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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심을 찾아내다

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3월 23일】 나는 일찍이 내게는 질투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가정환경이 아무리 좋고 직업이 좋고 대인관계가 좋아도 또는 큰 벼슬을 하거나 큰 부자라고 해도 내 심태는 모두 평화로웠고 조금도 시샘하지 않았다. 매번 『전법륜』에 나오는 “질투심 이 문제는 아주 엄중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접 우리가 수련하여 원만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에 연관되기 때문이다. 질투심을 버리지 못하면 사람이 수련한 일체 마음은 모두 아주 취약하게 변해 버린다.”는 문장을 볼 때마다 나는 이 방면에서는 수련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한 가지 작은 사건이 나로 하여금 다시 자신을 찾아보게 했다.

딸아이는 외지에서 학교에 다니는데 이번에 겨울방학을 맞아 집에 왔다. 방학이 끝나 짐을 싸면서 커피 한 박스가 남았다. 당시 나는 “네가 필요 없으면 엄마가 먹을 테니 두고 가렴.” 그러자 딸도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이때 남편은 아무 말도 없었다.

딸아이가 떠난 후 남편은 매일 저녁 마시던 차 대신 커피를 마셨다. 나는 원래 커피를 아주 좋아했기 때문에 남편이 커피를 다 먹어버릴까 봐 걱정이 되었다(경제적인 형편상 새로 사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실컷 커피를 마셨는데 마시고 난 뒤 위장 부위가 답답하게 막혀왔다. 생각해보니 자신이 수련을 하면서 음식 맛을 탐한 것으로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또 위가 불편한 것은 ‘입으로 집착을 끊음’을 돕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커피향이 유혹하기만 하면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마시곤 했다. 마시고 난 후에는 명치 밑이 막혀 아주 답답했다. 나는 이것이 바로 “법이 사람을 연마(煉)하는 공법은 바로 일부 상태가 모두 공(功) 중에서, 법(法) 중에서 체현되어 나오는 것이며” “그가 고기를 먹으면 배가 아프고 먹지 않으면 아프지 않은, 이런 상태가 나타날 수 있는데, 뜻인즉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전법륜』)임을 깨달았다.

이에 나는 ‘사부님께서 나더러 명확하게 먹을 수 없다고 알려주셨으니 나는 앞으로 절대 마시지 않겠다. 이래야만 커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커피에 대한 집착이 하루하루 줄어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고 단지 “어쨌든 더 이상 마시지 않으면 된다.”고 여겼다.

어느 날 법학습 도중 갑자기 ‘질투’라는 두 글자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즉각 커피를 연상했다. ‘아이고, 원래 내가 커피에 대해 집착한 것도 질투 때문이었구나! 딸아이가 나더러 먹으라고 한 것을 남편이 다 먹어버리자 마음에 평형을 이루지 못했었구나. 남편이 커피를 좋아해 좀 마셨기로서니 다른 사람을 위해 기뻐하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질투심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질투심을 버리지 못하면 사람이 수련한 일체 마음은 모두 아주 취약하게 변해 버린다.”는 증험이 아닌가. 眞善忍을 수련하는 나의 마음이 남편 앞에서 취약해진 것은 바로 이것을 체현한 것이 아닌가?’

이 일은 나로 하여금 다시 한 번 대법의 위대하고 수승함과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님께 달렸다.” 나는 당신이 진정으로 수련하고 착실히 수련하기만 하면 대법은 끊임없이 당신을 바로 잡아주고 가호해주며 스스로 찾아내기 힘든 사람마음을 찾아 그것을 없앨 수 있게 하고 사람으로부터 걸어 나와 사부님을 따라 법을 바로 잡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을 깊이 체험할 수 있었다.

개인의 체험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며 자비롭게 지적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6년 3월 2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영문위치 :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6/4/5/71584p.html
중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3/23/123485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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