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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보(王博) 구원에 관해 동수들과 구원의 기점을 교류

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6월 1일】 최근 한동안 명혜망에 스자좡(石家莊) 왕보 일가의 근황에 대한 보도가 많이 올라왔다. 5월 14일 왕보 사건 재판장인 뤼링(吕玲)이 북경에 가서 사건을 보고했고 5월 16일 중공사당 정법위원회 서기 뤄간이 스자좡에 가서 지휘한 후 왕보 사건 담당 법관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1심 법원과 2심 법원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원래 판결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겨냥해 나의 견해를 말해보고자 한다. 이 사건은 매우 많은 대법제자들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단지 대법제자만이 이 일을 주도할 수 있고 속인 법률이나 변호사가 이 사건에 대한 소위 공정한 판결을 내리도록 촉진한다거나 도와주는 것을 기대해선 안 된다. 왕보 사건의 모든 보도를 본 후 내가 느낀 체득은 바로 우리가 단지 표면적인 폭로와 사회적으로 중시하는 정도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일의 표면적인 진전에만 주의를 기울였지 다른 공간에서 사람을 조종해 죄를 범하게 하는 사악한 생명을 어떻게 철저히 제거할 것인가는 홀시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동수들이 발정념을 중시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어떻게 발정념을 했는가, 우리의 생각이 어떠했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정념을 겨냥해 우리는 마땅히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다롄(大連) 충웨이(叢偉) 사건을 연상하게 한다. 법원에서 이미 무죄 판결을 내렸고 수색해간 물품도 돌려주었으며 아울러 ‘5월 1일’이전에 석방하겠다고 했지만 아직도 석방되지 않았다. 또 랑팡(廊坊)의 양젠포(楊建坡) 등도 떠오른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법제자는 속인 사회의 표현에 따라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말하면 우리의 사상은 곧 따라서 생각하고 움직이는데 이 역시 낡은 안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상알림은 하나의 만능열쇠라고 알려주셨다. 진상을 알리는 목적은 사악의 독해를 깨끗이 제거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서이다. 사람이 진상을 명백히 알 때가 바로 사악이 해체될 때이다. 사악이 해체되면 사람이 어찌 대법제자를 감금하고 박해할 수 있겠는가? 이번 박해는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박해가 아니며 다른 공간에서 사악한 생명이 사람을 조종하여 하는 것이다. 대법제자가 속인의 법률을 이용해 사악을 폭로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어떤 일을 하든지 기점은 반드시 법에 있어야 한다. 오직 법에 입각해야만 대법은 비로소 우리에게 사악을 깨끗이 제거할 수 있는 끝없는 위력을 줄 것이다.

중생을 구도하는 각도에서 보자면 우리가 법을 실증하는 과정 중에서 600여 명의 경찰이 엄밀한 진을 치고 우리를 대했으며 아울러 또 개별적인 변호사에게 손을 크게 썼고 지금까지도 뤄간이 돌아다니면서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럼 한번 분석해보자. 우리의 기점이 사악을 깨끗이 제거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며 우주 중에서 바른 요소를 위해 책임지는 것이었는가? 우리의 목적은 일을 크게 만들고, 얼마나 대단하게, 얼마나 영향력 있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최종적으로 사악을 철저히 제거하고 정법에 대해 죄를 범한 중생을 해탈시키는 것이다. 비록 왕보 사건의 현재 결과가 대법제자들이 법을 실증한 성공 여부를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악이 철저히 제거되지 않았음을 설명해준다.

아래에서 우리 지역에서 구원에 성공한 사례를 들어 동수들에게 참고와 교류로 제공하고자 한다.

2005년 자오양(朝陽) 지역에서 6명이 차를 타고 자료를 나눠주러 갔다. 당시 차를 운전하던 수련생이 차에서 자료를 베고 잠이 들었고 순찰하던 경찰에게 발각되어 납치당했다. 당시 체포된 수련생은 두려움 때문에 자신이 연공인임을 승인하지 않았다. 가족들도 납치된 동수의 형을 줄이기 위해 사건을 다루는 부서의 국장에게 2만 위안을 주었다. 국장은 직접 사람을 석방시키겠다고 말했지만 나중에 2년 노동교양에 처해졌다.

