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6월 8일】 『명혜주간』 281기(한글 46호)에 실린 「근본적인 사에 대한 검증: 자신을 실증하는가 아니면 법을 실증하는가」라는 문장을 읽고 깊은 감동이 있었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는 근본 목적은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에 있다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곤혹스럽게 하는 수련상태와 아직도 근본적인 개변이 발생하지 않고 늘 씬씽이 빨리 제고되지 못하는 근본원인이 바로 3가지 일을 하는 가운데 ‘자신을 실증하는가 아니면 법을 실증하는가’ 하는 이 기본문제에 대해 스스로 분명하지 않고, 자아에 집착하는 마음을 찾아내어 깨끗이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대법을 수련한 이래 나는 줄곧 대법 일을 하는 것이 바로 법을 실증하는 것이라고 여겼고 지금까지 또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 다시 말해 사람이 일을 하는 위사위아(爲私爲我)한 사람마음이 있었음에도 줄곧 의식하거나 인식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런 것이 늘 나타나도 자신은 여전히 몰랐던 것이다.
예를 들면, 2006년 11월 14일, 나는 한권의 소책자를 인쇄했는데 잘 하지 못했다. 안을 향해 찾아보았지만 단지 자료를 이렇게 오랫동안 만들어 오면서도 그리 큰 잘못이 없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자신감과 환희심에 의해 조성된 것임을 발견했을 뿐 더 이상 찾지도 않았고 찾아내지도 못했다. 내가 장기간 자료를 만들면서도 그리 큰 잘못이 없었던 것은 사실 자신에게 잘못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모두 사부님께서 도와서 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당시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이 잘 한 것이라고 믿었고 또 자신의 감각이 좋고 씬씽 제고가 빠르다고 여겼다. 사실 이런 자신감의 배후에는 찾아내지 못한 자아의 마음이 감춰져 있었지만,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에 제거할 수도 없었다. 때문에 씬씽 역시 제고되어 올라가지 못했다.
이럴 때 동수의 문장은 나를 일깨워주었다. 지금 고개를 돌려 이 일과 아울러 자신의 전반 수련과정에 대해 살펴보니 내가 한 일과 행위가 대법을 실증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실증하는 것인지에 대해 심각한 반성과 검토를 해봤다. 이로부터 나는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가정 자료점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내게 주신 것은 나더러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라는 것이며 아울러 이 과정 중에서 정념정행하고 자신을 제고하라는 것이지 자신을 실증하라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깨달았다. 일체는 모두 법이 육성한 것이며, 우리의 일체 능력은 모두 법이 부여한 것이다. 자신이 깨닫지 못할 때는 자료를 잘 만들거나 혹은 문제가 나타날 때면 종종 떠오르는 첫 번째 일념이 바로 ‘나(我)’는 어떻게 했고 어떻게 생각했는가 하는 것으로 이는 바로 자신을 실증한 것이 아닌가. 완성한 하나하나의 일의 배후에 또는 나타난 문제의 배후에는 종종 모두 자신도 모르게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이 감춰져 있었다.
자신의 수련과정을 되돌아보니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 많았고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 적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오늘 그 주요한 표현을 찾아내어 그것을 폭로하고 제거하여 최종적으로 대법을 실증하는 정념 속에서 자아에 집착하는 마음을 깨끗이 제거하고자 한다.
나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법을 얻은 老제자로 법을 얻을 때도 병을 치료하거나 혹은 무슨 다른 목적(사실 자신도 몰랐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대법을 수련하는 문으로 들어왔다. 때문에 동수들이 서로 간에 어떻게 대법수련에 들어왔는가를 교류할 때, 무슨 집착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할 때, 나는 대법을 수련하는 문으로 바로 들어왔기에 제거해야 할 무슨 집착이 없다고 말했다. 마치 자신은 수련할 필요도 없이 곧 이미 비교적 순수한 생명인 것 같았다. 사실 우리는 모두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지옥에서 건져 올리신 생명들로 온 몸에 업력이 가득한 몸이었지만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매우 소중히 여기셨다. 이 때문에 비로소 우리는 자신만을 생각하던 속인에서 한 걸음 한 걸음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잡고 올라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단지 좋은 사람, 더욱 좋은 사람이 되는 것뿐만이 아니며 神의 길에서 걷고 있는 각기 다른 경지의 神이다. 이 일체는 모두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가를 치르시고 해주신 것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은 여전히 제거해야 할 무슨 집착이 없다고 자랑했는데 이것이 이미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실증한 것이 아닌가?
