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명혜망 2007년 4월30일】해외 동수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장춘에서 삽입방송을 했던 대법제자 류청쥔이 신통으로 노교소의 7층 대철문을 지나간 것에 대해 일부 동수들은 알고 있다. 수련해 낸 공능으로 마귀굴에서 탈출했기 때문에 그가 나중에 사악의 혹형으로 사망하게 되자 의혹이 있었다. 후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그는 삽입 방송할 때 한 가지 생각을 움직였던 것으로 바로 “이것을 하면 머리가 떨어질 일이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 낡은 세력에 의해 틈을 타게 된 것이다.
이 사례는 근본적으로 대법제자의 일사일념은 낡은 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말아야 함을 설명하는데 얼마나 엄숙한 일인가. 여기서 우리는 한걸음 더 깊숙히 생각할 수 있다. 그가 어찌하여 낡은 세력의 배치를 승인한 것인가? 실질적으로 낡은 상생상극의 이치를 승인한 것으로 자신이 대법을 실증하는 일이 크기 때문에, 그렇다면 상응하게 불러온 사악의 박해는 무거울 것으로 얼마나 크게 하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낡은 우주에서 지금까지 이어온 생명으로 이는 이미 생명의 본능으로 자신도 모르게 관념이 되어 반응한 것이다. 하지만 법정건곤 중에서 대법이 갱신한 정법제자로서 우리는 신우주의 이치에 따라 정법 중의 바른 이치에 따라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가서 생각하고 행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과거의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이치는 절대적인 것으로 한 생명이 무슨 일을 하려고 생각하면 전혀 할 수 없었다. 그 신, 당신들은 모두 신이 누구를 제도하려면 무엇 때문에 시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생각한다. 어떤 시기, 기회와 기연(機緣)이 오지 않고 어떤 시기가 성숙되지 않아 그가 할 수 없음은 그 상생상극의 이치가 상당히 절대적이고 이 일체를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대(大)뉴욕지역법회에서의 설법과 해법》“상생상극의 이치는 이후에 변화가 발생할 것이다.”《정진요지》라고 하셨다.
나부터도 예전에는 아주 깊은 곳에서 이번 박해를 승인하고 있었다. 7.20 박해가 시작한 후 나는 또 흥분되었는데, 왜냐하면 나는 과거의 수련이야기를 많이 읽었기 때문에 대법 수련을 이렇게 오랫동안 해도 그렇게 큰 난이 없고 큰 고생이 없다는 생각에 과거의 수련인에 비해 나자신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탄압이 시작된 후 나는 동수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수련이고 이것이야말로 난으로 칠 수 있다!”고 했다. 이 속에는 두 가지 문제가 반영되는데 하나는 상생상극의 이치로 정법을 대하고 대법제자를 대하면서 이를 인정했고, 또 완전히 이 이치 속에서 수련과 정법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개인 수련을 주요하게 보고 우주 정법의 내포를 인식하지 못했다. 즉 정법수련이 개인 수련의 이치를 멀리 초월하였음을 인식하지 못했으며 개인 수련과 정법의 관계를 바로 잡지 못했다.
예를 들면 북경이 사악 중심이라는 특수성을 말하기만 하면 많은 사람들은 상생상극의 이치로 사유하여 사악의 엄중한 박해 형세를 인정한다.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청성해야 하는데 우리는 사악의 박해가 이미 조성한 형세와 사악의 꿍꿍이 기제를 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이 이렇게 존재해야 할 도리가 있다고 승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것은 그것들이 사악한 논리와 자아를 보호하는 본능에 불과하다. 우리는 실제 정황을 아주 똑똑히 보았지만 내심에서 인정한 것에서 우리는 오히려 그것들을 근본적으로 승인하지 말아야 하며 그것들의 그 일체를 타파해야 한다.