후에 우리는 현지 동수들과 정체적인 교류를 했다. 우리는 그 어떤 속인의 수단, 방식, 방법도 대법제자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으며 그 어떤 속인의 방식을 채용하든지 모두 낡은 세력을 인정하고 승인하는 것으로 모두 이번 박해에 대해 파란을 크게 하는 작용을 일으킬 뿐이며 오직 대법을 실증하는 것만이 비로소 근본적으로 낡은 세력의 안배를 타파하는 것임을 인식했다. 당시 어떤 수련생은 그(체포된 동수)가 자신이 대법제자임을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할 수 없으며 이는 대법제자의 표현이 아니고 그도 안에서 정념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들 이런 인식은 법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한 생명이 천만년 동안 기다려온 것이 바로 오늘날 대법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연공인임을 승인하지 않은 것은 동수 생명의 본성의 일면이 말한 것이 아니며 이는 그의 후천적인 관념이 말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이것을 승인하지 않으시니 우리 대법제자들도 승인할 수 없다. 만약 체포된 수련생이 한 일이 사악을 건드리지 않았다면 사악이 그를 체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악이 출현한 것은 중생을 이용해 대법과 대법제자에게 죄를 범하게 하려는 것으로 이를 통해 그들을 훼멸시키려는 것이다. 우리는 사악의 안배가 뜻을 이루게 해선 안 되며 낡은 세력의 안배를 전반적으로 부정해야 한다.

이리하여 우리는 우선 가족을 찾아가 그의 아내에게 진상을 분명히 알렸을 뿐만 아니라 무엇이 인간 세상의 바른 이치인지 알려주었다. 또한 사람을 기대하지 말아야 하며 오직 사부님만이 이 일체를 해결해주실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시시각각 발정념을 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가족의 각종 부정확한 상태(예물을 보내는 것)는 바로 납치된 동수의 마음에 의해 촉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리키는 것은 납치된 수련생이 석방되기 위해 자신이 연공인임을 승인하지 않았던 사람 마음이 가족들이 예물을 보내는 변이된 행위를 촉성했다는 것이다. 이때 만약 가족들의 사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납치된 동수의 사람마음도 바로잡힐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예들을 많이 겪었다.

이어서 우리는 가족들과 함께 시(市) 공안국과 공안분국을 찾아가 진상을 알리고 발정념을 했다. (정체적인 환경과 조건이 되지 없는 동수들은 따라하지 말 것). 아울러 이 일을 현지 민중들에게 현지의 사악을 폭로하는 진상 전단지와 진상자료를 사건 주관 부서에 보냈다.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기점은 매 하나의 생명을 위한 것으로 진정하고 진정하게 매 한 생명의 미래를 위해 생각한 것이지 동수의 석방여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구체적인 일 자체에 빠지지 않았고 우리가 깨끗이 제거하는 것은 다른 공간의 사악이지 사람을 겨냥한 것이 아니며, 단지 모든 사람들에게 진상을 명확히 알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자 경찰의 악(惡)한 일면이 아예 나오지 않았고 그들 생명의 명백한 일면은 우리가 그들을 위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의 기점이 대법에 부합하자 우리는 모두 이 일체는 다 사부님께서 하시는 것으로 우리는 단지 사람 여기에서 움직이고 있을 뿐임을 느꼈다.

급히 노동교양을 당한 동수에게 전화를 걸어 가족들이 그를 찾아가도록 했다. 이렇게 우리 4명의 동수와 그의 아내 등 5명이 함께 노교소에 갔다. 정문에서 이름을 적을 때도 우리는 실명을 적었고 전화번호도 실제 번호를 적었다. 당시 감금된 동수와의 관계를 물었을 때도 우리는 진실하게 ‘친구’라고 했다. 면회 신청을 담당하던 사람이 친척이 아니면 면회할 수 없다고 했지만 내 이름을 적고는 2명에 한해 면회를 허락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5명이 모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으로 우리가 단지 우리에 대한 법의 요구에 부합하기만 하면 된다.

수련생을 만난 후 우리는 그와 함께 “반드시 자신이 대법제자임을 승인해야하며 대법제자라야만 사부님께서 책임지실 수 있다.”고 교류했다. 노교소에 감금된 수련생은 우리의 말을 듣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으니 당신들은 돌아가세요.” 며칠 지나지 않아 노교소에서 가족들에게 전화가 왔다. “당신 남편이 단식을 하고 있는데 현재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있다. 가서 보도록 하라.” 가족은 우리를 찾아와 어떻게 해야 좋을 지 의견을 구했다. 우리는 즉시 우리 지역 동수들에게 통지해 조건이 가능한 사람들은 근거리에서 발정념을 하고 올 수 없는 동수들은 여러 사람을 모아 병원에서 가까운 한 동수의 집에 함께 모여 발정념을 하게 했다. 당시 병원 안, 입구, 거리에 모두 백여 명의 동수들이 왔다.

