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10월30일】 우리 이곳의 동수들은 사부님의 《호주수련생에 대한 설법》 비디오를 본 후,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에 깊이 깊이 감동되었다. 많은 동수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사부님의 설법을 보았다. 사부님께서 제자들에 대하여 마치 아이에게 타이르듯이 재삼 타이르시는데, 사부님께서는 마음을 놓지 못하시고 우리를 위해 조급해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속인 속에 돌아가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을 잊을까봐 걱정하셨다. 사부님의 이번 설법은 호주 수련생 정체에 존재하는 문제를 겨냥한 것이고 이런 문제는 우리 이곳의 문제는 아닌가. 우리 이곳의 동수들은 한 차례 소형 교류회를 열었고, 모두들 사부님의 이번 설법에서 말씀하신 문제에 대해, 그리고 최근에 우리 주위의 수련생이 납치되는 이 일을 결합하며 조건없이 안을 향해 찾고 법에서 이 일을 인식했으며 법리상에서 정체적으로 제고했다.
* 자아를 실증하는 문제
사부님께서는 이번에 대법제자가 자아를 실증하는 문제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말씀하셨다. 이런 자아 실증은 각 방면에서 체현되었고, 동수 사이에서는 모두들 함께 문제를 논의할 때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목적없이 말하고 자신의 이야기가 문제 해결에 유익한지를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표면에서는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지만 자신을 실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외 가끔 동수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을 보면 진정으로 동수의 각도에 서서 어떻게 하면 그를 도와줄 것인가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 자신이 깨달은 법리를 급히 상대방에게 강화시키려고 했다. 상대방이 받아들이려고 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상관하지 않고, 가끔 심지어는 자신의 사람의 관념을 지니고 강요하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투명하게 보고 계시지만, 사부님께서는 늘 상의하는 어투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당신이 볼 때 이 일은 이렇게 할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전에 “만약 한 사람이 자기의 어떠한 관념도 없이 개인 이익의 각도에 서지 않는 것을 출발점으로, 진심으로 남이 좋아지도록 남에게 남의 부족함을 말한다면, 혹은 그에게 어떤 것이 바른 것이다 라고 알려준다면, 그는 감동되어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싱가포르 법회에서의 설법》)고 하셨다.
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동수에게 문제를 지적해 줄 때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행했는가? 우리에게 이 방면에 존재하는 문제는 아주 엄중하여 이미 동수 사이의 정상적인 교류에 영향주고 있다. 사부님의 말씀을 모두 말할 수 있지만, 우리는 문제에 부딪치면 오히려 자신을 실질적으로 수련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는 설법하시고 가실 때 또 한 번 우리를 타이르셨는데, 말해줄 때는 명백하다가 일에 부딪치면 실질적으로 수련하지 않고 흐리멍덩할까봐 걱정하고 계시지 않는가? 자아 실증은 세인을 향해 진상을 알리는 방면에서, 상대방의 매듭이 어디인지를 모르고 자신의 사로(思路)에 따라 과장하여 말하는데에서도 체현된다. 이렇게 한 결과, 사람을 밀어냈고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람을 구할 때는 그의 집착에 따라 가서 이해해주며 말해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목적은 세인을 구하는 것이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 조건없이 안을 향해 찾는 문제
