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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제자의 가장 큰 일은 곧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글 /대륙 대법 제자

[명혜망 2007년 8월 3일] 사부님께서는 [미국 수도 설법]에서 말씀 하셨다. “당신들 개인이 최후 원만의 길에서 겪어야 하고 창립해야 할 것을 제외하고 당신들의 가장 주요한 것이자 또한 현재 가장 큰 일은 바로 사람을 구도하는 것이다. 만약 이 일이 없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말해주겠는데, 당신들의 수련은 진작 결속되었다. ”

나는 사부님의 말씀으로 인해 사부님께서 최후 연장하는 시간이 얼마나 더 남았는지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집착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도리어 우리가 만약 사부님의 요구 “지금은 여러분이 곧 어떻게 더욱 잘하고 효율이 더욱 높으며 영향이 더욱 크고 더욱 많은 사람을 구도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라는 말씀을 따를 수 있다면 8년간이나 지속된 사악한 박해를 빨리 결속 지을 수 있다.

7월 27일 명혜망에 올린 어느 동수의 문장이 기억난다. 한 수련생이 병업의 교란으로 가부좌하기도 어려웠지만 후에 한 수련생을 구하기 위해 추운 날씨를 마다하지 않고 다리 아픈 것도 아랑곳없이 나가서 전단지를 붙였는데, 다 붙이고 나니 병업도 어디론가 날아나 버렸다는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병업이 날아갔겠는가? 그 동수의 마음이 완전히 중생을 위하고, 수련생을 구하기 위해 순정, 무사한 마음뿐이었던 것이다. 즉 개인이 자신의 병을 내려놓던지 내려놓지 못하던지, 어떻게 병을 제거하는가 하는 것과 같은 위사의 기점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신체와 사상 정체가 제고되면서 정체적으로 승화되어 기적이 나타난 것이다.

만약 이번 박해가 없었더라면 대법 제자들이 진상을 알리는 게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인은 일종 하나의 평화로운 환경하에 대법을 인식하고 구도 받을 수 있으며, 대법 제자들의 수련 상태도 다른 일종의 형식일 수 있다. 그러나 필경 박해는 발생했다. 그렇다면 대법이 만든 무사한 생명들은, 중생들이 거짓말에 독해되어 자신의 생명을 창조한 대법을 부정 하여 도태되는 것을 어떻게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법을 얻지 못한 그런 세인 중에는 초기에 우리들처럼 아주 많은 사람들이 견정한 신념을 품고 천담(天胆)을 무릅쓰고 내려와 대법이 필히 성공함을 실증하지 않았는가.
비록 아직도 많은 동수들이 박해받고 있지만 우리는 반드시 정법전반 국면의 기점에서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전체 대궁의 중생을 구도하시려는 원(願望)을 품으시고 오셨는데 정법시기 대법 제자인 우리는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성취해야 하는바 반석과 같이 튼튼하고 금강부동(金刚不动)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가장 큰 능력을 다하여 더욱 많은 진기한 역사를 가진 구도할 가치가 있는 생명들을 구도해야한다. 이것은 미래 우주의 선택이며 미래 우주의 요구이다. 대법 제자는 사존님을 따라 하나의 미래를 개창하고 있는 바 그 영광은 천지와 함께 존재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개인의 수련과 집착심을 버리는 것만 말해도 이전 및 미래의 수련과는 다르다. 우리는 개인수련을 잘하여 집착심, 사람의 관념을 깨끗이 버린다면 우리에게 대응된 천체 중생 역시 잘 수련되어 구도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무량한 중생들이 우리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정법 홍세가 지나갈 때 도태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최후까지 해야 하는 이 수련은 자신을 원용하고, 자신에게 대응된 고층 천체를 바로 잡아 그 곳에 있는 무량한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북미 순회 설법]에서 이미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돌아간 후에 그가 대표하는 방대한 천체는 전부 빈 것으로 종전에 있던 일체 생명이 없어진다. 그가 잘 수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체는 모두 나쁘게 변했고 모두 도태된 것으로 다시 만들 수밖에 없다.” 다시 만들 수는 있으나 우리는 자신이 세간에 내려 올 때의 서약을 위반한 것이 아닌가? 천체의 무량한 중생들의 기대에 어긋난 것이 아닌가? 이 뿐만 아니라 재조된 생명은 오랜 세월 우주 역사 과정 중 누적된 일체 진귀한 각종 요소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이 역시 사부님께서 왜 되도록이면 일체 원시 생명을 보류 하라고 하셨는가 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우리들이 집착을 버리기 위해 고통스러울 때, 우리들이 세간의 득실 때문에 고뇌할 때 더욱 높은 기점에 서면 개인 수련하는 것 보다 못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수련은 간단하게 개인이 어떻게 제고하며 어떻게 원만 하는가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원만은 무량한 대궁 중생의 구도에 관계되며 자신 것과 외재 것과 관계되는 것으로 대원만인 것이다. 이는 얼마나 넓은 흉금이 요구되며 또 얼마나 무사한 경계로 이 중임을 담당해야 할 것인가?를 비교해 보면, 개인의 그 작은 집착과 득실은 다 무엇인가? 매우 쉽게 버릴 수 있지 않는가?

정법은 대법제자의 위대함을 성취하고 대법제자의 위대함은 중생이 대궁의 안위를 모르는 상황하에 능히 무사무아의 경계로 사부님을 따라 정법하며 중생을 구도하여 우주 대궁의 미래를 개창하고 사부님께서 하시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성취 하는데서 체현된다. 시일이 얼마 남았는지는 물론, 형세가 어떻게 변하던지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 반드시 사부님의 가르침을 참답게 기억하면서 세 가지 일을 잘 해야 한다. 다그쳐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여 우리들의 생명이 미래 우주 중에서 더욱 빛나게 해야 한다.

이상은 나 개인의 약간한 체득이다. 합당하지 못한 곳에 대해서는 동수들의 자비한 시정을 희망한다.

문장완성:2007년 7월 27일
문장발표:2007년 7월 30일
문장갱신:2007년 8월 2일 04:39:38
문장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7/7/30/15981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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