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6월 24일] ‘법을 실증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실증하는 것인가’는 법에 관하여 사부님께서 이전에 경문에서 이미 이야기 하셨다. 나는 나에게 이 문제가 있는지를 자신을 대조해 보지 않았으며 자신을 검토하지 않았다. 마치 나를 말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안을 향해 찾지 않았다. 2007년 뉴욕 법회 설법에서 사부님께서 “여러분이 알다시피 수련 중에서 사람 마음이 제거되지 않은 가장 두드러진 표현이 바로 일을 함에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을 실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일으키는 것은 파괴 작용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학습하고 여전히 중시하지 않았고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명혜 주간》의 문장을 보고 동수들이 안을 향해 찾는 과정에서 나에게 매우 큰 계발을 주었다. 법 공부를 통하여 나는 비로소 발견하게 되었다. ‘자신을 실증하는’것은 나의 가장 큰 집착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동시에 그것은 이 몇 년 과정 중에서 줄곧 파괴 작용을 하였던 것이다
나는 1996년 법을 얻었는데 3개월 후에 가정관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남편이 때리고 욕하면서 연공하는 것을 가로 막았으며 일정한 시기를 지나면 또 한번씩 그랬다. 99년 이후 더욱 때리고 욕했고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책을 찢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 이 가운데서 나의 대법에 대한 견정 여부를 고험하였으며, 나의 착실한 수련 여부를 고험하였으며, 내가 수련을 끝까지 할 수 있는지를 고험하였다. 여러 차례 나는 모두 수련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줄곧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사부님의 인도와 도움 하에서 비틀거리면서 지금까지 걸어오게 되었다.
자신을 실증하고 가정의 모순이 지속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나와 남편은 학우였으며 남녀평등과 심지어 나도 당신보다 강하다는 ‘당 문화’사상 영향을 받아 일을 하는 가운데서 남편이 나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랐다. 법을 얻은 후, 나는 과시하려는 마음, 환희심의 영향 하에 매일 그에게 법을 말하고, 법은 어떠어떠하다고 말하면서 늘 그가 법을 배우도록 유도했다. 지금에야 생각나는데 선생님의 말씀을 마치 자신의 말처럼 간주하고 완전히 사부님께서 《전법륜》 제3강에서 “더 보태어 선생님께서 어떻게 이야기하셨고 책에는 어떻게 썼다.” 라고 말씀하신 요구에 따라 하지 않았다. 게다가 보태어 말하는 이런 것이 여러 해 동안 양성되어 자신을 도도하게 남들 위에 군림하는 어투와 태도를 수호함은 근본적으로 착한 마음과 대법에 대한 존경이 아니었으며, 홍법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빌어 자신을 나타내려 한 것이었기에 남편은 단호하게 배우지 않았고, 대법에 대한 많은 불경스러운 말을 하게 되어 나에게 매번 번거로움을 조성하게 되었다. 7.20이후 나는 그에게 진상을 말하고 3퇴를 말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손을 들어 때리고 또 “당신의 말을 나는 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편은 자존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다. 사부님께서는 또 사람의 집착에 따라 말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강대하게 자아를 집착하고 대법을 배우면 다른 사람과 같지 않다고 여기면서 얼마든지 자신의 그런 상태에 만족하고, 자신이 얼마나 위대하고 고상하게 사람을 구하고 있으며, 어투와 심태는 자비롭게 해내지 못했다. 모든 것을 사부님이 다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을 구할 수 없었으며 또 그로 하여금 매우 많은 업을 짓게 했다. 이런 상태는 2006년 말에 비로소 개선되었다. 나는 더욱 더 사부님이 말씀하신 “당신들이 순결하고 깨끗한 심태(心態)하에서 한 일이야말로 가장 좋은 일이고 가장 신성한 것이다.” (《정진 요지》)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다만 자신을 잘 수련하여야만 비로소 사부님이 요구하신 3가지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자신을 실증하면서 일하게 되면 쉽게 이지적이지 못하며 쉽게 극단으로 나가게 된다. 때문에 자신을 실증하면서 법 중에서 잘 수련한다거나 확고하게 한다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등등은 법에 있지 않으면 아주 쉽게 낡은 세력에게 이용당한다. 한번은 수업할 때 진상을 말하다가 학생에 의해 신고되어 노동교화를 당하여 자신이 중생을 구도하는데 매우 큰 손실을 가져오게 되었다. 당시 어디에 누락인지 생각해 내지 못했기에 진상을 말할 때 감히 낡은 세력을 막아내지 못했다. 지금 당시의 자신의 심태가 생각나는데 자신을 실증하면서 무엇이나 모두 두려워하지 않는 개인 영웅 사상이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실증하면 매우 쉽게 사상, 지혜가 협애하며, 극단을 가며 다른 사람의 건의를 듣지 않으며 자기 고집대로만 하게 된다. 2006년, 나는 나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한 회사에 설취해 놓은 카메라에 찍혀 또 파출소에서 잡혀 가서 또 한번 사악에게 빈틈을 타게 했다. 사실 수련생이 이 회사에 카메라가 있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나는 중시하지 않았고 얼마든지 자신이 하는 일이 통쾌하며 마치 자신이 대단한 것처럼 여겼다. 자신을 실증하는 이런 마음이 발전하여 간다면 곧 바로 자심생마가 올 것이 아닌가? 매우 위험하다
자신을 실증하면 쉽게 동수들 사이와 간격이 형성될 수 있다. 비록 대법의 일을 할지라도 만약 법에 있지 않으면 사람이 마음이 나오게 되며 정체적인 법을 실증하는데 대하여 파괴를 야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자신에 옳고 잘한다고 여기고 자신의 생각을 고수하고 대법에 협력하지 않고 상의하지 않는다. 나는 일을 하며 있어서 혼자서 하기 좋아하는데 여기에는 자신을 실증하려는 집착심이 있고 귀찮을까 두려운 마음과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고 연루될까봐 하는 더러운 사심이 있었다. 동수와 함께 나가서 그녀를 만날까 두려워하는 무거운 마음에 그녀와 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수련생이 제안하는 상항에 대하여 자신이 필요하지 않다고 여기면서 하려하지 않았다. 한번은 수련생이 나에게 몇 개의 MP3를 사달라고 요구했다. 수련인이 거절하면 좋지 않다고 여기기에 나는 이유를 찾아서 일을 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법을 실증하는 일에 조급해 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번거로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실증하는 배후에는 자신의 명,리,정을 수호하는 것이다. 단체 법공부할 때 모두가 때로는 일부 견해에 대하여 말하면 나는 늘 마지막에 말하며 어떤 때에는 여러분들과 깨달음이 차이가 나면 마음속으로 자신의 깨달음이 높고 옳다고 여기며, 어떤 때에는 또 이 일에 대한 법의 깨달음을 강조하며 안을 향해 자신을 찾기를 원하지 않는다. 잠재의식은 자신이 수련을 잘한다고 실증한다. 나도 이미 몇 편의 사악을 폭로하는 문장을 썼다. 자신이 쓴 것을 다른 사람이 교정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다른 사람이 쓴 것을 이것저것 교정했다. 잠재의식 중에 자신의 명을 수호하게 되었던 것이다.