병원 안에서 우리는 노교소 관리과의 의사를 찾아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는 당시에 “내가 반드시 석방시켜 줄 테니 마음 놓으세요. 하지만 며칠 있어야 합니다. 단식한다고 바로 풀어준다면 노교소에 남아 있을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우리는 당시 또 병원에서 이 일을 책임진 의사를 찾아가 그에게 단식 중인 동수의 상황을 분명히 알려주었다. 아울러 의사에게 그는 죄인이 아니며 그가 단식하는 것은 자신의 신앙에 대한 박해에 항의하는 것으로 그는 자신의 신앙과 사람됨의 표준을 수호하기 위한 것임을 알려주었다.

다음 날 우리는 또 노교소를 찾아갔고 아울러 노교소와 교섭해 수련생을 매일 볼 수 있도록 요구했다. 왜냐하면 현재 이런 정황에서 우리 가족들이 마음을 놓지 못했고 당초 사건을 맡은 부서에서 석방한다고 말했지만 모두 석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들이 보고한)진상자료의 수량에 변화가 생겼는데 실제는 100여부에 불과했지만 공안분국에서 상부에 보고할 때는 300여부가 되었고 시 공안국에서 노교소에 보낼 때는 600여부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당신들 부서에서 이런 식으로 일을 하기에 우리는 믿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사람의 표면에서는 이렇게 말했지만 사실 말의 배후에서 우리는 강대한 정념으로 당신이 사람을 석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매일 이곳에 찾아와 사악이 철저히 소멸될 때까지 근거리 발정념을 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러자 우리가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노교소에서 전화가 왔다. “당신들이 사람을 데려가도 좋지만 그가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때 다시 돌려보낸다고 보증해야 합니다.” 우리는 차를 세우고 모두 함께 교류했고 이것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만약 사람을 다시 잡아간다면 그 사악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어떠한 조건도 승낙할 수 없으며 대법제자는 오직 무조건적으로 석방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후에 다시 말해봅시다.” 오후에 우리는 다시 그들을 찾아가 말했다. “이런 보증은 우리 중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누구를 보증할 수 없으며 석방한 후에 당신들이 다시 그를 잡아간다면 그는 다시 단식할 것이며 이런 것은 누구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결국 노교소는 철저히 우리와 타협했다. “우리는 그를 잡지 않을 테니 돌아가서 연공을 하고 싶으면 하시오. 대신 돌아간 후 무슨 일이 생기든 우리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하면 됩니다.”

모두들 상의해본 후 그렇다면 좋다고 했다. 수련생은 안에서 업혀 나왔는데 따라온 경찰이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는 그에게 아주 잘 대해주었습니다. 돌아가서 그에게 물어보세요. 우리는 그를 박해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아주 우호적으로 우리와 작별했다. 우리가 수련생이 나온 소식을 명혜망과 현지에 통지했을 때 소식을 들은 동수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사부님의 홍대하신 자비와 법에 대한 대법제자의 견정함을 느낄 수 있었다. 대법은 우리에게 견고하여 꺾을 수 없는 무한한 위엄을 펼쳐보여 주었으며 대법제자들은 수련자의 금강과도 같은 의지를 표현해 생명에 대한 대법의 자비와 사악에 대한 제거를 설명했기 때문이다. 박해받은 동수의 가족은 전 세계 대법제자들에게 감사를 표시하면서 말했다. “대법제자의 한결같은 마음이 없었다면 이 일이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나중에야 우리가 알게 된 사실인데. 노교소에서 이 일로 회의를 열 때 우리가 만든 전단지를 가지고 “(전단지를 보니) 원래 이 사람은 이런 정황인데 공안국에서 왜 이렇게 일을 처리했을까? 귀찮은 문제는 자신들이 일으키고 모두 우리에게 떠넘기다니. 우리 교양원에서도 받지 않겠다.” 표면상으로는 이런 일이지만 실질적으로 다른 공간의 사악이 깨끗이 제거되자 사람이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부연 설명할 것은 우리가 만드는 진상자료는 반드시 객관적이고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불순한 성분이 섞여 들어가거나 원망하고 질책하며 증오하거나 개인의 감정을 실어선 안 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대법이 요구하는 표준에 도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법을 실증하는 효과에도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원에 성공한 사례는 이외에도 많이 있지만 일단 다음 문장들을 참조할 수 있다.
▶《致锦州市第二看守所的一封信》
▶《小学生写信要求铁路公安处释放爸爸王莹伟》
▶《致沈阳市南湖派出所的一封信》

이외에도 많은 성공사례들이 있지만 나중에 차차 써내기로 한다.

문장발표 : 2007년 6월 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7/6/1/155990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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