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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현보(现世现报)”에 대한 약간의 이해

[명혜망 2007년 7월16일] 며칠전 동수와 한 자리에서 함께 교류를 하였다. 무엇 때문에 정법이 오늘에 이르러 우리 지역의 대법제자들이 이렇게 엄중한 박해를 받는 상황임에도 현지의 사악이 악보를 받는 사례가 이렇게도 적은가? 사부님의 설법 가운데서도 보응이 대량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우리 이곳의 보응은 대량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이는 참으로 우리 자신의 원인을 잘 찾아봐야 할 일이다.

이 며칠간 동수들과의 끊임없는 교류를 통하여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현세현보”(现世现报)”에 대하여 더욱 심각한 인식이 있게 되었다.

사실 인류 사회의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때가 안 되었다.(不是不报, 时候未到)”는 이치는 일종의 변이된 이치로서 이 중에는 얼마간 어쩔 방법이 없고 믿는듯 마는듯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인류 사회는 원래 미혹된 사회이며 대다수 사람들은 좋은 일을 했든 나쁜 일을 했든 즉각 보응을 받지 않고 당세에 보응을 받거나 격세에 다시 보응을 받으므로 사람들은 즉각 감수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은 생생세세의 전생 과정에서 또 끊임없이 세뇌당하므로 하여 자신이 먼저 세에 한 좋은 일이나 나쁜 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며 그 속의 인연 관계를 보지 못한다. 이렇게 되어 사람은 잘 살 때거나 혹은 순리로울 때면 곧 기뻐하고 잘 살지 못하거나 불우할 때면 곧 고통스러워 하고 또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한다. 또 무슨 하느님은 왜 이다지도 공평하지 못한가 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업력이 조성한 것임을 모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신에 대한 신심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로부터 줄곧 악한 짓만 하여 마지막에는 업이 커져 자신을 훼멸시키게 된다. 특히 근대에 와서 중국 대륙은 사당(邪黨)이 또 이른바 “무신론”을 믿게 하여 사람의 도덕관념을 대대적으로 패괴시키고 있다. 사람이 신을 믿지 않는 상황 하에서는 무슨 나쁜 일이든지 모두 할 수 있으며, 이렇게 되면 인류 도덕이 일일천리로 아래로 미끄럼질치게 되어 전반 인류사회가 모두 소훼될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 중에 낡은 세력이 중생을 도태시키는 악독한 배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하였다.

만약 한 사람이 좋은 일을 하든 나쁜 일을 하든 즉각 보응을 받을 수 있다면, 그는 “선에는 선한 보답이 있고, 악에는 악한 보답이 있다”는 이치를 진정으로 감수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사람도 더이상 무절제한 악한 짓으로 빚어낸 갚기 어려운 죄업으로 소훼될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게될 것이다. 바로 낡은 우주의 “선유선보, 악유악보(善有善报,恶有恶报)”라는 이같은 변이된 이치 때문에 사람들은 “선유선보, 악유악보”의 진실한 체현을 보지 못하게 되며 그로부터 무절제하게 악한 짓을 하여 덕을 다 써버리게 되고 소훼되게 한다. 나의 개인적인 인식으로써, 이것이 바로 낡은 우주의 무엇 때문에 괴멸되어야 하는가 하는 요소중의 하나라고 본다.

장래의 우주는 원용불멸(圆容不灭)한 것이다. 나는 깨우쳤다. “선유선보, 악유악보”의 이치는 바른 이치일 것이다. 한 사람이 좋은 일을 하든 나쁜 일을 하든 필연코 현세현보할 것이다. 사존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정법구결 중의 “법정천지, 현세현보”를 나 개인이 이해하기로는, 바로 우리에게 인간의 “선유선보, 악유악보”의 이런 격세에 다시 보응을 받는(隔世再报) 변이된 이치를 현세현보 하게끔 바른데로 돌려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사부님의 정법 진행은 오늘에 이르렀고, “선유선보, 악유악보”의 바른 이치도 점차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1. “파룬따파 하오”를 믿는 세인들이 위험을 만났거나 병으로 아플 때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묵념하면 상서로운 조짐이 나타나고 즉각 체현되어 나온다.