사부님께서는 이번 설법에서 또 한 번 조건없이 안을 향해 찾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우리가 속인과 모순이 있을 때, 그것은 반드시 우리가 속인의 그 층차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신은 사람과 모순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고, 대법제자가 속인 속에 떨어져 속인의 집착이 있는 것인데 대법제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안을 향해 찾음은 동수 사이에서 체현된다. 동수들과 모순이 있을 때 마땅히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수련 방식은 바로 우리의 수련이 잘 된 그 일부분을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갈라 놓으셨기 때문이다. 인간세상에 남겨놓은 것은 우리의 잘 수련되지 않은 부분이고 또한 좋지 못한 것이 있으면 폭로되어 나와야 하는데, 목적은 그것을 닦아서 제거하기 위함이다. 이런 수련형식은 우리가 서로 보는 것이 마치 모두 상대방의 문제인 것 같지만 사실 이러하지 않다. 남의 잘 수련된 부분을 당신은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을 때 우리가 오로지 안을 향해 찾고 집착을 찾아내어 제거하기만 하면 이런 환경은 비로소 정체적으로 제고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문제는, 적지 않은 동수들이 안을 향해 찾는 것을 알지만, 일부 동수들은 안을 향해 찾을 줄을 모르고 늘 속인의 방법으로 찾는다. 심지어 사당 문화의 자아 검토하는 형식으로 안을 향해 찾는다. 혹은 표면을 찾고 근본을 찾지 않는다. 나는 어떤 말을 하지 말아야 하고 어느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라고 말하는 소리가 늘 들려온다. 이는 모두 사부님께서 우리 수련인에게 알려주신 안을 향해 찾는 것이 아니다. 수련인의 안을 향해 찾음은 마땅히 대법의 가르침을 받들어 자신의 그 마음을 찾는 것이다. 어느 집착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는지를 본다. 만약 집착이 없다면 우리의 상태는 마땅히 어떠한 정황에서도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만약 표현이 좋지 못하다면 그것은 반드시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마음이 움직이면 집착하여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 마음이 있음이다. 이렇게 하면 이 집착심을 찾기 힘들지 않고 찾았다면 또한 그것을 단호하게 제거해야만이 안을 향해 찾는 진정한 목적이다. 안을 향해 찾는 것은 또 조건이 없어야 한다. 어떠한 조건 있는 것은 모두 진정하게 안을 향해 찾는 것이 아니며, 반드시 어떠한 정황 하에서도 어떠한 일이 발생해도 모두 자신의 문제를 찾아야 한다. 심지어 당사자가 아니어도 이 일을 내가 보았다면 당신도 자신을 찾아야 한다. 만약 우리 모두 진정으로 안을 향해 찾는 환경을 형성했다면 우리 정체는 아주 큰 제고가 있을 것이고, 사부님께서도 우리를 걱정하시는 마음을 더실 수 있을 것이다.
* 의지하는 마음의 문제
사부님께서는 이번 설법에서 의지하는 마음의 문제를 이야기하셨는데, 일부 수련생은 불학회가 관리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우리 여기에는 이런 의지하는 마음이 두 방면에서 체현되는데, 한 가지는 일이 생기면 법에서 인식하고 자신을 제고하고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자신이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잘 수련된 수련생이 어떻게 하는가를 보며 그들이 어떻게 깨달았는가를 들어본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은 본보기가 없고 매개 대법제자는 모두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하고 자신의 위덕을 건립하여야 하는데, 원만하여 자신의 세계를 어떻게 관리할 수 있겠는가고 하셨다. 그리고 한 가지 표현은 바로 일을 하는 데서 표현된다. 일부 동수들은 자신이 기술을 모른다는 구실로 모든 자료를 동수들이 제공하길 기다리고, 심지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도 남이 와서 해결해주길 바란다. 이렇게 하여 구체적으로 일을 하는 동수의 압력이 아주 커지며 법공부 시간도 보장할 수 없으며 오래 지속되면 이런 동수들을 해친다. 사실 명혜망의 교류에서 이러한 교훈은 적지 않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남을 위해 생각해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이때 우리는 왜 이런 동수들을 위해 생각하지 않는가. 우리의 이런 의지하는 마음이 수련생을 해치고 자신을 지체시켰는데, 이제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사부님의 이번 설법에서 우리는 이외에도 많고도 많은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이상의 세 가지는 우리 이곳의 정체에서 존재하는 것만을 정리해낸 것이다.
동수들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문장완성:2007년 10월28일
문장발표:2007년 10월30일
문장갱신:2007년 10월30일 11:27:46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10/30/165463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