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질투심을 똑바로 인식해 자아를 내려놓고 대법을 원용하자

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12월 18일】 이 문장을 쓸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수련 상태가 줄곧 좋지 않았고 또 자아를 내려놓지 못해 지금까지 미뤄왔다. 최근 사이트에서 동수들이 쓴 교류 문장을 보고 큰 감촉과 계발을 받았다. 동수들과의 교류 및 자아를 돌파하기 위해 문장을 써서 내기로 결정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설법할 때에 늘 질투심 문제를 말했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중국에서는 질투심의 표현이 극히 강렬하며, 강렬함이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기 때문에 자신마저도 느끼지 못한다.”(『전법륜』)

바로 사부님께서 설법에서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질투심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 성격이 내향적이고 자신을 비하하며 말을 잘하지 못하는데다가 쟁투심이 강했기 때문에 질투심이 아주 은폐적으로 표현되어 더욱 강렬했고 더욱 오래 지속되었으며 더욱 완고했다.

그렇다면 질투심이란 무엇인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질투심이 있는 사람은 남을 깔보고, 남이 자기를 능가하는 것을 허용하지 못하며 남이 자기보다 더 나은 것을 보면 그의 마음은 평형을 잃고 견디지 못하며 불복한다.”(『파룬궁』)

“누가 좋은 일이 있어 나타낸다면 다른 사람은 그 즉시 질투하는데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느 직장에서나 혹은 직장 밖에서 상을 받았거나 또는 조그마한 좋은 일이 있어도 돌아와서 감히 말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이 알면 마음속으로 평형을 잡지 못한다. 서방 사람은 이것을 가리켜 동방 질투 또는 아시아 질투라고도 한다.”(『전법륜』)

“이는 우리가 과거에 실시했던 절대평균주의와 일부 관계가 있다.”(『전법륜』)

“두 가지 성격이 관념상 다르기에 일을 함에 생기는 효과가 같지 않다. 중국 사람은, 만약 상사가 칭찬했거나 또는 당신에게 어떤 이익을 주었다면 다른 사람은 마음속으로 평형을 잡지 못한다.”(『전법륜』)

‘남이 가진 것을 원망하고 남이 부족한 것을 비웃는’ 이것은 속인의 질투심에 대한 생생한한 묘사이다.

속인 사회에서 질투심은 아주 심각하게 표현되는데 시시각각 도처에서 표현된다. 강렬한 질투심은 사람의 흉금을 아주 협애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게 만든다. 사람으로 하여금 이지를 상실하고 변태심리로 만들며 모든 것을 증오하게 할 수 있다. 『구평』 제 5평에서 “파룬궁의 발전과 관리 방식은 중공을 몹시 질투하게 만들었다.” “파룬궁 창시인은 평민 출신임에도 설법을 때면 각계의 교수, 전문가, 유학생들이 운집하며 수많은 박사, 석사들이 심지어 만 리를 멀다하지 않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듣는다. 리훙쯔 선생의 강연은 몇 시간을 말해도 원고가 필요하지 않으며 녹음한 것을 기록하기만 하면 곧장 출판해서 책으로 만들 수 있다. 이는 허영심과 질투, 흉금이 좁은 장XX로 하여금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속인은 명리정(名利情)을 위해 질투하고 서로 다투며 상처를 주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어리석고 사악하며 거짓말을 잘하는’ 장쩌민은 파룬따파와 리훙쯔 대사를 질투하고 ‘眞善忍’을 두려워하며 파룬궁을 증오했다. 때문에 이 어릿광대는 우주 중의 구세력과 사악한 생명에게 이용당해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이번 박해를 발동한 것이다.

나는 동수에 대한 질투심의 표현이 아주 강렬했으며 어떤 때는 자신이 의식하지도 못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사악의 검은 소굴에서 정념으로 뛰쳐나온 수련생이 자신이 탈출한 과정을 말하는 것을 보면 나는 무슨 과시할 것이 있는가 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 질투한다. 어떤 수련생이 다른 동수들 사이에 성망이 아주 높은 것을 보아도 질투하고, 어떤 수련생이 법을 실증한 일을 크게 하고 영향이 크게 한 것을 보면 나는 따라갈 수 없다고 여기면서 또 질투한다. 어떤 수련생이 법을 일찍 얻고 수련을 착실히 했으며 아는 것이 많아도 나는 질투한다. 어떤 수련생이 사부님의 학습반에 참가했다고 하면 흠모하면서 질투하고, 사부님께서 평어(評語)를 다신 다른 수련생의 문장을 보아도 마음속으로 흠모하면서 또 질투한다. 어떤 수련생이 협조를 잘하고 대인관계가 좋으며 일을 잘해도 질투하고, 어떤 수련생이 가정환경이 좋아 출근하지 않아도 되어 많은 시간을 투입해 3가지 일을 하는 것을 보아도 질투한다. 어떤 수련생이 심득체험을 발표해도 질투하고 어떤 동수의 신체가 잘 연화(演化)되어 젊게 보이고 피부가 좋아도 질투한다. 어떤 수련생이 다른 사람을 나보다 잘 대해주고 그를 나보다 중시하면 마음속으로 분분히 불평하고, 어떤 수련생이 내 수련이 부족한 곳을 지적하면 불복하거나 심지어 바로 쟁론을 벌인다. 어떤 때는 어떤 사람이 모 수련생이 나보다 낫다고 하면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배후에서 남을 의논하며 내가 좋아하지 않는 수련생을 비방하면 아주 듣길 원하는데 어떤 때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부화뇌동하며 들은 풍문을 전파한다.

