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 대법제자 신밍(心明)
[명혜망 2007년 5월8일] 정법수련의 몇 년 동안 중국 대륙의 대법제자들은 끊임없이 박해 받았고 어떤 사람은 여러 번 박해 받았다. 많은 대법제자들은 사부님의 가지, 자신의 정념, 동수의 도움으로 사악한 마귀굴에서 뛰쳐 나왔다. 대법제자는 정념으로 뛰쳐나온 후 보통 아주 빨리 소형 법회를 조직하고 동수들과 교류하면서 사악에 직면했을때 어떻게 정념을 취하며, 어떻게 신사신법(信师信法) 하겠는가를 말하는데, 마음속에 두려운 마음을 간직하고 걸어 나오지 못한 일부 동수들에 대해 매우 큰 촉진 작용을 일으켰으며, 사악에 대해서도 매우 큰 진섭(震慑) 작용을 하였다. 하지만 한 번 이런 교류에 참가하고 났을 때 나는 갑자기 한 가지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모두들 어떻게 뛰쳐나왔는가, 어떻게 사악을 직면하였는가 하는 것만 말하고 왜 박해를 받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은 아주 적었고, 말한다 해도 역시 “최근에 법공부를 적게 하여 상태가 나쁘며, 진상 알리기도 적게 하였다” 는 등으로 지나쳐 버리며 안을 향해 자신이 박해받게 된 진정한 원인을 깊이있게 찾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법제자가 무엇 때문에 박해 받는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두 가지 정황 하에서 그것들은 대법제자를 건드릴 수 없다. 하나는 확고하기가 반석(磐石)과 같으면 그것들은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때 그것들은 알고 있는 바 당신이 낡은 세력이라도 좋고 낡은 이치라도 좋은데, 이 제자가 바르게 걷고 잘하는데 누가 만약 가서 박해한다면 나는 절대로 그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나의 신변에는 또 무수한 정신(正神)들이 있다! 나는 또 무수한 법신(法身)이 있으며 모두 정법할 수 있다. 염려되는 것은 제자 자신의 마음이 불안정하고 이러한 집착, 그러한 두려운 마음이 있어 낡은 세력이 보게 되면 그 누락이 있는 마음을 틀어쥐고 박해할 수 있다. 또 박해 중에서 정념(正念)이 모자라면 당하는 박해는 더욱 큰 바 전부 다 이 정황이다.” (《북미 순회 설법》 중)
나는 사부님께서 이미 제자가 박해받은 원인을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제자로서 박해 받은 후 더욱 마땅히 안을 향해 자신이 박해 받게 된 원인을 잘 찾아 보아야만 비로소 다시 박해 받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수련생이 사악에게 잡힌 후 태연부동함에 이르렀다면 이 방면에서는 표준에 도달한것이므로 사악은 더는 박해할 구실이 없게 될 것이고 그러면 정정당당하게 뛰쳐 나올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어떤 수련생은 세 번 다섯 번씩 박해 받는가?
박해속에서 뛰쳐 나온 수련생이 비록 사악에 직면하여 태연하였기에 마귀 소굴을 뛰쳐 나올 수 있었으나 제고가 수요되는 방면에서는 법 가운데서 진정으로 승화를 얻지 못하여 기회가 있기만 하면 낡은 세력에게 틈탈 기회를 주어 박해가 진행되는데 이 역시 어떤 동수들이 세 번 다섯 번씩 박해 받는 원인이다.
