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허베이(河北)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5월 27일】 사부님께서는 『2006년 캐나다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많은 수련생은 다만 연공하고 법공부 하는 것을 수련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직접 법의 일면을 접촉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착실히 자신을 수련하는 때 당신이 접촉하는 사회가 바로 당신의 수련환경이다. 당신이 접촉하는 직장환경, 가정환경 그건 모두 당신의 수련환경이며 대면해야 하고 모두 반드시 당신이 걸어야 할 길이다. 반드시 정확히 대면해야 한다. 어느 한 가지도 대충 얼버무릴 수 없다. 최후에는 걸어 나왔다. 사부가 당신들에게 이런 한 갈래 길을 배치해 주었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걸어왔는가? 이 일체의 최후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수련 과정 중에서 이런 것들 역시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어느 한 가지 일이든 모두 홀시할 수 없다. 편리한 데 대하여 말한다면, 사람은 수련함에 있어 가히 출가하지 않고 깊은 산으로 들어가지 않고 세속을 이탈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한 방면으로 말한다면, 이 일체는 다른 하나의 어려움을 조성하는바, 당신은 그 일체를 잘 해야 하며 어느 방면이든 모두 잘 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걸어 나올 수 있다.”
나는 이 단락의 법을 학습한 후 곧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잘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정확하게 대할 수 있을까?’ 나중에 직장에서나 생활 속에서나 대법 일을 하는 중에서 나는 가급적 주변의 일체를 선하게 대하고 자비롭고 상화한 심태를 유지했다. 그러나 여전히 ‘(인위적으로)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표면적인 표현으로 여겨졌으며 내심 깊은 곳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느낌이 없었고 일종 내재적인 정념이 부족했다. 이런 상태마저도 늘 선량하고 상화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었으며 진상을 알릴 때도 지혜가 끊임없이 솟아나지 않았다.
어느 날 한 가지 일에 대한 견해가 달라 한 동수와 논쟁을 벌였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그 수련생이 일의 진행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나는 자신이 모두 잘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 수련생은 이 일을 가지고 나를 비난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일까지 들먹이며 줄곧 내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의 효과가 아주 좋았다는 것을 안다. 안을 향해 찾을 때 나는 사부님께서 『로스앤젤레스 시 설법』에서 지적하신 남에게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씬씽 문제가 떠올랐다. 하지만 투철하게 찾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수련인은 남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야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왜 씬씽을 지키지 못한단 말인가?
한편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진상을 알릴 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사악한 당의 위험과 해악을 말하고 도덕이 타락한 후의 두려운 현실을 말했다. 이때 이 사람이 내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죠?” 나는 곧 “전통문화를 새로 배워보시면 곧 알게 될 겁니다.” 그와 헤어진 후 나는 몹시 후회했다. “왜 그에게 파룬따파는 하늘이 생명에게 준 희망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안으로 찾을 때 사부님께서 『환경』에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인류가 말하는 자신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하여 왔다는 설이 다 우아한 자리에 올라앉았는데, 이렇듯 위대한 한 부의 우주대법을 당신들은 오히려 그에게 하나의 정확한 위치를 주기에도 쑥스러워하거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의 진정한 치욕이다.”
나는 아직도 마음속으로 대법에 하나의 신성한 위치를 진정하게 주지 못했는데 여기까지 생각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을 해왔음에도 이런 근본적인 문제마저도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니! 나는 기점 문제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깨달았다.
나는 다시 『미국 수도법회 설법』을 학습했다.
“이것은 간단하고도 간단하게 한 속인사회 민중단체에 대한 박해가 아니며 또한 단지 간단하고도 간단하게 한 수련자 군체(群體)에 대한 박해가 아니었다. 이것은 바로 우주 중 정(正)과 사(邪)의 대결이며 이것은 또한 정법과정 중에 건드려진 그러한 이기적이고[爲私] 자아를 위하며[爲我] 변이된 생명과 정법자체가 진행한 대결이었다. …. 이것은 바로 속인사회 속에서 우주정법의 축소판이며, 이것은 우주의 일체가 속인사회 속에서 초점으로 표현된 것이다. 우리는 속인사회 중의 표현으로부터 전반 우주정법의 형세를 볼 수 있다.”
나는 갑자기 기점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정법의 기점에서 신변에서 발생하는 일체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직장에서나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일은 또한 씬씽을 고험하는 것으로 마음을 바로잡는 것인 동시에 신변의 일체 바르지 못한 요소들을 바로잡고 있다. “파룬이 안으로 돌 때는 자신을 구도하고 밖으로 돌 때는 사람을 구도하고 있는 것이다.” 진상을 알리고 대법 일을 함에 교란이 있을 때면, 이는 정법과정 중에서 위사(爲私) 위아(爲我)하고 변이된 생명이 정법 자체와 대결하고 있는 것이며, 자신 또는 동수에게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상이 발생할 때면 이는 변이된 생명이 사부님의 정법의 기세에 촉동될 때의 일부 표현임을 깨달았다. 또 우리가 단지 법학습을 잘하고 법에 동화하기만 하면 이런 것들은 곧 사라져버린다는 것도 알았다.
여기까지 깨닫자 나는 내심으로부터 정념의 역량이 생겨났고 씬씽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혹은 일시적으로 잘 파악하지 못한다 해도 더 이상 긴장하지 않게 되었고 담담하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자신 및 주위의 일부 바로잡히지 못한 현상에 대해 마음을 졸이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부님의 정법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정법의 각도에 서자 나 개인의 씬씽 제고는 곧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과 하나로 연계되어 있었다. 이때 사부님께서 『미국수도법회설법』에서 하신 말씀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대법제자는 이 사회상에서 당신이 어떤 하나의 환경 속에 있거나, 사회의 어떠한 구석에 있거나 상관없이 당신은 모두 정면(正面)적인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당신이 진상을 알리거나, 법을 실증하거나, 직접 대법의 일을 하지 않거나 간에 당신은 모두 중생을 구도하고 있으며 모두 거대한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박수) 왜냐하면 당신의 정념과 자비의 마당이 바로 정면(正面)적인 작용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은 내가 최근에 수련의 기점 문제에 대해 깨달은 것이다. 이는 단지 내가 방금 깨달은 것이기에 아직 실천 중에서 확고하게 이런 기점에 서서 문제를 볼 수 있는지 닦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나는 갈수록 잘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타당하지 못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문장발표 : 2007년 5월 2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7/5/27/155704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