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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당문화와 전 세계 중국舞 무용대회 개회

글/ 해외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6월 1일】

일부 동수들은 ‘해체당문화(解體黨文化)’와 ‘전 세계 중국舞 무용대회’ 개최를 마치 아무런 필연적인 연계가 없는 것으로 여길지 모르겠다. 여기에서 나는 동수들에게 이 두 가지 문제를 겨냥한 나의 이해 및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써내어 여러분들과 함께 토론해보고자 한다!

‘해체당문화’란 대기원에서 발표한 두 번째 장편사설 『해체당문화』를 가리킨다. 『9평 공산당』이 나온 이후 이 책은 단지 속인 중에서만 커다란 진동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대법제자 중에서도 역시 아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아무 많은 대법제자들은 법공부를 하는 여가에 한두 번뿐 아니라 여러 차례 전편을 읽었다. 또 시간을 짜내어 新唐人에서 제작한 『9평』 동영상도 보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9평』을 여러 번 읽은 후 일종 ‘밝게 확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전에도 공산악당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도대체 어디가 나쁜지 말을 하자면 늘 지혜가 부족하며 말이 어눌한 감을 느꼈다. 설사 일부 실제적인 사례를 찾아냈다 해도 역시 피상적인 것에 불과했으며 그것의 급소를 건드리지 못했다.

『9평』을 읽고 난 후 나는 사악한 영 유전자의 본질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뼛속까지 사악함을 투철히 보아낼 수 있었다. 더욱이 나의 신체에서도 일종 전에 없던 자유와 가뿐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대기원에서 또 『9평』의 자매편인 『해체당문화』을 출간했을 때 나는 처음에 마땅히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매번 읽기 시작하면 곧 읽어 내려갈 수 없었다. 마치 사상 중에 늘 한 층의 막이 있는 것 같았는데 나로 하여금 분명히 보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보지 못하게 했고, 읽으려고 하면 할수록 읽지 못하게 했다. 더욱이 개인 생활 중에서 다른 바쁜 일들의 교란으로 인해 나는 책의 앞부분만 보다가 곧 내려놓곤 했으며 또 보려고 하다가 또 내려놓곤 했다. 나중에는 점점 책을 읽기가 싫어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를 교란한 것은 바로 자신의 사상 중에 남아 있던, 보다 깊은 곳에 깊이 은폐되어 쉽게 관찰해낼 수 없는 ‘당문화’가 장난을 친 것이었다.

그러다 한번 우연한 기회에 나는 希望之聲에서 『해체당문화』를 방송한다는 것을 알았다. 마치 『9평』이 나의 사상을 활짝 열어준 것처럼 어쩌면 사부님의 자비하신 도움인 것 같은데 나는 다시 한 번 이 방송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몇 편을 들었을 때는 역시 교란이 아주 커서 머리가 늘 텅 빈 것 같았고 심지어 진행자가 꽤 많은 내용을 읽었음에도 마치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당시 나는 스스로 이는 낡은 세력의 교란임을 깨달았는데(지금 생각해보니 자신의 사상 중에 남아있던 사악한 당의 문화가 사상업력을 이용해 교란한 것이다), 이에 정념을 확고히 하고 방송을 듣는 것을 견지해나갔다. 곧 청취하는 과정 중에서 자신의 사상에도 기적적인 변화가 발생했다. 사유가 갈수록 또렷해졌고 갈수록 듣고 싶어졌으며 내용도 갈수록 다채로웠다! 하편을 들을 때는 나는 이미 기다리지 못하고 방송 원고를 보면서 방송을 청취했다. 그중 많은 내용은 마치 내 머릿속에 새겨진 것처럼 잊히지 않았다.

