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미국 대법제자
[명혜망 12월 13일] 신운 갈라는 사존께서 친히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뉴욕 성탄 갈라가 임박함에 따라 정사 대결이 격렬하여 뉴욕 제자들에게 주는 압력이 거대하다. 똑같은 사부님의 제자로서 나는 전방으로 나아가 한 몫 거들어 주리라 결정을 내렸다.
뉴욕에 한번 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많고 많은 유형 무형의 저애력을 뚫고 나와야 하며 게다가 오래 있을 방법이 없으므로 유한한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겨 사악을 제거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힘껏 도와야 했다.
그날 우리는 온 밤 차에 앉아 시달리면서 맨하탄에 도착하였다. 점심을 급히 먹고 뉴욕 제자들이 준비해 준 숙소로 갔다. 동수들이 이미 모두 임무를 맡고 떠났다는 것을 알고는 나는 갈라 전단지를 짐 끌개차에 싣고 부근의 지하철 역으로 가서 나누어 주었다. 다 나누어 주고 나니 밤의 장막이 이미 소리 없이 내렸다.
이튿날 아침 또 단체로 임무를 분배 받을 사이도 없이 나는 방금 인쇄된 갈라 특간 한 묶음을 끌고 지하철역 입구에 가서 배포하였다. 다 배포하고 나니 시간이 아직 이르기에 숙소로 돌아왔다. 협조하는 수련생이 나에게 황후로 분장 한 후 한 지정된 지점으로 가서 표를 팔라고 하였다. 나는 선녀 분장을 해본 적이 없다. 첫째는 번거러웠고, 둘째는 미(美)를 좋아하는 집착이 일어났고, 나중에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대어 밀어 버렸다. 이번에는 수련생이 비교적 제한되어 있는 것 같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서란 생각을 하면 또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한 수련생이 나에게 화장을 해 주었는데 화장을 너무 이쁘게 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화려한 황후 복장을 하니 정말 맨하탄 거리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표를 팔 때 어떤 사람들은 함께 사진을 찍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찬미를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그자리에서 공연을 보겠다고 하자 나는 기회를 타서 그들에게 신운 갈라야 말로 진정으로 훌륭하고 아름다우니 절대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알려 주었다. 전단지도 상대적으로 배포하기가 쉬웠다. 하지만 유감스러운 것은 우리가 갖고 간 전단지를 전부 다 배포하지는 못하였다.
그날 나에게 수련생이 화장을 해 준 후 거의 두 시간이나 다른 동수들을 기다렸다. 나중에 나는 더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 참지 못하고 먼저 부근의 길어귀에서 전단지를 배포하였는데 만약 좀 더 일찍 이 생각을 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나중에 우리는 길에서 한 시간 반이란 시간을 허비하면서 차를 타고 4시가 다 될 무렵에야 지정된 지점에 도착 하였다. 그곳은 퇴근 시간이라 오가는 차들은 아주 많았으나 아마 눈이 내린 탓인지 행인은 도리어 많지 않았다. 그 다음에 우리는 저녁에 번화한 링켈 센터 부근에 가기로 결정하였는데 그곳에 가야만 전단지도 좀 많이 배포할 수 있었다. 힘을 적지 않게 들였고 수련생이 고생스레 준비한 아름다운 무대 복장을 입었으니 원래 더욱 많은 중생구도에 이용할 수 있었는데 너무도 애석했다.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고 협조하는 동수의 효율이 너무 낮아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낭비했다고 원망했다. 다행히도 나는 아주 재빨리 자신의 心性(씬씽)문제를 의식하였다. 나는 무엇 때문에 안을 향해 찾는 것을 잊었는가? 나는 왜 기다리고 의지하려 하는가? 사실 협조하는 동수도 있는 힘을 다 했으며 아주 고생하였다. 그저 능력이 제한되고 생각이 따라가지 못했을 뿐 협조받는 자로서의 나는 마땅히 주동적으로 가지하고 돕고 원용되게 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오히려 질책하고 원망하고 심지어 혼자 할 염두까지 있었던 것이었다.
