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5월 12일】 나는 늦게 법을 얻어 개인 수련 시기가 거의 없었다. 나중에 99년 이후 중공의 박해로 생활 조건이 단번에 나쁘게 변했다. 속인의 마음을 제거하지 않아 나는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렬히 생겨났고 속인 중의 어떠한 일에 대해서도 모두 대법 속에서 구하고자 했다. 오직 내가 대법을 잘 수련하기만 하면 속인 중의 모든 일들은 전부 ‘마땅히’ 순조로울 거라고 여겼다. 거기에 많은 문장에서 동수들이 대법을 수련하여 병이 제거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었으며 또한 좋은 일자리를 찾고 대우도 제고되는 등등의 예를 보았다. 심지어 속인도 진상을 알면 물건을 살 때도 남보다 빨리 살 수 있었다! 나는 이런 글을 보고서 겉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주 깊은 사상 속에서는 대법 속에서 좋은 것을 원하는 마음이 생겼다. 다시 말해 내가 대법을 잘 수련하기만 하면 대법은 반드시 나에게 좋은 일자리를 찾아줄 것이고 나의 사업도 반드시 번창할 것이며 생활도 더욱 좋아질 거라는 것이다.
마치 누군가 “대법이 이렇게 대단한데 우리는 어찌하여 또 박해를 받는가, 대법을 수련하면 원만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왜 우리더러 진상을 알리라고 하는가?”라는 말과 같은데, 나는 이런 말에 대해 아주 배척했고 너무나 더럽다고 여겼다. 이는 대법과 조건을 따지고 좋은 점을 바라는 것이 아닌가? 대법이 왜 꼭 당신을 원만하게 해야 하는가? 대법이 당신에게 진 빚이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도 나는 자신을 보지 않았고 자신의 사상은 순정하다고 여겼다. 사실 나는 이런 생각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대법을 수련한 후 생활과 사업이 확실히 대법과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대법을 수련한 후 생활과 사업이 반드시 ‘좋게’ 변해야 하는가? 좋고 나쁨은 속인 중에서 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는 매 사람 자신의 정황과도 관련이 있으며 생활 조건의 배치 역시 각 방면의 정황에 근거하여 배치된 것이다. 단지 德(더)와 업력에 근거해 배치한 것만은 아니다. 물론 낡은 세력이 우리에 대해 박해하는 고험에 대해서는 정념으로 제거해야 한다.
나 또 소업을 해야 함을 알고 있지만 도리어 좋지 않은 나날을 지내려 하지 않고 늘 모든 것이 순조롭길 바란다. 사실 우리에 대해 무엇인 순조로운 것인가? 나는 마땅히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만이 가장 큰 순조로움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대법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좋은 점이다! 인간 세상 속의 모든 순조로움과 역경은 인연에 따라야 하며 대법 속에 놓고 말할 일이 전혀 아니다. 다시 말해 한 수련인을 놓고 말할 때 자신의 생활이 좋다고 하여(속인의 표준에서 볼 때) 대법을 수련하여 조성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고 자신의 어느 부분이 좋지 못하다고 하여 대법을 수련하여 조성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 두 가지 설은 다 틀리는데 왜냐하면 대법 수련은 자기 생활이 좋고 나쁜 원인을 직접 초래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법은 매 수련인 자신의 것에 근거해 배치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고려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다. 예를 들어 당신의 업력이 크거나 혹은 어느 부분에서 빚진 것을 아직 갚지 못했는데 늘 당신을 좋게 한다면 그것이 될 말인가? 때문에 대법을 수련해도 남들은 퇴직하지 않았지만 나 자신이 퇴직할 수 있고 남의 사업은 아주 잘 되지만 자신은 오히려 잘 되지 않을 수 있는데 이는 모두 가능하다. 나는 이전에 한 가지 착오적 인식이 있었다. 즉, 내게 돈만 있다면 법을 잘 실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나는 마땅히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이 부족하지 말아야 하는데 만약 돈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여겼다. 자신의 생활과 사업이 나아지길 바랐지만(비록 표면에서 직접 구하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사업이 갈수록 나빠져 결국은 거의 유지할 수도 없었다.
이 일보에 이르러 나는 다른 일자리를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대법에 희망을 기탁하고 대법 속에서 속인의 좋은 점을 찾고자 했다. 내가 대법을 수련했으니 반드시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정말로 지탱할 수 없었고 아내는 나와 이혼하려 했다. 나는 어디 한번 시험해보자는 생각으로 직장의 면접에 응했고 아주 빨리 출근할 수 있었다. 월급은 800위안으로써 많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충분했다(또 갚아야 할 일부 빚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나에 대해 아주 큰 타격이었고 나는 자신이 거의 두 가지 생명에 의해 함께 통제됨을 느끼게 했다. 하나는 표면에서 다른 하나는 암암리에 통제했는데, 표면의 이것은 청성할 때 나에게 말했다. “사업이 이 일보에 이르기까지 원인이 있다.”고 했고 암암리의 그것은 오히려 나에게 “이는 사부님께서 나를 상관하지 않고 대법이 나를 상관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암암리의 그 사상은 갈수록 나를 더 통제했고 나는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나 사부님과 대법을 원망하게 되었다.