예를 들어 사악한 당문화에서 사용하는 용어인 ‘샤강(下崗)’을 보자. 예전에 나는 아무리 해도 ‘샤강’이란 이 단어가 당문화와 관계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구체적인 분석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진정하게 이 단어의 해독과 사악함을 알게 되었다. 표면적으로 ‘샤강’이란 마치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는 ‘실업(失業)’과 같은 의미로 보인다. 그러나 공산 악당은 왜 이런 단어를 만들어 실업이란 단어를 대체했을까? 원래 ‘샤강’의 반대말은 ‘상강(上崗)’으로 이런 단어를 사용하게 되면 어투에서나 단어 뜻에서, 듣는 이로 하여금 ‘실업’에 비해 더 미혹성이 강하게 만든다. 마치 잠시 직장을 쉬고 있지만 언제라도 다시 출근할 희망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 이런 단어를 만들었다는 것이 바로 사악한 당의 험악한 마음 씀씀이를 체현해 내는 것으로 그것은 단지 인민들을 기만할 뿐만 아니라 민중들을 미혹시켜 모순을 완화하려는 것이다. 그 음험한 수법과 악랄함은 온몸에 싸늘한 땀이 흐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중국인들이 악당을 욕하면서도 그것이 만들어 놓은 당문화 속에서 욕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문화란 일종 무형적인 것이지만 언제나 우리 사상 속의 ‘물질’로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것이 어떤 측면에서 마치 우리 수련인이 부닥치는 ‘정(情)’과 같다고 느낀다. 우리 매 사람은 모두 서로 다르거나 같거나 좋거나 나쁘거나 순수하거나 불순하거나 간에 문화적인 분위기 속에 잠겨 있다. 문화는 직접적으로 우리의 사유상태,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문화’에는 ‘정’과는 다른 면이 있는데 바로 좋고 순수하며 정통적인 문화는 사람이 선(善)을 향하도록 인도할 수 있고 사람들의 도덕수양을 제고할 수 있으며 사람들의 언행을 바로잡을 수 있다. 반면 나쁘고 불순한 문화는 단지 도덕을 타락시키고 인심을 변이시킬 뿐만 아니라 인륜을 난잡하게 한다. 또 다른 의도가 있는 세력에게 이용당할 수 있으며 전쟁을 치르는 것보다 경제적이며 신속하고 안정적인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

문화가 기왕에 이와 같은 마력(魔力)이 있다면 악당(惡黨)은 당연히 이를 이용할 기회를 내려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그것은 사상을 개조하고 문자를 개조하며 악당의 홍색(紅色)예술을 창조했으며 수천 년간 중국인들의 머릿속에서 형성된 정통적이고 전통적인 오랜 문화를 폭력적으로 파괴하는 기초위에서 악당이 창조한 문화를 채워 넣었다. 전면적으로 사람의 사유와 행위를 통제하여 그것이 보다 잘 이용하는데 사용했다. 그렇다면 한 수련인으로서, 한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당문화의 요소를 지닌 채 원만할 수는 없다.

더욱이 아주 많은 중국동수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소위 당문화 속에 잠겨 강제적으로 세뇌당한 결과 자신도 모르게 오염되었다. 어떤 수련생은 지금의 러시아가 이런 형식인 것도 바로 그것이 표면적으로는 민주화가 되었지만 당문화의 사유 찌꺼기가 여전히 작용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아직 진정으로 자기 사상속의 당문화를 없애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럼 유럽의 민주국가인 독일은 어떠한가? 동독(東獨)은 일찍이 마찬가지로 악당의 사회이지 않았는가? 동독은 원래 공산당의 당문화가 여전히 아주 많은 동독인들의 사상 깊은 곳에 남아 있어 표면적으로는 민주화가 되었고 사상이 자유롭지만 실제로는 당문화를 벗어나지 못했다. 동독에서 생활하는 일부 대법제자들도 모두 이런 느낌이 있는데, 동독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것이 아주 어렵게 느껴진다. 아주 많은 동독인들은 직접적으로 정치, 박해, 인권에 대해 언급조차 하려 하지 않는다. 정말이지 언급하려고도 하지 않는데 그들은 정말로 흥미가 없다는 말인가? 개인적인 인식으로는 여전히 당문화가 사상 깊은 곳에 만들어낸 두려움과 잔존한 공포감이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 공산악당의 잔혹한 역사 때문에 많은 동독인들은 모두 뼈에 사무치게 된 것이다.

