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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 빨리 박해를 종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약간의 인식

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9월 25일] 《명혜주간》 295회에 수련생이 쓴 《대량의 현세현보는 박해를 종결하는 중요한 도경이다》에 공감을 많이 했다. 8년간의 박해는 너무나 길다. 최근 《명혜주간》에 이 방면에 관련된 문장들이 비교적 많은 것을 보고 난 후 자극이 컸는데, 나는 동수들에 비해서 세 가지 일을 하는 격차가 크기에 사부님의 고생스런 구도에 부끄럽기 때문이었다. 박해를 빨리 종결해야 하는 인식 면에서도 내가 너무 뒤떨어졌음을 느꼈고, 또 확실히 시간을 끌면 끌수록 세인들의 도덕이 더욱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갈 것이며 그럴수록 구도하기가 더욱 어렵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수련생은 대법제자는 의뢰심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제기했는데 나도 바로 이 방면에서 이렇게 생각한다. 사부님께서는 늘 속인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여전히 만일 좀 더 많은 변호사들이 글을 써 내고 말을 할 수 있다면 영향 면이 커지겠는데, 만일 정계, 과학계 방면에서 지명도가 큰 사람들이 좀 더 많이 나왔으면 더욱 좋을 텐데 하고 기대하였다. 안을 향해 심입되고 세밀하게 찾아보지 못했으며, 안으로 닦지 못하였다. 대법제자만이 이번 박해를 종결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주연이며, 대법제자에게는 공능과 신통이 있다는 것을 잊어 버렸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인류는 오늘날까지 발전하면서 일체가 모두 부패[敗壞]하고 있으며, 온 사회, 온 우주 중의 일체 일 역시 잇달아 부패가 발생하고 있는데, 우리 속인 중의 일체 일은 모두 자신이 조성한 것이다.” 박해가 종결되지 않은 것도 당연히 대법제자 자신의 이 마음으로 조성된 것이다. 정념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씬씽 수련으로 닦아낸 것이며, 씬씽이 얼마 높으면 공도 얼마 높은 것이다. 우리가 만일 법속에 능히 용해될 수 있어 잘 수련된 일면으로 사람의 관념, 수련이 잘 되지 않은 그 부분을 억제한다면 우리는 곧 강대한 정념을 발하여 일체 사악을 해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바로 신으로 수련성취 되려고 하지 않는가.

사당은 신과 부처 모두 믿지 않는다. 그에게는 심법의 단속이 없다. 그는 투쟁철학에 의지하여 속임수로 군중을 미혹시킨다. 또 거기에다 당문화를 주입시키고, 군중운동에 의거하는데 이렇게 저렇게 운동하다보면 군중은 곧 왁자지껄하는 패거리가 되어 버리고 마니, 슬프도다! 애닯도다 !

대법제자로서 이 역사적 관건 시기에 사람의 방법을 채용할 수 없으며 더구나 속인에게 기탁할 수는 더욱 없다. 우리는 신의 길을 걸어가는 수련인으로서 사부님께서 키를 잡고 항로를 인도하고 계시며 또 수련해 낸 공능과 신통이 있으므로 곧 사부님과 법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믿음 정도만을 보고 있다. 그것이 곧바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시라고 하면 어떻게 하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지 않는 것이면 곧 결연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부님의 법 한 단락을 다시 공부하자 “만약 정말로 곤란 앞에서 염두가 아주 바르면, 사악의 박해 앞에서, 교란 앞에서 당신이 말한 정념이 단호한 한마디 말은, 사악을 즉석에서 해체시킬 수 있으며, (박수) 능히 사악에게 이용된 사람이 고개를 돌려 도망가도록 할 수 있으며, 당신에 대한 사악의 박해가 종적 없이 깨끗이 사라지게 할 수 있으며, 당신에 대한 사악의 교란이 소실되고 자취를 감추게 할 것이다.” (《각지설법7》) 이 일념은 얼마나 중요한가, 일으키는 작용은 이렇듯 홍대한데 대법제자가 어떻게 파악하는가를 볼 뿐이다.

나는 교류를 하면서 나 자신이 법공부가 깊지 못하고 격차가 비교적 크다는 것을 보편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어떤 수련생은 법공부가 착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정념 할 때 언제나 잡생각을 하게 되어 입정할 수 없다면서 정념으로 이를 제거하려 하지만 작용이 크지 않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발정념 할 때 늘 졸게 되어 그 자신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쫓아 버릴 수 없다고도 했다. 어떤 사람은 또 발정념 할 때 아무런 감각이 없으니 내가 발한 정념이 작용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교류를 하다보면 그래도 동수들에게 긴박감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철이 강철과 같이 되지 못해 한스러워하는 감도 있고, 작용을 좀 더 발휘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도법》경문은 마치 이전에 배운 것 같지 않게 단숨에 우리의 생각을 열어 준다. 97년에 사부님께서는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신경문으로 여기고 보고 있으며, 원래 우리의 그런 생각은 모두 수련이 잘 되지 않은 사람의 일면이 작용을 일으킨 것으로서 본성적인 일면이 인위적으로 억제 당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모르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법공부가 깊지 못하여 법의 내포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제고해야 하며, 수련생이 법공부를 잘하는 것만 보고 자신과의 격차를 찾는 것도 괜찮은 일이긴 하지만 기가 죽어서는 안 되며, 우리는 앞뒤를 가늠해보면서 자신의 제고에 이롭도록 해야 한다.

교류를 하면서 여러 사람 모두 각각 한 마디씩 하면서 적지 않은 초상적인 일들을 교류했다. 한 수련생은 자신의 집 문앞에는 날마다 4,5명씩 모여 잡담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느 날 진상자료를 배포하러 가기로 약속하였는데 그들이 방해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집에서 나의 대법 일에 영향주지 말고 그들이 가버리라고 발정념을 하였더니 잠시 후에 그들이 모두 가버렸다고 했다. 다른 한 수련생은 또, 자신의 손자는 네 살인데 열이 39도로 올라 정념으로 배후의 사악을 제거해준 동시에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읽도록 하여 약과 주사를 쓰지 않고 이틀 만에 나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손자처럼 앓던 애들은 병원에 입원하여 주사를 일주일 동안이나 맞아도 낫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는 이는 바로 정념의 작용이라고 여겼다.

교류를 통해 여러 사람은, 법공부는 실제와 연계하여 격차를 찾아봐야 하지만 기가 죽어서는 안 되며, 열등감은 사실 엄격히 말해서 여전히 신사신법의 문제라고 의견을 모았다. 사부님께서는 “사실 이것은 사람의 일면으로, 法에 대한 인식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초래된 것으로, 인위적으로 당신들 神의 일면을 억제했다. 다시 말해 당신들이 이미 수련 성취된 그 부분을 억제하여 그들이 法을 바로잡음을 저애 하였다. 아직 수련 성취되지 않은 일면이 어찌 주사상(主思想)을 억제하며, 이미 法을 얻은 일면을 억제할 수 있는가?”(《도법》)라고 하셨다. 우리가 수련하는 것은 바로 주의식이므로 주의식이 작용을 발휘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해야 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발정념을 생각해야 한다. 이 역시 대법제자의 가장 주요한 법보의 하나이다.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두렵지 생각하기만 하면 곧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왜냐하면 사부님은 시시로 언제나 우리를 지켜 주시고 있으며, 모두 사부님께서 하시는 것이며,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대법제자의 정념과 신사신법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층차가 제한되어 있으므로 부당한 곳은 동수께서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7년 9월 2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7/9/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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