2. 일부 세인들이 대법 혹은 대법제자에 대해 나쁜 일을 했을 때 즉각 악보를 당한 것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한 일부분 세인, 특히는 대법과 대법제자 박해에 참여한 사람들은 줄곧 마땅한 보응을 받지 않고 있으며 아직도 줄곧 악한 짓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터무니 없는 말을 한다. 보응이 어디에 있는가? 내가 대법을 박해하는 일을 이렇게 많이 했는데도 왜 보응을 받지 않는가? 그로부터 본래보다 더 심하게 줄곧 나쁜 일을 한다. 이런 상황에 대하여 나에게는 아래와 같은 견해가 있다.

1. 사부님께서는 《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 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예전에 말했었다. 내가 말하는데, 실제로 속인사회에서, 오늘날에 발생된 일체의 일들은 모두 대법제자들의 마음에 의해서 촉성(促成)된 것이다. 비록 낡은 세력이 존재하여도, 당신들에게 그 마음이 없다면, 그것들은 방법이 없다.” 나 개인적으로 인식하건대, 이런 상황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은 역시 우리 대법제자의 마음으로 촉성된 것이다. 낡은 세력의 목적은 바로 그들을 도태시키는 것이다. 낡은 세력은 제일 나쁜 생명을 제일 마지막에 소훼시키기로 안배한 것이다. 만약 대법제자도 이 이치를 인정한다면 낡은 세력은 곧 가장 나쁜 생명을 제일 마지막에 소훼하기로 안배하는데 구실이 있게 된다. 이는 중생구도에 대해 말하면 아주 불리한 것이다. 그런데 사부님이 원하시는 것은 최대한도로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2. 수련생이 발정념 할 때 증오하는 심리를 지닌다면 마땅히 도달해야 할 효과에 이르지 못하게 되고 반대로 낡은 세력에게 틈탈 기회를 줄 수 있다. 당신이 그를 증오할수록 보응은 더욱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3. 어떤 수련생은 또 대법제자를 박해한 악인을 보응받게 하는 것은 선하지 못한 표현이라고 잘못 인식하고 있다. 종종의 이런 표현은 모두 법리가 분명하지 못한 체현이다.

만약 대법제자마다 모두 법리상으로부터 승화해 올라올 수 있다면, 대법제자를 박해한 사람이 즉각 보응을 받게 하는 것은 한 생명에 대한 진정한 자비와 구도이며, 대선(大善)한 행위이며 아울러 보응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매 하루는 모두 정법의 수요를 위하여, 중생구도를 위하여 연장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질질 끌면서 보응받지 않고 법정인간의 그때에 가서 다시 보응을 받게 한다면 남을 수 있는 기회가 없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이러한 생명이 직면한 것은 곧바로 도태이다. 물론 이렇게 되면 중생구도에 대해 아주 불리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 지역의 동수들이 이 방면에서 정체적으로 인식하게 되면, 사부님의 정법진행을 따라 갈수록 이 지역의 보응도 더욱 뚜렷할 것이며, 세인들에게 “선유선보, 악유악보”의 이치를 진정으로 보게 하고, 진정으로 대법의 자비로운 한 면을 보아내게 할 수 있는 동시에 그 위엄의 일면도 있어 그로부터 대법에 대한 경의가 솟아나올 수 있고 구도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순정하고 확고하게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는데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즉각 현세현보 당하라는 일념을 발하여 더욱 많은 세인과 중생을 구도하고 더욱 큰 범위로 사부님의 요구를 원용하자.

개인의 깨우침이므로 부족한 곳은 동수들께서 자비로 시정해주시기 바랍니다.

문장발표 : 2007년 7월1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7/7/16/1588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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