속인의 말에 “적군 일만 명을 죽이면 아군 3천 명이 다친다”라는 설이 있고 또한 이 의미를 포함한다. 한 수련생은 자신도 모르게 이런 의식을 계속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사악의 검은 굴에 가서 발정념을 하면 아주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고, 박해에 반대하여 노교소 감옥에서 뛰쳐나오려면 얼마나 큰 마난의 대가를 치러야 하고, 단식 혹은 병업 상태가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해탈할 수 있고 박해를 부정해야 한다고 한다. 또 진상자료를 많이 배포하고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모험이 커진다고 한다. 나는 남방지역에서 한 동수에게 그가 이전에 잡힌 것에 대한 이유를 찾아 보았는지 물었더니 그는 곧바로 “나는 일을 너무나 많이 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2002년 보스턴 법회 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진상을 밝혀 중생을 구도(救度)하는 것은 낡은 세력은 감히 반대하지 못하는데 관건은 일을 할 때의 심태(心態)가 그것으로 하여금 빈틈을 파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최후의 집착을 제거하자》에서 사부님께서는 “지나간 1년 동안 수련생 자신의 업력(業力), 법에 대한 인식 부족, 난(難)속에서 아직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 고통스러운 관을 넘는 중에 정념(正念)으로 대할 수 없는 등등은 모두 사악한 것에 의해 박해가 가중된 주요 원인이자 또한 사악한 것이 진정으로 법을 파괴하는 근본적인 구실이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동수들이 사악의 박해를 겨냥한 반박해 항쟁 중에서 우리는 이런 관념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단호하게 항쟁할 수록 박해는 갈수록 무겁고 고통스럽고, 악한 자를 고발하면 보복이 두렵고 박해가 가중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이런 염두가 떠오르는데 진상을 많이 할 수록 시간은 더 길어지고 모험이 더 커진다이다.”늘 강가에서 걸으면 신발이 젖지 않을 수 없다”, “만일이 두렵다” 그리고 일부 수련생은 붙잡힌 여러 명의 동수들 중에 이른 바 “중점인물” 뛰쳐나온 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별로 큰 일이 없었던 사람들은 도리어 나오지 못하고 오히려 그가 나왔군! ” 등등이다.
이런 낡은, 이기적으로 자아를 보호하는 심태는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착오적으로 상생상극의 낡은 이치를 승인하고 있는데 이는 이미 정법 중의 중대한 장애가 되었다. 그리고 사악은 또 마침 이 관념을 이용하여 감히 나와서 항쟁하고 비교적 큰 작용을 일으키는 동수에 대해 박해를 가중시키고 제멋대로 탄압성세를 만든다.
많은 동수들은 내려놓지 못한 고려심과 두려운 마음으로 이 사악한 논리를 승인하고 있다. 사악은 노교소에서 이렇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2006년 8.25일 사건 당시 북경의 사악은 이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북경 동수들, 우리는 정말로 그것들이 단지 감히 일을 하려고 하는 동수만 찾으려고 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들은 고의적으로 탄압 형세를 만들어 이를 빌미로 북경 수련생을 정체적으로 제압하려고 하였으며 공포 분위기를 만들었다.(실질적으로는 그것들 자신의 공포를 나타내는 것임). 그렇다면 그것들은 왜 일정한 목적에 도달할 수 있었는가? 우리 북경 대법제자의 관념 속에서 이런 것을 승인한 것이 아닌가? 만약 우리가 “이기적”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근본적으로 사악이 고의적으로 제작한 인과 관계의 가상과 사악의 논리를 승인하지 않았다면(한 일이 많을수록 탄압이 더 커진다) 우리는 그것들의 실질적인 공포를 볼 수 있다. 우리는 발견할 수 있는데 마침 우리가 한 것이 너무나 적어 그것들은 비로소 이렇게 날뛸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것들이 탄압 분위기를 만드는 과정에 표어 진상이 아주 많았다면 그것들이 항상 이러했겠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농담 한 마디를 하는데 그것들이 지쳐서 죽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만약 탄압하지 않으면 그래도 “좋은데” 그것들이 탄압할수록 진상 표어는 더 많아진다. 그렇다면 사악의 논리는 무너질 것이고 그것들은 멍청해진다.
