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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純淨)한 마음으로 신성(神聖)한 일을 하자

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12월 25일】 우리 지역에서는 99년 ‘7.20’부터 줄곧 사오(邪悟)한 사람이 있었는데 몇 년 동안 적지 않은 수련자들을 이끌었다. 그를 따라 사오한 사람이 있고 또 그의 변환(變幻)된 말과 가상에 미혹 당함으로써 그를 크게 수호하거나 심지어 보호해 주는 사람이 있지만 아직까지도 분명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정황을 겨냥해 우리는 조사를 통해 그를 폭로하는 문장을 한편 썼지만 명혜망에서 발표하지 않았다. 나중에 동수들은 모두 그의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영향과 손실을 가져왔는데 어찌 발표하지 않았는가 하고 말했다. 동수들과 교류한 후 나는 일이 지금 이 정도까지 이르게 된 것은 우리의 마음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1. 마음 씀이 순수하지 못했다. 원고를 쓰고 원고를 편집하는 과정중에 이 문제가 반영되었다. 사실 우리는 원고를 쓸 때 단지 사건과 자신이 깨달은 법리를 되도록 정확히 표현하면 되고(물론 글의 수준은 되도록 제고해야 한다), 생각할 것은 마땅히 법리, 정체, 동수, 중생이어야지 발표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마땅히 되도록 편집 동수들을 위해 생각해야 하고 그들의 부담을 덜어주어야 하며 완전히 그들에게 의지하면 안 된다. 문장을 수정하는 것은 교류하는데 더욱 유리하고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속인도 명혜망을 보고 있다) 유리하다.

2. 표준이다. 원고를 보낸 후 많은 동수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빨리 발표되라. 문장이 발표되면 우리는 다시 사오한 자, 인식이 분명하지 못한 사람들을 도와주기가 쉽고 그들에게 문장을 보여주면 할 말이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큰 문제는 명혜를 보라고 하셨다. 명혜는 우리가 교류하는 하나의 무대이고 모든 문장은 큰 방면에서는 물론 문제가 없다. 하지만 여러 가지 원인으로 문제가 없는 모든 문장을 다 발표할 수 없다. 바로 어떤 동수들이 말한 것처럼 “명혜에서 발표하든 하지 않든 똑같은 일이며 우리 마음속에 법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표준이 있어야 한다.” 개인적인 인식으로는 명혜에서 발표되었다면 물론 우리의 일에 대해 도움이 아주 크겠지만 그것은 단지 우리에 대한 도움일 뿐이다. 진정하게 수련생을 도와 돌아오게 하는 것은 그로 하여금 법에서 인식하고 법리가 명백하게 해야만 진정하게 이지적으로 깨어날 수 있다. 폭로 문장 중의 내용, 도리는 우리가 모두 말할 수 있고 심지어 더욱 전면적으로 더욱 투철하게 말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얼굴을 맞대고 말하지 못하고 명혜에서 발표하기만 기다린단 말인가? 명혜에서 우리의 문장을 발표하지 않으면 그 삿된 말이 바르게 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모두들 우리가 보낸 문장이 발표되기를 희망하고 혹은 이 일을 중시한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이 받아들인 것, 우리가 의지하는 것은 명혜이지 법리가 아니다. 원래 법을 착실하게 배우지 않고 게다가 사람의 마음이 심해져서 사오하고 미혹되었던 것이니 우리는 방법을 찾아 그들이 법으로 돌아오게 했어야 옳다.

다른 한편 동수들에게는 확실히 또 이런 현상이 있다. ‘나는 모모 수련생이 말하는 것을 듣기 좋아하고 똑같은 도리라도 모모가 말을 해야만 받아들일 수 있다.’라고 말한다. 물론 제 삼자도 모두 마땅히 자신을 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은 왜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가? 다른 사람은 왜 나를 받아들이는가? 말을 들은 사람도 자신이 받아들인 것이 이치인지 아니면 사람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설법 중에서 이미 아주 투철하게 말씀하셨으며 특히 『파룬따파–호주 수련생에 대한 설법』 녹화를 동수들이 다시 진지하게 학습하기 바란다.

물론 굽은 길을 걷는 수련생을 도와주기 위해 방법이 바르다면 우리는 모두 사용할 수 있다. 관건은 집착해선 안 된다는 것으로 집착하면 쉽게 틈을 타게 된다. 만약 우리가 명혜에서 발표했는가 하지 않았는가를 지나치게 마음에 두지 않고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확고하게 견실하게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잘하며 제 위치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럼 정념으로 법을 실증하는 것이다.

3. 하는 것과 닦는 것. 조사하고 폭로하는 과정에서 동수의 협력이 관련되었다. 어떤 동수들 사이에는 간격이 있었지만 일을 할 때는 모두 따지지 않고 자아를 내려놓고 마음을 합쳐 잘 협력했는데 이것은 좋은 일이다. 바로 이렇게 함으로서 조사를 진행하기가 좀 순조로웠다. 그러나 어떤 수련생은 단지 표면 행위에서만 했지 실질적으로는 도리어 철저히 닦지 못했다. 또 말하자면 단지 집착, 간격을 한 쪽에 두고 그것이 이 일에 영향을 주지 않게끔 했을 뿐이며 마음에는 아직도 고집하고 있었다. 오직 기타 일에 장애가 부딪쳤을 때에만 비로소 자신을 볼 생각을 한다. 비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단지 수련을 위해 자신을 찾았기 때문에 도리어 아주 착실하게 닦지 못했고 아주 피동적이었다. 원고가 일단 완성되면 또 원래 마땅히 닦아 버릴 것들을 다시 주어오게 되었고 일체는 예전대로 되었다. 심지어 더욱 엄중해지는 것을 초래했다. 비록 사악의 교란과 강화가 있었지만 자신의 씬씽(心性)은 어떠한가? 구세력(舊势力)은 약점을 잡아 일을 저지르는데 설사 구세력이 없다 해도 우리는 잘 수련해야 하고 잘 닦아야 하지 않는가?

여기에서 동수에게 일깨워 주고 싶다. 일을 함에 자신을 닦는 것을 잊지 말고 자신을 잘 닦아야만 적은 노력으로 효과가 더 커질 수 있고 진정하게 소원을 이룰 수 있다.

문장완성: 2007년 12월 2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7/12/25/1690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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