발생하게 만든다.
나는 여기서 이 문제에 대해 나의 약간의 인식을 말해보고자 한다. 만약 타당하지 못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롭게 지적해주기 바란다.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사악이 제멋대로 날뛰거나 혹은 강제로 인간의 정권(政權)을 이용해 우리를 박해할 수 있는가?”이다. 대답은 물론 부정적이다. 아주 많은 동수들은 안전에는 무슨 ‘안전장치’가 없다고 여기거나 또 어떤 동수들은 ‘신사신법(信師信法)이 부족’하다고 여긴다. 사실 나는 모두 아니라고 본다. 내가 보기에는 ‘신사신법(信師信法)’은 이성적인 인식을 기초로 하여 건립된 것이다. 다시 말해 법에서 보다 분명한 인식이 있어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것이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며, 사람의 ‘정(情)’이 작용하는 이지적이지 못한 행위는 더욱 아니다.
동수들이여 한번 생각해보자, 우주의 특성은 무엇인가? 바로 ‘眞善忍’이다. 우주 대법은 속인 이 한 층을 포함해 각 층차를 관통한다. 대법을 박해하는 사악 역시 애초에 법이 육성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역으로 말해서 그것들도 완전히 대법의 제약 하에 있는 것이다. 때문에 사악이 어떻게 우리의 틈을 타 우리를 박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대법은 공평한 것으로 당신을 제약하고 그것도 제약하기 때문이다. 대법은 단지 바르고 선량한 생명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면적이고 악한 생명도 마찬가지로 요구한다. 그것들이 대법제자의 ‘틈’을 타려 한다면 그럼 대법제자는 역으로 그것들을 제압할 수 없는가?
사악이 하늘의 이치를 거스를 때 우리는 마찬가지로 대법의 법리에 따라 엄숙하게 그것들을 청리(淸理)하고 처리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생명이든 모두 반드시 대법에 따라서 해야만 허락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 어떤 생명도 감히 제멋대로 무슨 일을 한 적이 없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일체 것들은 모두 그것의 근원이 있다.”(『전법륜』제9강) 그럼 속인 여기에서 발생한 일도 당연히 우연한 것이 아니다. 비록 박해는 구세력(舊勢力)이 조성한 것이긴 하지만 역으로 말해 만약 우리가 모두 절대적으로 바르게 하고 완전히 법에서 인식한다면 이번 박해는 발동되지 못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선을 쉽게 해설』에서 말씀하셨다.
“만약 한 민족이 진정으로 선량하다면 업력은 꼭 작을 것이며 또한 절대 전쟁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大法의 원칙이 허용하지 않으며 우주의 특성이 일체를 제약하기 때문이다. 사람도 선량한 민족이 침략을 받을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주의 특성 ― 大法은 거시적인 것에서 미시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전반 천체에 분포되어 있지 않은 곳이 없다.”
나는 여기에서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바르게 한다면 대법 역시 박해를 허락하지 않았을 것임을 깨달았다. 박해가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이 법리상에서 인식한 것이 아직 그다지 분명하거나 완벽하지 못한 것과 아주 큰 관계가 있으며 또 사람의 인식을 더하고 사람 중에서 쌓아 온 소위 ‘경험’의 교란 때문에 일종 ‘어찌할 수 없는’ 정서가 생겨나와 변칙적으로 사악의 박해를 승인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말씀하신 적이 있다.
“연공인으로서 당신이 늘 그것을 병이라고 여긴다면 실제로 당신은 구한 것이다. 당신이 구하여 병을 얻었다면, 그 병은 눌려 들어갈 수 있다. 한 연공인으로서 心性(씬씽)은 마땅히 높아야 한다. 당신은 늘 병이라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데, 병이라고 두려워하는 것도 집착심이기에 마찬가지로 당신에게 번거로움을 가져올 수 있다.”(『전법륜』)
동수들이여, 우리는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의 이런 잠재적인 두려움과 걱정은 사실 이미 일종 변칙적으로 ‘구한’ 것으로 당신이 박해를 ‘구해’왔으니 누가 당신을 관할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우리 이 우주 중에는 하나의 이치가 있다. 당신 자신이 구하는 것은 누구도 상관하지 않으며, 당신 자신이 가지려 하면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다.”(『전법륜』)
바로 우주 중에 이런 법리가 있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마음이 바르지 않고 더욱이 법리상에서 인식이 분명하지 못할 때면 사악이 곧 틈 탈 기회를 잡는다.
그러나 다른 한 각도에서 말하자면 그것들은 정말로 틈을 탈 이런 ‘권한’이 있는가? 우리는 사부님의 제자이며 수련의 길은 사부님께서 안배하시는 것인데, 우리의 수련 여하(如何)가 다른 사람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물론 우리는 마땅히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당신은 사부님이 아닌데 당신이 나를 ‘고험’하고 나의 ‘부족’을 찾아낼 자격이 있는가?” 근본상에서 말하자면 우리의 수련은 자신에 대해 책임지는 것으로 결코 사악이 수련시켜 주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들도 함부로 간섭할 수 없다.
아울러 우리는 수련 과정 중에서 틀림없이 집착이 있을 것이다. 모두 내려놓았다면 바로 원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우리는 우리가 현재 처해 있는 그 한 층차의 법의 요구에 도달할 수 있다면 현재로서는 이미 충분한 것이다. 당연히 ‘누락이 있으면’ 박해받아야 한다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다음 일보에 어느 표준에 도달할 것인가는 다음 일보의 일이다.
나는 우리 일부 동수들이 박해받는 이유가 인식상의 부족과 아주 큰 관계가 있다고 본다. 때문에 자신의 작은 깨달음을 써내어 동수들이 공동으로 교류하고 법에서 보다 똑똑히 인식해 박해를 감소시키고 최후의 시각에 보다 바르게, 보다 잘 걷기를 희망한다.
현 단계에서 개인의 깨달음이니 정확하지 못한 곳이 있을 수 있다. 동수들의 교류와 토론을 환영한다.
문장발표 : 2008년 1월 1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1/16/170397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