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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법리(法理)가 똑똑해야 한다

글/하북(河北) 낭방(廊坊)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8월 14일】사부님의 정법(正法)은 그 어떤 생명이든 참여할 수 없다. 참여했다면 곧 사부님의 정법에 저애를 가져오고 우주 중생에게 재난을 초래한다. 그러나 우리 대법제자들의 ‘부주의(법리가 똑똑하지 못하고 사람마음을 제거하지 못함)’로 인해 도리어 구세력(舊勢力)이 기회를 타게 했다. 본래 발생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 우리 주변에서 발생했다. 일이 일단 발생했다면 우리는 마땅히 즉각 제지하고 절대로 그것이 범람하여 재난이 되도록 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즉각 제지하여 박해를 결속함”에 대해 나 자신은 일찍이 아주 낮은 인식이 있었다. 즉, 단지 우리 자신의 수련이 마음속에서 제 위치에 도달하면 사악의 박해는 자연 중단될 거라고 여겼다. 지금 와서 깨달은 것은 그것은 사악의 박해에 대한 일종 소극적인 감당이자 변칙적인 인정이며 그것은 개인의 각도에 서 있는 일종 가련한 인식이었다. 물론 다른 동수에게는 다른 인식이 있을 수 있고 또 ‘시간을 앞당겨’ 결속한다는 견해도 있다. 정법의 기점에 서고 중생을 위해 책임지는 기점에 서서 바라본다면 아무런 조건이 없고 더할 것이 없다. 본래 마땅히 발생하지 말았어야 할 것은 곧 즉각 제지해야 하는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악의 일체 행위는 모두 진정한 이유가 없으며 완전히 다 나쁜 일을 할 틈을 타고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어떤 틈을 타는가? 무슨 기회를 엿보는가? 이는 우리 수련인이 법리에 대해 똑똑하지 못하고 사람마음을 제거하지 못한 틈을 탄 것으로 당신에게 ‘조건’이 충분하면 곧 당신을 박해한다. 마치 한 사람이 미혹 속에서 방향을 똑바로 가리지 못하여 다른 사람에게 아주 쉽게 유혹당하거나 잘못하여 기로에 빠지기 쉬운 것과 같다. 그러나 그 어떤 때든지 오로지 우리의 관념이 한번 변하기만 하고 인식이 제고되어 법리가 분명해지기만 하면 눈앞의 안개는 즉각 사라지고 완전히 면모가 일신될 것이다.

『명혜주간』제 255기에서 북미 대법제자가 쓴 한편의 문장이 있다. 문장에 이런 한 단락이 있었는데 대략적인 의미는 중공이 파룬궁 수련생의 장기를 생체적출하기 때문에 해외 수련생들이 백악관에 가서 청원했다는 것이다. 청원하는 중에 그들은 작은 확성기를 이용해 어떻게 이지적으로 사람마음을 사용하지 않고 이 참혹한 박해를 대할 것인지 교류했다.

“저쪽에서 뭇신들은 이미 분노해있었고 손에 든 신검(神劍)을 쉼 없이 휘두르며 가는 곳마다 사악을 모조리 제거하고 있었다. 나는 동수들의 법리적인 인식이 상승하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뭇신들이 악을 제거하는 속도도 갈수록 빨라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이때 모두들 만약 이 참혹한 박해로도 여전히 중생들의 양지(良知)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그럼 중생들은 더 이상 미래가 존재할 수 없음을 인식했을 때 뭇신들이 이끄는 천군만마는 한순간에 사악을 없애버렸다. 사람 이쪽 공간에서는 바로 하늘이 단번에 개면서 먹구름이 사라졌고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그러나 “대법제자들의 정법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어 올라오지 못하면 정신(正神)들은 저쪽에서 조급하여 눈물만 흘릴 뿐이다.” (역주: 이상 두 문장은 모두 『일사일념으로 하여금 대법이 육성한 정신(正神)의 광염을 뿌리게 하자』라는 글에서 인용한 글임.)

사실 이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장악하신 것으로 사부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법을 실증하는 다른 일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만약 우리가 법리에서 똑똑하지 못하고 쟁투심과 같은 사람마음으로 대한다면,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실 수 없다. 마치 감히 걸어 나와 진상을 알리지 못하는 수련생처럼 두려워하면 할수록 더욱 두렵고 두려워서 어쩌지 못하며 오직 집에 웅크리고 앉아 보는 사람이 없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여긴다. 다른 공간의 사악이 시시각각 호시탐탐 당신을 노려보고 있기에 오직 당신이 정념정행하고 전심전력을 다해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신 3가지 일을 해야만 비로소 가장 안전함을 모른다. 사실 ‘두려움’은 법리에 대해 똑똑하지 못한 것으로 자신이 이미 자기 집을 다스리지 못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지 못한 것이니 이때에는 누구도 당신을 도울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미국수도설법 중에서 말씀하셨다.
“많은 예언에서 이야기한 그러한 일들이 과거 역사상 모두 발생했지만 오직 내가 정법을 시작한 후부터 이 단락의 역사에 변화가 발생했는바 그 속에도 이 방면의 원인이 있다. 이런 일들은 모두 변했다.”

보다 많은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사부님께서는 정법 중에서 일체를 장악하시고 마땅히 변해야 할 것은 변하게 하고 마땅히 움직일 것은 움직이시는데 심지어 우리 수련의 결속시간마저도 지연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세력이 정한 도태되는 사람의 수량 역시 반드시 변해야 한다. 어떻게 변하게 하는가? 바로 마땅히 발생하지 말았어야 할 이번 박해를 즉각 결속시키고 박해가 없는 수련과 중생을 널리 구도하는 단계로 걸어 들어가 중생들에게 외래 사악에게 통제당하지 않고 진정으로 자신이 자신의 미래를 선택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 역시 중생에게 하나의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이자 중생에 대한 최대의 자비이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전법륜』) 우리 정체(整體)가 “왜 즉각 박해를 결속시켜야 하는지” 법리상에서 아주 또렷하고 분해질 때면 박해는 곧 즉각 결속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보다 많은 중생을 구도하려면 법리상에서 반드시 똑똑해야 한다.

개인의 깨달음으로 층차의 한계가 있으니 부당한 곳이 있으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문장발표 : 2007년 8월 1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7/8/14/160781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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