그 속에서 동수들이 공동으로 제고해야 할 문제를 깨우치게 되었다. 하나는 사악의 박해속에서 뛰쳐나온 동수에 대한 숭배이다. 이런 숭배 심리는 많은 동수들 가운데 모두 있는데 더우기는 두려운 마음이 좀 중한 동수들 가운데 더욱 뚜렷하다. 아울러 감옥에 들어가야만 대단하다는 일종 생각이 연화 되어 사악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또 하나의 구실을 증가해 주었다. 사실 나는 사악의 박해에서 뛰쳐나온 동수들을 마땅히 두 개 방면으로 보아야 한다고 여긴다. 한 방면은 이 동수 본인에게 부족점이 존재함으로 하여 박해를 받게된 것으로서 이 역시 중점적으로 닦아 버려야 할 것이며, 또한 동수들은 마땅히 그를 도와주어야 할 점이다. 다른 한 방면은 수련생이 능히 정정당당하게 사악의 박해로부터 걸어 나올수 있는 것은 아주 대단한 일면이며 또한 사부님과 대법 위덕의 체현이므로 집착하거나 과시할 밑천으로 여기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동수 본인과 그 주변 동수들은 마땅히 청성하게 먼저 부족점을 찾고 다시 교훈과 경험을 교류해야 하는데, 많은 때 우리가 하던 방법처럼 많은 지방에서 이 수련생을 초청하여 어떻게 뛰쳐 나왔는가를 말하게 하여 모두들 그를 치켜 세운다. 이런 방법의 나쁜 점이란, 한 방면으로는 법회를 한 사람의 보고회로 변하게 하여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것과 맞지 않는 것 같고, 다른 한 방면은 환희심, 과시심 등을 증가시킬 수 있어 원래의 마음을 버리지 못했는데 또 새로운 집착을 더해 아주 빨리 이 수련생이 또 사악의 박해를 받게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중국 대륙의 수련생이 몇 년 전의 일을 회고하는 가운데서 이런 현상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고, 또 동수들 가운데 일종 생각이 생기게 하였다.” 그는 이렇게 잘 수련하였는데 어째서 또 박해를 받는걸까? 사부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잘 수련하면 박해를 받지 않는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본인이 사부님 설법에 대한 이해에서 부족점이 존재하는 동시에 법에 대한 바른 믿음에 또 동요가 생겨 일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사악에게 박해당하기 전 한동안은 일반적으로 모두 감각이 있을수 있다. 이를테면, 법공부가 머리속에 들어가지 않으며, 진상 알리기도 하기 싫거나 효과가 좋지 않다. 심성을 지킬 수 없고 하는 일이 순리롭지 못한 등… 이것이 바로 수련생이 박해받은 후에 찾아낸 원인이다. 내가 느끼건대 이것은 진정한 원인이 있는곳이 아니다. 수련생은 무엇때문에 사부님의 법에 비추어 깨닫지 않고 무엇 때문에 법공부가 들어가지 않는가? 무엇 때문에 심성을 지킬 수 없는가? 무엇 때문에 진상 알리기 싫은가? 우리는 마땅히 표면 현상을 꿰뚫고 자기 상태가 좋지 못하게 만든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가를 보아야 한다. 가령 정말로 찾아내고 또한 좋지 못한 마음을 버린다면 사악은 박해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흔히 이런 좋지 못한 마음은 자신이 제일 직면하기 싫은 것이기에 늘 구실을 대어 회피하려 하므로 사부님께서 주신 제고할 기회를 번번히 잃게 되고 최종에는 사악에게 구실을 잡혀 박해받게 된다.
이를테면 얼마전에 동북지역의 한 연락인은 줄곧 아주 잘 했었는데 남녀관계 문제에서 잘 하지 못하여 자신의 상태가 점점더 나빠지게 하였고 최종에는 사악에게 박해 당하게 되었는데 현지의 법실증에 일정한 영향을 조성하였다. 이런 일의 발생은 매우 가슴 아프게 한다. 사건 당사자에게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 동수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정법의 관건적 시간에 선심으로 동수의 부족점을 제출해줄 수 있고 법가운데서 제고하도록 도와주는 것만이 비로소 동수에 대해 좋은 것이지, 만나기만 하면 수련생이 어떻게 잘한다고 칭찬만 한다면 숭배심이 생기게 되는데 실지로는 수련생을 아래로 밀어뜨리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대법은 엄숙한 것이며 수련은 엄숙한 것으로서 닦아 버려야 할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사악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데는 구실이 있다. 사부님은 우리에게 낡은 세력의 안배를 부정하라고 알려 주셨다. 가령 우리가 강렬한 집착을 끌어 안고 놓지 않으면서도 낡은 세력을 부정한다고 말한다면 실질적인 작용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낡은 세력 그 자체마저 우리는 모두 부정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집착심을 닦아 버리는 것은 절대로 박해를 피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며, 집착을 닦아 버리는 것은 사부님의 요구이며 신 우주의 요구이다. 박해 받았던 동수, 더우기는 여러 번 박해 받았던 동수들은 참으로 마땅히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많이 하면서 자신이 박해받은 원인을 찾아내고 버림으로서 제고하여 올라와야 한다.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승인하는 것을 두려워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물건은 다른 공간의 일종 물질 존재로써 숨을 수 없는 것이며 도망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동수들도 마땅히 이성적으로 수련생을 애호해야 하며 집착을 버리도록 도와주어야지 집착을 조장(助长)해 주는 것이 아니다. 정법수련의 최후의 길을 잘 걸어가자.
문장발표 : 2007년 5월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7/5/8/1543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