사부님께서는 “두려움이 없다면 또한 당신으로 하여금 두려워할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최후의 집착을 제거하자》고 하셨다. 사실 나 자신의 노교소에서의 체험에서 적극적으로 박해를 제지할 수록 박해는 적어졌는데 나는 이것이 바른 이치라고 단호히 믿고 있다. ” 일개 대법제자로서 무엇 때문에 박해를 감당할 때 사악한 자를 두려워하는가? 관건은 집착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소극적으로 감당하지 말고 언제나 정념(正念)으로 악인(惡人)을 정시(正視)하라. 어떤 환경이든지 막론하고 사악의 요구, 명령과 시킴에 다 협조하지 말라. 여러분이 모두 이처럼 한다면 환경은 이렇지 않을 것이다.”《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는 것이다》
또 일부 수련생은 북경이 어떻게 특수하다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런 관념을 강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이 표달한 뜻에도 도리가 있다. 그러나 대법제자로서 우리의 인식이 이 일체를 초월할 때 우리는 그 속의 두 가지 방면의 어떠한 일방에 제한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북경이 특수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이 정상적이라고 말하면 어떠한 작용이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낡은 세력의 “당연하게” 이런 조건과 작용을 이용하여 박해하는 것을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들은 긍정코 그렇게 생각하고 가서 행할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절대로 인정할 수 없고 또한 그것으로 하여금 진정하게 성립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비록 많은 동수들이 모두 이미 이 도리를 명백히 알고 있지만 심성상에서 집착과 과실이 있어 틈을 타게 해서는 안 된다. 인식상에서 철저하게 낡은 세력의 배치를 철저히 부정해야 하는데 총체적으로 정념은 강해야 하고 올바른 믿음이 단호해야 한다. 그런 사악한 박해 속에서 또 시시각각 해낼 수 없는데 한 수련생은 일사일념으로 낡은 세력을 부정해야 한다는 교류글에서 이 한 점을 이야기했다.
두 가지 예를 말하겠다. 타 지역의 한 수련생은 북경에서 잡힌 후 단식으로 항쟁하고 강박에 의해 야만적으로 음식물을 주입당하자 귀에서 피가 흘러 내렸다. 사악은 크게 긴장하였는데 이는 다른 공간의 사악이 감당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 수련생은 저녁에 꿈을 꾸었다. 두(낡은 세력의) 신이 와서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나가도 되는데 당신은 정황이 특수하다. 당신은 간염증상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 당시 급한 마음에 내심으로 묵인했다. 결과 병원에서 검사하니 간염증상이었고 그는 풀려났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후 생각 밖으로 간 부위 통증으로 침대에서 두 달 동안 뒹굴었다. 그는 나중에 알았는데 바로 대가를 내어 뛰쳐 나가야 한다는 낡은 세력의 배치를 승인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 수련생은 구치소에서 줄곧 2달 넘도록 단식했고 또 노교소에 보내졌다. 그는 사부님께서 그에게 뛰쳐나갈 길을 배치해주셨음을 이미 진실하게 느꼈다. 거기에 동수들이 발정념을 하면서 직접 노교소에 방문하여 구원하려고 했다. 노교소에 도착하여 풀려날까 말까 하는 일보에 있었다. 이 수련생은 병원에 누워서 링겔을 뽑아버리자고 생각했다. 견디기 힘든 며칠동안 그는 갑자기 일종의 마비증상이 다리에서 올라왔다. 한 가지 염두가 나왔는데 이는 사부님의 배치이신가, 이런 병업 반응 형식으로 나가야 하는가? 그 또한 이 일각에 묵인하여 그는 나중에 풀려났어도 반 년 동안 두 다리가 무력하여 대법을 실증하는 일에 투입될 수 없었다.