때문에 자기 사상 속에 있는 악당문화를 철저히 해체하고 진상을 알리는데 편의를 제공할 수 있도록 나는 여기서 진심으로 다음과 같이 희망한다. 아직까지 『해체당문화』를 보거나 청취하지 않은 그런 동수들은 반드시 시간을 다그쳐 보기 바란다. 내 생각에 이것 역시 정법의 형식이 요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대법제자들은 철저하게 당문화를 해체해야만 비로소 순수하고 깨끗하게 중생구도를 더욱 잘하고 사부님을 도와 중생 구도의 큰 임무를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문화에 관해서는 이만큼 말하기로 하고 이어서 전 세계 중국舞 무용대회 개최에 대한 약간의 느낌을 말해보겠다. 무용대회를 언급하기만 하면 나는 곧장 전 세계 화인 신년 스펙태큘러에서 표를 팔던 일이 생각난다. 애초에 나는 개인수련의 각도에서거나 아니면 자신이 마땅히 법에서 인식하는 각도에서거나 표를 파는 것과 자신이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연계시키지 못했다. 나 자신이 당시에 표를 파는 것을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에서도 충분히 깨닫지 못했고 가장 소중한 시간과 기회를 잃어버렸다. 비록 마지막에 자신의 인식이 올라가긴 했지만 이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당시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동수들이 꽤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나간 후에 아주 많은 동수들이 교류할 때 모두 자신이 걸어온 이 단락을 반성하면서 유감을 남겼다. 그렇다면 이번 무용대회 소식이 전해진 이후 나는 단지 교훈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마찬가지로 인식상의 잘못을 저질렀다. 처음 무용대회소식을 듣고 내가 처음 느낀 생각은 바로 나의 직업이나 내가 아는 지식과는 거리가 아주 먼 일로 여겼으며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고 속인들에게 무엇을 알려야 할지 몰랐다. 이에 한쪽으로 미뤄버리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중에 사부님께서 신경문을 발표하신 후에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부분은 바로 “나는 아직 이렇게 일찍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며, 좋은 점을 남겼다가 장래에 이야기하겠다.”(『2007년 뉴욕법회설법』)라는 단락이었다.

이 단락의 경문을 통해 나는 사부님의 자비를 깊이 느꼈고 사부님께서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법을 깨달을 기회와 수련 제고할 기회를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정진하지 못하던 나는 도리어 사부님께서 애써 배려해 주신 기회를 낭비했다.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후천적인 관념의 영향하에 여러 차례 좋은 기회를 놓쳐버렸다. 대회 일정이 뒤로 늦춰진 것은 우리 제자들이 정진하지 못하여 조성된 것이 아닌가? 이는 우리 개인수련의 상태를 밀접하게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이미 법리를 깨달은 일부 동수들은 다른 동수들과 교류할 때 마치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흥미 없어 하며 모두들 뻣뻣하게 마비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내 생각에 관건적인 문제는 아마도 여러분들이 아직 자신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2007년 뉴욕법회설법』에서 이미 자비롭게 예술을 모르는 우리 동수들이 준비하는데 있어 반드시 알 필요가 있는 기초지식을 알려주셨다. 중국무용에 대한 해법에서 여러 차례 미래 신년 스펙태큘러의 상태를 제기하셨고 이런 것들은 모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며 왜 해야 하는 가에 관한 관건적인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사부님의 말씀은 모두 법리(法理)이며 그 배후에는 모두 깊은 내포와 제자들에게 주시는 수련제고의 공간이 있다. 진지하게 신경문을 읽어보고 자세히 법에서 한번 깨달아보자. 이런 것들 역시 무용대회를 널리 알리고 정념정행 하는데 있어 반드시 해야 할 전제이다.

여기까지 썼으니 나는 여러분들이 내가 하려는 말의 의미를 모두 알게 되었으리라 본다. 사실 무용은 바로 일종 문화의 체현이다. 악당이 최근 수년 동안 중국에서 훼멸시킨 전통문화 중에는 자연히 중국 전통의 무용문화도 포함되어 있다. 모두들 다 현재의 정법형식이 아주 빨리 돌진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고 평상시에도 마치 모두 정법노정을 따라가려고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악당에 의해 파괴된 중국무용의 내포를 바로 잡고 문화적인 층면에서 사악을 해체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 역시 마땅히 정법형식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개인적인 깨달음은 99년부터 시작해 대법제자들은 정보를 알리고 자료를 배포하며 정부와 민중들에게 얼굴을 맞대고 진상을 알리는 등등 주로 눈에 보이는 공간 층차 중에서 낡은 세력과 대대전인 큰 전투를 치러왔다. 그렇다면 정법이 신속하게 표면공간으로 돌파함에 따라 이런 전쟁은 이미 눈으로 볼 수 없는 정신문화적인 층면으로 승화되었다. 이것 역시 우리가 낡은 세력과의 결전에서 치러야 할 최후의 층면(層面)이기도 하다. 때문에 무용대회의 의미는 일반적인 무용전문가들의 시합을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그것 역시 정법홍세가 가져온 필연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마땅히 노력해서 잘해야 하고 사부님의 고심한 배려를 저버리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장래에 유감을 남기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상은 개인 층차에서의 깨달음이다. 매우 많은 깨달음은 언어로 표현하기가 아주 어렵거나 또는 정확히 표현하기 어렵다.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지적하여 바로잡아 줄 것을 청한다!

문장발표 : 2007년 6월 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7/6/1/1559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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