또 다른 예를 들자면 대법 수련이 자신에게 가져다 둔 심신의 변화를 말할 때 나는 늘 자신이 속인이었을 때 신체가 건강했고 병이 없었으며 약도 먹지 않았다고 했는데 마치 수련하기 전후로 그리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이 역시 자신을 과시하는 것이 아닌가. “생로병사는 속인 중에서 바로 이렇게 존재하는 것이다.”(『전법륜』) 그러므로 속인일 때 몸이 아무리 좋았든지 그것은 정말로 좋은 것이 아니다. “한 수련인으로서 금후의 인생행로는 개변될 것이며, 나의 법신이 당신에게 새롭게 안배할 것이다. 어떻게 안배하는가? 어떤 사람들의 생명노정은 아직 얼마나 있는가? 그 자신도 모르며, 어떤 사람들은 1년이나 반년이 지나 큰 병에 걸릴 수 있고 병에 걸리면 몇 년이 될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은 뇌혈전 또는 기타 병에 걸려 전혀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다. 금후의 인생행로 중에서 당신은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우리는 당신에게 모두 청리(淸理)해 주어야 하며, 이런 일이 발생하지 못하게 한다.”(『전법륜』)
때문에 수련을 시작한 후 우리의 신체는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잘 정화시켜 주셨기 때문에 비로소 이렇게 좋아진 것이다. 이는 사부님께서 관할하시는 것이자 대법이 준 것인데 어찌 속인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또 예를 들면 연공을 좀 견지해도 자신을 과시한다. 다른 사람이 3가지 일에 바빠서 연공을 견지하지 못할 때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수련을 시작한 이후 한 번도 연공을 빼먹지 않았고 가끔 빼먹을 때면 저녁에 잠자는 시간을 이용해서라도 보충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또 자신을 실증한 것으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잘했다는 것이다.
나는 또 글을 쓰는 지식이 좀 있는데 수련을 한 이후 대법에 사용했다. 본래는 대법을 실증하기 위한 것이지만 누가 이 일을 언급하거나 명혜망에 어떤 문장이 발표될 때 우리 지역에서 쓴 것 같다는 이런 말을 들으면, 비록 말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첫 번째 생각은 바로 ‘이것은 내가 한 것’이라는 것이다. 또 자아를 제 1위에 놓았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를 실증했다. 사실 일체는 모두 대법이 부여한 지혜이며 사부님께서 하신 것이다. 잘 한 것 역시 모두 사부님의 가지(加持)가 있었기 때문이며 우리 자신은 단지 특장(特長)을 이용해 대법에 동화되고 대법을 실증함에 불과한 것이다.
심지어 사부님을 따라 안정적으로 오늘날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것도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 근거하는 동시에 또 후천적으로 형성된 자아의식이 강한 이런 힘(이것은 마땅히 제거해야 할 것이다)도 일정한 작용을 하는 등이다.
“당신이 진정으로 수련하려 한다면 즉시 생명위험에 부딪히며, 즉시 이 문제에 연관된다.”(『전법륜』)
때문에 우리가 오늘날까지 평온하게 수련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가호해주신 결과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약 당신이 대법(大法)을 부차적인 위치에 놓고 당신의 신통을 중요한 위치에 놓거나 또는 개오한 사람이 당신 자신의 이런 인식, 저런 인식이 옳다고 여기며, 심지어는 당신 자신이 대단하여 대법(大法)을 능가한다고 여긴다면, 당신은 이미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곧 위험하며 갈수록 더 잘못된다고 나는 말한다. 그때에 당신은 정말로 번거로워질 것이며 헛되게 수련한 것으로 잘못하면 떨어져 내려가서 수련이 헛되고 만다.”(『전법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아에 대해 집착하면 정말로 자신을 훼멸하고 중생을 훼멸하는 것이다! 자료를 잘 만들지 못한 이 일과 자신의 수련과정으로부터 나는 끝내 아주 깊이 숨겨져 있던 자아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을 찾아낼 수 있었다. 때문에 나는 대법을 실증하는 정념 속에서 철저하게 그것을 제거하고, 마음속으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제 1위로 놓으며, 이를 통해 3가지 일을 잘 하고 확고부동하게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하신 길을 잘 걸어갈 것을 결심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제고하는 것이지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깨달음으로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동수들이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7년 6월 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7/6/8/156484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