이 원망하는 마음의 작용 하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사부님의 말씀에 대항했다. 본래 나는 색(色)의 방면에서 아주 취약했기에 이리하여 나는 안간힘을 다해 색정적인 사이트에 들어갔다. 하지만 나의 표면적인 사상에서는 사부님과 대항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지만 일단 행할 때면 이렇게 행하게 되었다. 때문에 나는 마치 두 가지 생명이 내 신체를 함께 통제하는 것 같았는데 누가 올라오면 누구를 표현했고 나 자신은 마치 주견이 없는 판관처럼 수시로 통제 당했다. 아마도 나의 사상업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인데(나는 어릴 때부터 환상을 좋아했고 색정적인 것을 생각할 때가 많았다. 이때 조성된 강대한 업력이 이런 정황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평상시에도 자신을 주의하여 청리하지 않았으며 발정념 시에는 사상을 늘 집중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늘 자신을 청리하는 부분을 생략하기도 했는데 이 모든 것이 원인이었다.
나는 많은 정력을 이 사업에 쏟아 부었기 때문에 이 사업은 나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을 접촉하게 했고 또한 적지 사람들을 3퇴시켰다. 진상도 적지 않게 알렸다. 하여 나는 이 사업이 마땅히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사부님께서는 나를 실패하지 않게 해주실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나의 그 낙심과 원망은 아주 대단했는데 무엇을 보든지 다 눈에 거슬렸다. 나는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걸어 나올 수 없었고 자신이 이미 아주 단단히 넘어졌음을 느꼈다. 이전에는 그래도 법공부를 했고 될 수 있는 한 정각에 발정념을 하면서 수시로 연공을 했지만 지금은 책도 잡을 수 없었고 정각 발정념의 개념도 없어졌으며 연공할 힘도 없었다. 정법이 이 시기에 이르러 나는 오히려 이 모양으로 변했으니 나는 속으로 늘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후세 사람들에게 교훈으로 남겨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또 그만둘 수 없었다. 내가 잘하지 못하여 반드시 사부님의 정법에 어려움을 더 증가시켰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아주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나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고 다른 사람이라면 아마 이 정도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흐리멍덩한 가운에 어느 날 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 아주 특별히 낡고 낙후한 마을에서 촌장과 같은 관리를 하고 있었다. 마을에는 좁은 흙 길이 있었고 집집마다 흙으로 만든 벽돌로 벽을 쌓았는데 아주 낡고 혼잡했으며 원시적이었다. 이렇게 생생한 꿈에서, 이것이 바로 나 자신의 세계란 말인가? 남들은 모두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는데 내가 본 것은 해골의 무덤처럼 어둡고 괴이한 궁전 혹은 황량한 사막, 낡은 마을이었다. 이것이 아마도 나 자신 경지의 진실한 체현일 것이다.
이번에 거의 철저히 나를 넘어뜨릴 수 있었던 변고는, 나로 하여금 대법 속에서 좋은 점을 얻고자 하고 의지를 찾으려던 생각을 철저히 타파시켰다. 또한 나로 하여금 끝내 이지적으로 속인의 생활을 마주하게 했는데 늘 맹목적으로 대법을 자신의 속인 이익의 보호막으로 여기지 않게 하였다. 그러나 이런 착오적인 생각은 나를 3, 4년간 따라다녔고 나는 항상 대법과 속인 사업 및 생활과의 관계를 정확히 대하지 못했고 아울러 사부님의 관련 설법을 빗나가게 이해했다. 지금 나는 드디어 이 한 점을 깨달았다. 대법과 사부님께서 보호해 주시는가, 자신이 제대로 수련했는가 여부는 일상생활을 잘 지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다. 세 가지 일을 잘하기만 하면 생활이 좀 어렵고 좌절이 더 많더라도 사부님의 보호 하에 있는 것이다.
여전히 곤란 속에서 생활하는 동수들이 각종 곤란을 정확하게 대하고 수련과 사업 생활의 관계를 정확히 이해하면서 나처럼 이런 굽은 길을 걷지 말 것을 바란다. 그 외 잘못 깨달은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롭게 시정해주기 바란다! 허스!
문장완성:2007년 5월 20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5/22/155263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