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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점을 바로 잡고 위사위아(爲私爲我)에서 걸어나오자

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11월 17일】 대법제자들은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면서 8년이 넘는 역경을 지나왔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보호 하에 애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데로부터 오늘에 이르러 갈수록 성숙해지고 있다. 이 기간에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많은 걱정을 하셨고 지금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자신이 수련 중에 깨달음이 부족하고 사람 마음이 많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해, 동수의 교류 문장을 보면서 대법제자가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세 가지 일을 하는 과정 중에 일을 하는 기점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기점이 맞으면 사악이 틈을 탈 수 없는바 이는 대법제자들이 8년이 넘는 조사정법 중에서 피의 교훈으로 깨달은 법리이다.

사부님을 도와 정법 하는 중에 같은 일을 하는데 왜 결과가 같지 않은가? 이것 또한 우리가 찾아봐야 할 문제이다. 예전에 천안문에 가서 법을 실증할 때 일부 동수들은 당일 가서 당일 돌아왔고 일부 수련생은 잡혀서 박해 당했다. 똑같이 진상자료를 배포할지라도 일부 수련생은 늘 정정당당하게 행동하고 박해를 받지 않는데 비해 일부 동수들은 오히려 체포당해 박해를 받았다. 똑같은 병업 표현인데 일부 수련생은 아주 빨리 고비를 넘기고 일부 수련생은 오히려 오랫동안 시간이 걸려도 넘지 못하고 심지어 생명을 잃는다. 수련생이 사악에게 체포된 후 일부 동수들은 단식으로 마귀굴에서 나왔지만 일부 수련생은 오히려 이렇게 하지 못하고 박해 당해 사망했다. 자료를 만드는 동수들도 일부 자료점은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가동되지만 일부 자료점은 파괴당하고 수련생이 체포되었다. 똑같은 협조인인데 일부는 협조를 아주 잘하여 그 지역에서 정체를 형성했고 일부 협조인은 오히려 모순에 휘말려 체포되어 박해 당한다. 많은 동수들이 이런 정황을 목격했고 일부는 직접 겪었다. 그렇다면 왜 결과가 같지 않은가? 답안은 아주 명확하다. 바로 일하는 기점이 다르기 때문에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사실 대법제자가 세 가지 일을 하는 중에 만약 기점이 정확하다면 이미 자신을 완전히 보호할 수 있다. 명백히 말하면 대법제자는 이미 신(神)이다. 사부님께서는 법속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7.20 이전에 이미 대법제자를 제 위치에 밀어놓으셨다고. 제 위치에 밀어 놓으셨다는 말씀이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바로 이미 불법신통을 갖춘 위대한 신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대법제자들이 사람 마음이 너무 무겁고 깨달음이 부족해 늘 사람 마음으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이해함으로써 사람에서 걸어 나와 신이 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사람과 신은 바로 일념의 차이이다. “속인의 마음을 내려놓고 법을 얻음이 곧 신이로다 삼계 밖을 벗어나 하늘에 올라 부처의 몸을 타세”(『홍음』「중생을 널리 제도」)

대법제자가 사람마음을 내려놓으면 바로 신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대법제자들은 아직도 사람마음을 끌어안고 내려놓지 못하며 신이 되려 하지 않는다.

그럼 대법제자가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면서 세 가지 일을 하는 중에 어떻게 기점을 바로 잡아야 하는가? 나의 이해로는 바로 구(舊)우주의 위사(爲私)한 본성을 철저히 제거하고 신(新)우주의 위타(爲他)한 본성에 동화함으로써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법을 공부하고 연공하는 기점이 단지 자신의 원만과 층차 제고를 위한 것이 아니라 법공부와 연공을 통해 사람 마음을 제거하고 우주 특성에 동화해 본성을 정화하고 신통을 강화하는 것이다. 아울러 사악을 제거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능력을 제고시키는데 있다.

진상을 알리고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기점은 중생들이 진상을 알고 구도되게 하려는 것이지 자신이 얼마나 능력이 있고 위덕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발정념은 자신의 안전을 보호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박해를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악을 제거해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환경을 창조하려는 것이다. 병업 현상이 나타났을 때 정념으로 부정하고 자아를 내려놓으며 병업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대법제자로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병업을 제거하기 위해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아주 빨리 병업 상태를 제거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을 병업 상태를 제거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김으로써 병업 상태의 시간을 연장시킨다. 동수의 단점을 보았을 때 완전히 타인을 위해 상화(相和)하고 자비한 심태로 동수에게 지적해야 하며 질책하거나 원망하고 경시하며 자신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하면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고 모순이 나타나지 않는다. 협조인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자신의 관점을 견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동적으로 상대방을 원용(상대방이 분명히 잘못하는 것은 제외)해야 동수 사이에 간격이 생기지 않고 정체를 형성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한 가지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할 때도 모두 자아를 내려놓고 자신을 실증하려는 요소를 전혀 지니지 않을 때,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기점에 완전히 섰을 때 사악은 틈 탈 방법이 없다. 사악이 틈을 타게 될 때는 항상 다 자신을 실증하고 법을 실증하지 않을 때이다. 예전에 아주 잘 했던 많은 동수들이 결국 박해 당할 때는 칭찬하는 말을 많이 들어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이 일어남으로써 일을 하는 기점을 바로 잡지 못하고 세 가지 일을 하는 중에 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실증함으로써 사악에게 틈을 탄 것으로 교훈은 심각한 것이다.

동수들이여, 정법은 이미 최후의 최후에 이르렀고 우리는 이미 자신이 세간에 온 사명과 어깨에 짊어진 책임을 알고 있다. 우리 함께 구우주의 위사(爲私)한 본성을 닦아버리고 신우주의 위타(爲他)한 본성에 동화하자! 자아를 내려놓고 자신을 실증하려는 일체 마음을 내려놓고, 어떠한 일을 하든지 모두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기점에 선다면 최후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문장완성 :2007년 11월1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11/17/166625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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