몇 년 이래 나는 자신이 노력하고 정진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가족과 밖으로의 번거로움이 한 무더기나 되어 나도 찾아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을 실증”하는 마음이 늘 대법에 동화되지 못하였고, 본성의 일면이 자아 집착으로 덮어 씌어 낡은 세력의 마난 중에서 수련했던 것이다.
자신을 실증하는 표현은 사람들로 하여금 말하지 못하게 한다. 사부님께서 법을 실증할 때 누가 당신이 무엇이나 모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나는 분명히 깨닫지 못했다. 집에서 늘 표현되는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말하지 못하게 했으며 변명은 논쟁이 아니고 모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다. 대법은 ‘쩐, 싼, 런’ 이며 법을 실증하는 것은 ‘쩐, 싼, 런’에 동화되는 것이며 누가 당신을 건드릴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이 말만하면 화를 내게 되며 불화에 움직인 것이 아닌가? 참아 내지 못하고 더욱 선량하지 않았다. 또 무슨 법을 실증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수련인은 모순에 부딪히면 자신을 찾아야 하며 어찌 늘 자신이 옳다고 하는가. 진상을 말할 때 사람들이 들으면 기뻐하고 듣지 않으면 실망하고 심지어 원망하고 때로는 법으로 자신을 덮어 버렸다.
자신을 실증함에 늘 표현되는 것은 과시심, 일하는 마음, 쟁투심이다. 나의 과시심은 매우 강렬하여 몇 년을 수련해도 늘 제거되지 않았고 말만하면 하는 일에서 표현되었다. 집에서 좀 일을 할 때, 예를 들면 요리가 잘 되고 오늘 무슨 일을 하게 되면 잘했다고 자신을 나타냈다. 진상을 말하는 가운데서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말재주에 집착하고 과장하고 때로는 또 쟁투심이 나와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분명하게 말하려고 했으나 탈당을 권하는 효과도 역시 좋지 않았다.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 항상 대법의 일로 숨겨 버렸다. 마치 전단지를 배포하는 것이 수련이고 자신이 옳은 것이고 일사 일념을 모두 대법으로 자신을 규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실증하는 것은 법이고 사부님께서 법의 모든 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내가 동수들로 하여금 나에게 의견을 제기하라고 하면 모두 어디에 좋지 않은지 표현되지 않아서 모른다고 했다. 표면상에서 매끄러워 보이지만 마음속에는 생각은 오히려 매우 많았다. 나는 자신이 ‘꿍꿍이가 매우 깊이’ 있고 마치 하나의 두꺼운 껍질이 자신의 주위를 막아 버려 대법 중에 용해 될 수 없음을 느꼈다. 최근에야 비로소 자신을 실증하는 이 마음을 느꼈고 또한 이 몇 년 동안 대법에 손실을 주었고 자신이 두 차례나 곤두박질하여 작은 번거로움이 끊이지 않았고 주위의 세인들을 구도하는데 장애를 초래했음을 느꼈다.
자신을 실증하는 것은 자신의 집착을 보호하는 것이며, 자신의 완고한 ‘사’를 내려놓지 않는 것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자신을 실증하는 것은 법을 실증해 낼 수 없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님께 달렸다.” 우리의 일체의 성취는 모두 사부님과 대법에 기초하지만 일체 번거로움, 교란, 마난 또 자신의 관념은 집착이 조성한 것이다. 오직 완전히 철저히 자신의 일체 관념과 집착을 내려놓고 법 공부를 많이 하고 완전히 법 중에 용해되고 완전히 ‘쩐, 싼, 런’으로 자신의 일사 일념을 가늠하여 법에 동화되어야 비로소 진정하게 도를 얻은 자이다.
글을 써내어 동수들이 지난 잘못을 거울삼아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희망하며, 자비로 시정해 주시기를 바란다.
문장 발표 : 2007년 6월 24일
문장 위치 : 수련 마당
중문 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7/6/24/1574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