나는 이렇게 몇 년 동안 내려놓지 못한 수련인 중의 명, 리, 정과 동수 사이에 협력을 잘하지 못해 3가지 일을 잘할 수 없었으며 장기간 마난에 처해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지역에서는 보편적으로 정체협력이 좋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한 지역의 일부 동수들은 몇 개 큰 파벌로 나뉘어 장기간 모순이 끊임없이 깊어졌고 문제가 아주 복잡하게 변했다. 사부님의 『호주 수련생에 대한 설법』을 본 후부터 우리는 모두 아주 큰 진동을 느꼈고 모두들 자신의 거대한 차이와 존재하는 심각한 문제들을 보았다.

일 년 동안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학습하며 안을 향해 찾으면서 나는 점차 자신을 똑바로 보아냈다. 질투심은 나로 하여금 “이기적이고 화를 내며 스스로 불공평하다고 여기게 했으며” 흉금이 좁아지게 했다. 득과 실을 근심하며 하늘이 나에 대해 불공평하다고 여기면서 스스로 비하하고 자책하며 소침해졌고 근본적으로 사부님을 공경하고 법을 믿지 못했다. 심지어 사부님을 원망하며 ‘질투심’이란 이 악마가 나를 아주 위험한 지경에까지 끌고 가게 만들었다.

사부님의 『정진요지-집착을 더 없애자』를 학습한 후 나는 『호주 수련생에 대한 설법』중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철이 강이 되지 않을까 안타깝다”는 것과 사부님께서는 단 한 사람도 누락시키려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더욱 이해할 수 있었다.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는 나를 강렬히 진감시켰고 사부님의 노파심은 나로 하여금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게 만들었다.

뼈아픈 사색을 거친 후 사부님의 무거운 망치는 나를 정신 차리게 했다. 나는 반드시 법에서 질투심의 근원을 똑똑히 가려내고 각종 표현과 다른 집착심 간의 상호관계를 가려내야만 하고 그래야만 철저하게 그것을 제거할 수 있다. 나는 사람의 끊임없는 욕망과 쟁투심, 질투심은 서로 상생하며 서로 강화하기 때문에 제거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본다. 비교하는 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쉽게 질투심과 자기 비하가 생길 수 있고, 쟁투심을 제거하지 않으면 쉽사리 질투심을 생기게 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한 수련인으로서 개인수련을 가장 중요하게 보고 수련의 층차와 원만 후에 얻을 과위를 아주 중하게 보는데, 이렇게 줄곧 자아를 높이고자 추구하는 마음은 아주 무서운 것으로 자심생마(自心生魔) 하게 할 수 있다. 구하고 얻지 못한 후의 절망은 또 일정 층차의 수련인으로 하여금 나쁘게 변하게 할 수 있으며 이렇게 구해온 거대한 관(關)과 난(難)을 감당하지 못하면 자신을 훼멸시킬 수도 있다. 사실 이 역시 미혹 중에 있는 생명의 망념이다.

수련인이 수련 중의 이익(명리정)에 집착해 모두 얻고자 하면서 포기하려 하지 않으면 쟁투심의 표현도 아주 강렬하다. 밖을 향해 구하고 서로 불복하면서 서로 양보하지 않고 맞선다. 수련인의 질투심이 표현되는 것은 비교하는 마음이 중하고 자신이 남보다 수련을 높이하고 잘하고자 하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뛰어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또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얕잡아보며 심지어 마음속으로 악념(惡念)이 생기거나 좋지 않은 방식을 채용해 사사로이 분노를 발설하는데 정말로 자신을 해치고 남을 해친다. 만약 혼자 고집을 부려 이렇게 계속 내려간다면 대법에서 떨어져 나가 자신을 훼멸시킬 수도 있다.

그 근본을 따져보면 일체 사람 마음은 모두 수련인의 근본적인 집착인 ‘자아에 대한 집착’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이 일체의 내원은 구(舊)우주의 근본속성인 ‘사(私)’에서 내원한다. 사부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반드시 사부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며 일체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다그쳐 중생을 구도하도록 하자.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반드시 眞善忍을 실증하고 신우주의 대법을 성취해야 한다. 신우주의 미래 대각자로서 우리는 반드시 신우주의 특성을 펼쳐내야 한다. 바로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이다.

이상은 개인의 인식이니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문장발표 : 2007년 12월 1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12/18/168578p.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