삼일 째 되는 날 아침, 나는 주동적으로 협조하는 수련생에게 가서 임무를 받았다. 비록 여전히 시간과 힘을 들었지만 나는 자신에게 자아를 집착하는 생각이 없어, 정체를 원용하는데 영향 주지 않은 것으로 하여 기뻤다. 우리 몇몇 수련생은 비콘극장(Beacon Theatre) 부근으로 가서 그 지역을 휩쓸고 다녔다. 집집마다 다니면서 티켓 판매를 하고 전단지를 보내고 포스터를 붙였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다. 공연을 보러 가겠다고 표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오후에 링켈 센터 부근에 가서 자료를 배포하자고 제기하는 수련생이 있었다. 우리가 그곳에 가니 막 영화가 끝나 사람들이 극장에서 나오고 있었다. 나는 부근의 길어귀에 서서 총망히 오가는 행인들에게 전단지를 나누어 주었다. 나는 무대 복장을 입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전단지를 받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용기를 잃지 않고 한 번 또 한 번 자신감에 충만되어 큰 소리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신운 성탄만회가 비콘극장에서 열립니다. (Holiday Wonders Show at Beacon Theatre.)” 서서히 점점 더 많은 행인들의 얼굴이 더이상 냉냉하지 않았고 더 많은 웃는 얼굴을 나는 보았다. 나는 그들이 모두 미혹 속에서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의 한 면은 가련하게도 사악에게 제압 당하고 있지만 그들의 명백한 일면은 도리어 모두 대법을 기다리고 있으며 모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1999년 10월을 돌이켜 보면 사악은 우리를 사이비교로 뒤집어 씌우려고 하였다. 나는 맨하탄에 와서 당시 세계 무역 센터의 광장에서 비할 바 없이 어렵게 평생 처음으로 대법진상 전단지를 배포한 후부터 무수한 전단지를 배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세인들의 멸시, 무관심, 심지어 깔보고 혐오하는 것에 직면하면서 많게 적게 사람 마음을 버리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더욱 많은 자비를 닦았던 것이다. 해외에서는 맨하탄에서의 진상자료 배포가 가장 어려울 것이다. 직면한 세인들이 가장 복잡하다. 하지만 그날 나는 도리어 종래로 있어본 적이 없는 희열을 느꼈고, 마음속은 중생구도의 자비와 결심으로 충만되었다.
나는 이것이 사존께서 제자에게 주신 가지란 것을 알고 있다. 차에 앉아 신호등을 기다리던 한 사람이 주동적으로 나와 아는체 면서 나를 아주 훌륭한 판매원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언변이 좋지 못하고 공공연히 모습을 나타내기도 싫어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더욱 많은 세인들이 대법의 복음을 듣게 하기 위하여 나는 계속 자아를 돌파하면서 게으름 없이 견지해 나갈 것이다.
네번째 날은 내가 남아 있을 수 있는 최후의 하루였다. 나는 계속 맨하탄에 가서 거리를 휩쓸었다. 열 몇 갈래의 남북 거리, 두개의 동서 거리 구역이 있다. 나는 중간 큰 길역의 많은 상가들은 이미 수련생이 다 다녔지만, 그곳의 일부 작은 골목에는 고급 아파트 주택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서서히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제한된 자료를 이런 주택에 집중하기로 결정하였다. 거의 모든 문지기들이 기쁘게 자료를 받았고 심지어 널리 알리기까지 하였다. 어떤 사람은 보러 가겠다고 하였다. 나는 참으로 이런 생명들 때문에 기뻤다. 저녁이 될 무렵 맡겨진 임무를 완수하여 자료를 모두 배포하였다. 숙소에 돌아와 짐을 꾸리고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타야 할 버스가 차이나타운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일부 중문으로 된 전단지와 포스터를 가지고 갔다. 그곳에 이르러 사악의 통제가 더욱 심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전에 시카고 차이나타운에 가서 포스터를 붙이고 전단지를 배포하던 일을 생각하면 이곳보다 아주 쉬웠다는 생각이 든다. 뉴욕의 동수들은 가급적 그곳에 많이 가서 마당을 청리하여 그곳의 중국 사람들을 구도하기 바란다.
4일 동안의 노정은 아주 빨리 지나갔다. 회상해 보니 해놓은 것이 너무도 제한되었다. 특히 월가(Wall Street)에 갈 수 없게 되어 그곳 중생들이 늘 염려된다. 차이나타운도 너무 적게 하여 뜻대로 되지 못하였다. 사부님께서 제자로 하여금 “사부님을 도와 세간을 행하게” 할 염원을 이룰 기회를 주신데 대하여 마음속으로 감사드린다. 길은 아직 다 걷지 못하였으니 우리는 유한된 시간을 이용하여 효율을 높이고 자아를 내려놓으며 협조를 잘하여 세 가지 일을 잘 함으로써 우리의 신성한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문장발표 : 2007년 12월 1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7/12/13/1683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