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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의 교란과 박해에 직면해 정념으로 대해야

글/하북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10월 15일】 금년 4월 우리 지역에서 교란과 박해 사건이 발생한 이래 많은 동수들이 모두 우리 정체에 표현되어 나온 상태가 두려움임을 인식했다.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전반적으로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할 수 없었고 아주 큰 굽은 길을 걸었다.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비교적 오랜 시간 모두 사악의 교란과 박해 속에 처해 있었다. ‘두려움’ 때문에 아주 많은 동수들이 사람마음과 집착, 관념에 이끌렸고 지체하면서 사람 속에서 걸어 나오지 못했다. ‘두려움’ 때문에 우리 많은 동수들이 정념이 부족한 표현이 나타났고 정정당당하게 정념(神念)으로 사악의 교란과 박해를 마주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구세력에 대해 반드시 전반적으로 부정하고 승인하지 말라고 알려주셨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직면할 때면 도리어 자신의 사람마음, 두려움에 의해 장애가 생긴다. 내 기억에 2001년 그때 사악이 대법제자들을 대규모로 체포했을 때, 나는 그때도 전반적인 부정과 박해를 승인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단지 사악이 우리 이렇게 많은 대법제자들을 감금하고 박해한다는 것만 알았고 그렇다면 밖에 있는 우리 대법제자들이 더욱 잘해야 하며 사악에게 대법제자들은 박해로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했다. 바로 이런 일념에 의지해 나와 동수들은 거대한 압력을 무릅쓰고 보다 많은 표어를 붙이고 전단지를 뿌렸다. 사악은 두려워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잡았는데도 어째서 도리어 이전보다 더 많은 표어가 붙을까? 그것들은 아마도 가족들이 화가 나서 모두 나와 붙인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결국 사악은 물러났다. 대법제자들은 법에 대한 견정한 정념으로 새로운 환경을 개척해냈다.

6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왜 우리 지역은 여전히 사악의 교란과 박해 속에 처해 있고, 왜 사악의 감시와 통제, 잠복, 소란 하는 표현이 끊임없이 발생하며 심지어 담벼락에 대법을 비방하는 표어를 쓰고 매체에서 공개적으로 대법을 비방하는 현상이 나타나는가? 이 일체는 여전히 우리 대법제자들의 사람마음이 촉성한 것이 아닌가?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바로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았고 구세력을 부정하는 것을 단지 입으로만 하고 표면 형식적으로만 발정념을 했지 행위상에서 진정으로 부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행위상에서 진정으로 박해의 근원을 부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정체에는 부동한 정도의 두려움이 있었다. 여기서 나는 두려움의 근원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다시 사악에게 박해받을까 두렵고, 죽을까 두려우며, 사람 중의 고만한 명리정(名利情)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편안하게 이 최후 시간을 넘어가지 못할까 두려워한다. 두려움의 배후는 바로 사(私)이며 사(私)속에는 생과 사에 대한 집착, 명리정에 대한 집착과 안일을 구하고 의지하며 기다리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려는 마음이 포함된다. 사실 두려움은 ‘사람’의 표현이며 그것은 사람이 후천적으로 형성한 관념이지 우리의 진정한 자신을 대표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도리어 그것을 우리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으로 여겼다. 가장 심각한 것은 주이스가 분명하지 못한 표현인데 진아(眞我)와 가아(假我)를 가리지 못했고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누구인지 가리지 못했다. 이 때문에 비로소 명리정에 이끌리고 사람마음에 이끌리며 관념에 이끌리고 인류사회의 형세변화에 이끌렸다. 사실 가상(假相)과 환상(幻象)에 의해 이끌린 것으로 ‘가짜’를 ‘진짜’로 여긴 것이다. 그러므로 비로소 “바람이 불면 따라서 움직이는” 상태가 나타났고 “한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압”(『최후의 집착을 제거하자』)하지 못했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는 우리 자신의 마음에서 생겨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지 않은가?

두려운 마음은 또한 사부님과 법을 믿는 정도가 충분하지 못함을 표현한다. 진정으로 사부님과 법을 믿고 법속에 있는 생명이라면 표현해내는 것은 반드시 정념(神念)이며 사악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악이 대법제자를 두려워하는 것만 있을 뿐이다. 여기까지 말하니 아직 우리 자신의 마음이 바르지 않으며 시시각각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하지 못했다. 만약 자신을 속인의 층차로 떨어뜨린다면 사악은 곧 당신을 박해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악이 두려워하는 것은 神이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정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사악은 곧 교란하고 박해하려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렇게 존재하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교란과 박해를 받지 않고 정념으로 대할 수 있으며 행위상에서 진정하게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할 수 있다면 사악의 박해는 철저히 해체될 것이다.

현재 우리 지역의 동수들은 모두 사람을 구하는 이 주선(主線)을 근본으로 하고, 수련생을 구하는 이 한 가지 계기를 이용해 전면적으로 세밀하게 당정(黨政)기관, 정부 관원 및 향(鄕) 진鎭) 촌(村) 간부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있고 보다 많은 세인들을 구도하고 있다. 이 기간에 사당의 교란과 파괴 현상 역시 발생할 것이다. 특히 사당의 국상일과 17대 기간에는 표현이 좀 더 심각하다. 사실 이 일체는 대법제자들의 마음을 향해 온 것이 아닌가? 당신에게 그런 마음이 없다면 사악의 교란과 박해가 손을 쓸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동수들이 더 이상 사람마음, 두려움, 관념에 이끌려선 안 되며 대법제자의 정념으로 대한다면 그 어떤 사악한 생명과 요소이든 모두 해체될 것이며 그 어떤 마난도 해소되며 그 어떤 관도 모두 넘을 수 있다고 본다.

명혜편집부 수련생이 교류 답장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오늘날 대법제자들이 하는 그 어떤 일이건 모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이 주선에 따라 가서 하되 세인들의 접수능력과 감당능력을 충분히 고려해 최대한도로 세인을 구도하고 보다 많은 세인을 구도한다면 일을 잘못하지 않을 것이다.”

다그쳐 사람을 구도하는 동시에 발정념으로 적성현(赤城县) 및 하북성에서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중생이 구도되는 것을 저애하며 중생들을 통제해 대법에 죄를 짓게 하는 일체 사악한 생명과 요소들을 철저히 해체하고 즉각 박해를 끝장내자.

개인의 작은 인식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롭게 지적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7년 10월 1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10/15/164501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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