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허버이 (河北)대법 제자
[명혜망 2007년 8월 27일] 나는 처음 법을 얻었을 때, 사부님의 자비 속에서 목욕 (沐浴)을 하면서 살고 있으므로 내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즐겁고 행복한 생명이라고 생각했다. 7,20 이후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 몇 차례 마난을 겪었고, 이리저리 엎어지면서 지금까지 걸어왔지만 최근 한시기 나는 기쁘지 않았고, 소침해진 마음이 들어 스스로 실망하고 있었다. 기뻐하고 싶어도 긴장된 마음으로 억지로 웃다보니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이 같은 사실을 별로 느끼지 못한 채 세 가지 일을 마치 임무를 완성하는 것처럼 했는데 이것은 수련인이 구비해야 할 자비와 책임이 아니었다.
나의 이런 모습에 대해 반드시 안을 향해 찾아야 했는데, 집에서 나는 남편과 모순을 내려놓지 못하고 나에 대해 말만하면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고 아이의 성적이 내려가면 마음이 조급해 졌다. 또 검찰원에서 전화가 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고려했다. 전에 잘 넘기지 못했던 고비가 늘 머리에 떠올랐다…… 마음속에 있는 이렇듯 많은 집착이 마치 하나하나 무거운 보따리 같았다 .
《전법륜》 제 9강의에서 사부님께서 말씀 하셨다. “여러분 알다시피, 나한(羅漢) 그 층차에 도달하면 어떤 일과 마주쳐도 다 마음에 두지 않고, 속인 중의 일체 일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으며, 언제나 싱글벙글하면서, 얼마나 큰 손해를 보아도 싱글벙글하며 개의치 않는다.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나한의 초급과위에 도달한 것이다.”
내가 그처럼 많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부님께서 말씀 하신 “일체 일을 근본상 마음에 두지 않는다” 와는 반대가 아닌가 ? 이런 상태에서 내가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는가 ?
내가 내려놓지 못하는 두려워하는 마음, 근심 하는 마음, 고려하는 마음 등등을 보니 모두가 내려놓지 못한 세간의 명, 리, 정으로 모두 나의 만족을 위한 위아위사 한 것 이었다. 마음속에 이처럼 더러운 것들이 차지하고 있으니 자비한 마음이 생길 수 없으며 진상 알림도 주동적으로 못했고, 문제에 부딪쳐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못 했는데 법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 했기에 법의 위력이 없었던 것이다. 비로소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 하면 그처럼 많은 중생을 구할 수 없다는 함의를 이해하였다 .
사부님께서는 줄곧 집착을 내려놓으라고 하셨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 《전법륜》)
“당신은 마음 속에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천국으로 갖고 갈 수 있단 말인가? ” ( 《정진 요지》 )
“집착을 내려놓으면 가벼운 배는 빨리 달리고 ” ( 《정진 요지2 》 ),
나는 왜 이렇게 많은 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가 ?
첫 째, 나는 일사일념을 수련하지 않았으며 집착을 방임했다.
두 번 째, 수련하여 버려야 할 집착을 대법 일을 하는 것으로 덮어 감추고,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간주 했다.
셋째, 더욱 관건적인 것은 신사신법(信師信法)이 견정하지 못해 수련 중 마난에 부딪혔을 때 역시 고비를 잘 넘기지 못했다. 정말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는데“ 또 그 무엇을 고려 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
법리에 명백해지자 나는 단번에 홀가분해 졌다. 지금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아 기쁘지 않으면 내가 무슨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지 찾아 없애 버리며 법속에서 즐거워하는 생명이 되고자 한다.
문장완성: 2007년 8월 26일
문장발표 :2007년 8월 27일
문장갱신 :21007년 8월 27일 00:26:39
문장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7/8/27/1616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