수련생은 끝내 명백해졌다.“우리는 근본상에서 그것의 이 일체를 부정하며, 그것들을 부정하고 배제하는 중에서 당신들이 행한 일체야말로 위덕이다. 그것들이 조성한 마난 속에 가서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승인하지 않는 가운데서 자신의 길을 잘 걷는 것이며, 그것들 자체를 제거하는 마난의 표현마저도 승인하지 않는다. (박수) 그럼 이 각도에서 볼 때, 우리가 마주한 일은 바로 낡은 세력에 대한 전반적인 부정이다. 그것들이 최후로 발악하는 표현을 나와 대법제자들은 모두 승인하지 않는다.
”《2004년 시카코 법회 설법》
이상의 두 수련생은 기본적으로 박해를 부정한 후 사실 사부님께서는 이미 필성(必成)의 길을 잘 배치해 놓으셨다. 이때 낡은 세력은 방식을 바꿔 또 죽기 전의 몸부림을 친다. 철저히 물러서려고 하지 않고 기어코 대법제자가 대가를 치러게 하려고 하며, 기어코 그것들의 상생상극의 이치를 강제로 주입하려고 하며, 그것들의 다른 일종의 배치를 강제로 가하려고 한다. 이때 만약 대법제자의 정념이 단호하면 완전히 법에 서서 이 일체의 박해형식을 철저히 부정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정법 수련의 길을 완전히 걸을 수 있고 더욱 큰 작용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동수들은 이때 일념 사람 마음으로 또 낡은 세력을 승인하였다. 낡은 세력은 정법 요구에 부합되지 않는 낡은 이치를 밀어부치는데 이는 사부님께서 승인하지 않는 것이고 새 우주가 승인하지 않는 것이다. 낡은 이른 바 우주의 이치에 대해, 그것들은 실재적이라고 느끼고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법 중에서 신 우주 앞에서 그것은 이미 “진리”가 될 수 없고 이미 불실(不實)한 가짜 이치가 되었다. 오로지 우리가 진정으로 정념정행하면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준수하고 따른 대법의 바른 이치를 성취해 주실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것은 관념이다. 어떤 자는 가짜 이치를 위하여 생명을 바칠지언정 개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관념자체는 오히려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낡은 세력과 기타 요소는 이렇게 하려고 하지 않는가? 대법제자로서 조건없이 가서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용하고 자신의 일사일념이 낡은 요소에 의해 교란되었는지를 명확히 분석하고 사악이 조성한 압력 하에 우리는 좌우지되지 말아야 한다. 진정으로 법을 스승으로 모시고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어야 한다. 속인은 이러한 한 마디 말이 있는데 “이 사악을 믿지 않는다!”라고 한다.
사부님께서는 “정법이 시작된 후에 일체는, 정법 과정 자체를 포함해서, 모두 미래의 수요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을 잊지 말라.”《2005년 샌프랜시스코 설법》 “기왕 이러하다면 중생은 모두 이 법을 위해 온 것이므로, 마땅히 정면으로 법에 원용(圓容)해야 하며 법에 강요해서는 안 되며 미래에 강요해서는 안 된다.”《2004년 워싱톤 DC법회 설법》고 하셨다. 낡은 세력, 상생상극의 낡은 이치를 포함하여 오로지 대법 정법을 어떻게 협조해야 하지 반대로 정법에게 요구하여 따르라고 할 수 없다. 대법은 근본상에서 그것들을 바로 잡고있는데 어찌하여 완전히 그것들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이는 반대가 아닌가?
“4대는 이미 풍화되고 낡은 법은 해체하고 있다.”(《법정일체(法正一切)》)。우리가 육안으로 본 인류 표면은 아직도 낡은 이치를 따라 운행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법리를 말씀해주실 때 그것들은 이미 진실하지 않고 이미 가짜 이치로 변했다. 단지 남아있는 물질 요소가 소멸되기 전의 최후의 에너지에 불과하다. 우리는 발정념하고 진상을 알릴 대표면의 변화를 주시할 필요가 없다. 작용이 크지 않다고 하여 아주 많은 일들을 진정으로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사실 우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악의 물질 요소를 없애는 것에는 시간의 과정이 필요할 따름이다.
문장완성:2007년 04월 27일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4/30/153667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