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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질책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안을 향해 찾자

글/요녕(遼寧)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10월 26일】 나는 96년에 법을 얻었으니 老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0여 년이 넘게 수련한 후에야 비로소 안을 향해 찾음을 배운 것 같다. 내가 진정하게 안을 향해 찾음을 배웠을 때 이렇게 많은 속인의 마음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고 노제자란 칭호에 적합하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러웠고 다년간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런 속인 마음 중에서 특히 두드러진 표현이 바로 다른 사람을 질책하는 것을 좋아하고 늘 다른 사람의 단점을 보려는 것인데 마치 늘 다른 사람의 수련을 돕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집에서 더 심했는데 남편과 아들이 조그마한 잘못이라도 하면 곧 아주 매섭게 질책하곤 했다.

한번은 남편이 2개 휴지통의 위치를 잘못 놓았다. 나는 곧 큰 소리를 질렀다. “아니!–” 내가 막 뭐라고 하기도 전에 남편이 급히 소리쳤다. “당신 이렇게 하는 것이 眞(쩐)善(싼)忍(런)이야?” 당시 나는 단번에 멍해졌고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 생각해보니 ‘그래, 나는 眞(쩐)善(싼)忍(런)을 수련하는데 이렇게 하면 어찌 眞(쩐)善(싼)忍(런)을 체현해 낼 수 있겠는가? 내가 이런 어투로 말을 한다면 이것이 수련인의 행동이란 말인가?’ 그때 이후 나는 집에서 말할 때 말투에 주의했고 더 이상 강경하게 가족들을 질책하지 않았다. 남편은 “나이가 들더니 할멈이 나한테 잘해주네.”라고 했다. 사실 별다른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단지 말하는 어투만 좀 부드럽게 변했을 뿐이다. 물론 아직도 부족함이 있다.

직장에서 나는 이전에 늘 최고 책임자를 눈여겨보면서 사람들이 그가 불공정하다고 반영하기만 하며 곧 그에게 찾아가 “당신이 책임자인데 일을 불공평하게 하면 모두들 당신에게 승복하겠어요?”하고 따지곤 했다. 어떤 때는 남과 쟁론하다가 얼굴을 붉힐 때도 있었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으면 눈물을 흘리며 아주 비참하게 느낀 적도 있다. 왜 모순이 생기기만 하면 격화되는가? 주요하게는 안을 향해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다른 사람의 단점만 눈여겨보았지 자신이 수련인임을 망각했고 늘 당문화(黨文化) 중의 강경한 말투로 남을 질책했으니 남이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나는 이런 것들을 인식한 후 책임자를 찾아가 말했다. “전에 제가 잘하지 못했고 당신께 말하는 태도가 공손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점차 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그는 “전부 당신 탓만은 아닙니다.”라고 했다. 그때 이후 직장에서도 더 이상 누구를 질책하지 않게 되었다.

표면상으로 보자면 다른 사람을 질책하는 마음을 내려놓았지만 사실 어떤 것들은 여전히 아주 깊이 감춰져 있었다. 이전에 한동안 모두들 갑(甲) 동수에게 일부 문제가 있음을 보고 나더러 그녀에게 가서 말을 해보라고 했다. 내가 문제를 지적한 후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여전히 밖으로 밀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내 말투에 문제가 있는가? 선심(善心)이 부족한가? 그녀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보지 못한 것인가? 당시 나는 마음속으로 기쁘지 않았다.

나중에 마땅히 안을 향해 자신을 찾아보아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동수들이 이 일을 물었을 때 나도 의론해보았지만 사사로이 갑 수련생을 질책한 것에 불과했다. 어느 날 나는 갑 동수의 몸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문득 깨달았다. ‘모두들 갑 동수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으니 이로 인해 그녀에게 좋지 않은 물질을 가중시킨 것이 아닌가? 동수 사이에 나는 본래 마땅히 원용하는 작용을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중에 대법제자의 공간장을 격리시키는 작용을 했다. 이 얼마나 큰 누락인가! 다시 한 번 나의 강렬한 집착이 폭로되어 나왔으니 후과는 얼마나 두려운가!’

수련의 길을 잘 걸어가려면 반드시 법을 잘 배워야 하고 곳곳에서 법을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대법제자의 환경을 서로 지적하는 환경으로 만들고 싶지 않으며, 나는 이 환경을 모두 비평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안을 향해 찾는 환경이 되도록 하려고 한다. 모두 자신을 수련하고 사람마다 모두 안을 향해 찾으며 사람마다 모두 자신을 잘 닦으면 충돌이 적을 것이 아닌가? 이 도리는 내가 법을 전한 시작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곧 이야기했는데 그렇지 않은가? 수련인은 결코 지적해서 좋아진 것이 아니고 나 이 사부가 누구를 비평해서 좋아진 것도 아니며 당신들이 서로 비평하고 지적해서 좋아진 것도 아니며 여러분 자신이 자신을 닦아서 수련이 잘된 것이다.”(『로스앤젤레스 시 설법』)

나는 반드시 법을 잘 배우고 근본 상에서 남을 질책하는 마음을 없애고 진정으로 제고해 올라가 정체를 잘 원용할 것이다. 대법제자는 자신이 잘하는 동시에 곧 대법을 실증하고 있다. 만약 자신이 잘하지 못한다면 단지 대법을 실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대법에 먹칠하기 쉽다. 희망하건대 나와 유사한 집착이 있는 동수들은 이를 거울로 삼아 진정으로 안을 향해 자신을 찾고, 최후 수련의 길을 잘 걸어 공동으로 중생을 구도하는 사전 큰 소원을 완수하길 바란다.

부당한 곳이 있으면 동수들이 자비로 지적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7년 10월 2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10/26/165279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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