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북미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4월 23일】 사부님께서는 『원만을 향해 나가자』라는 경문에서 수련인의 근본 집착문제에 대해 한 차례 제출하신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안을 향해 찾은 후 자신에게 원만을 추구하고 층차 제고를 추구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중에, 정법수련의 길에서 점차적으로 중생을 구도하는 대법제자의 위대한 사명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고 원만과 층차에 대한 집착을 일찍이 내려놓았다. 즉 자신에게는 이미 근본 집착이 없다고 여겼고 또 아주 열심히 다른 동수들이 근본 집착을 찾는 것을 도왔다.
나는 줄곧 행복한 대가족에서 살아왔고 수련을 시작한 후로는 자신이 정(情)에 대해 이미 아주 담담하게 본다고 여겼다. 그러나 사악의 박해로 인해 작년 압력에 의해 가족들과 헤어져 혼자 해외에서 머물고 있다. 이 시간에 나는 늘 고독하고 괴로운 느낌이 있었는데 사실 나는 줄곧 행복한 생활에 대한 집착을 갖고 있었다. 단지 속인처럼 그렇게 강렬하지 않았을 뿐이며, 이전에도 줄곧 있었지만 발견하지 못하다가 지금 완전히 제거할 때에 와서야 비로소 드러나게 된 것이다. 평상시 아주 바쁠 때는 아무 생각도 없지만 조금이라도 한가해지기만 하면 나는 곧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 남편, 아이, 부모님 누구라도 하나 내 옆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특히 다른 동수들이 일가족이 함께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은 더욱 쓰려왔다.
한번은 집에서 딸 아이 사진 몇 장을 부쳐왔는데 아이의 귀엽고 예쁜 얼굴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눈에는 오히려 일종 애절한 표정이 드러났다. 몇 살짜리 어린 아이가 마땅히 가져야 할 아무 근심걱정이 없는 그런 표정이 전혀 아니었다. 나는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사부님 법상(法像) 앞에 무릎을 꿇고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는 정말이지 너무 괴롭습니다. 차라리 시원하게 한바탕 울도록 해주세요.” 막 대성통곡을 하려던 찰나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일어나 문을 열어보니 한 동수 아주머니가 신문을 들고 서 있었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신문을 가져다준 후 떠나기 전까지 잠시 머물다 갔다. 문을 닫고 나서 나는 생각해보았다. ‘아직도 계속 울어야 하는가?’ 나는 갑자기 무료함을 느꼈고 이는 사부님께서 아주머니를 배치하시어 나더러 정(程)속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해선 안 됨을 일깨워주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정이란 일종 사악의 교란방식임을 알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나를 교란할 수 있었던 것은 여전히 내게 내려놓지 못한 근본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에서는 막 사부님의 『원만을 향해 나가자』라는 경문의 구절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무엇이 근본적인 집착인가? 사람은 세상(世間)에서 많은 관념을 길렀는바, 관념에 의하여 이끌어 가기까지 하면서 동경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사람이 세상에서 이러한 마음을 갖고 아름다운 추구와 소원을 동경하는 것은 잘못이 없다. 그러나 수련하는 사람으로서는 물론 안 된다.”
비록 법리상에서는 분명했지만 내려놓지 못한 정은 도리어 나로 하여금 이 고비를 넘기는 것을 지지부진하게 했다. 최근에 나는 또 한 동수로부터의 씬씽 고험에 부닥치게 된 후에야 비로소 꿈에서 깨어났다. 인간의 온정(溫情)에 대한 갈망은 나로 하여금 일찍이 무의식중에 동수의 정을 유일한 감정의 의지처로 삼게 했다. 때문에 동수로부터 오는 상처는 정말이지 나로 하여금 뼈를 도려내는 아픔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사실 상처받은 것은 모두 사람 마음임을 나도 알고 있다. 나한(羅漢)은 속인 중의 일체 일에 대해 전혀 마음을 두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날 주말을 맞아 뉴욕에 있던 한 친척이 일부러 나를 자신의 가족모임에 데리고 나갔다. 나는 정에 이끌려 그녀를 따라 갔는데 간 후에야 비로소 기독교 신자들의 모임임을 알게 되었다. 모임에서 그들은 나의 모든 것에 대해 아주 관심을 갖고 보살펴주었다. 나로 하여금 그들의 즐거움과 상화로움을 느끼게 하여 모음에 가입시키려는 것 같았다. 나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원래 행복한 생활에 대한 나의 동경이 이렇게 뿌리가 깊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게 했으며 그렇지 않다면 낡은 세력 역시 이런 수법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낡은 세력은 동수의 태도를 이용해 대법에 대한 나의 바른 믿음을 흔들려고 한 것이다. 나는 절대로 자신의 이 근본 집착을 더 이상 방임할 수 없으며 이 뼛속 깊이 형성된 사람의 이치를 반드시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 최후의 길을 잘 걷고 바르게 걸을 수 있겠는가?
법학습을 통해 나는 대법 수련은 바로 인류 사회의 현실 속에서 사람의 모든 동경과 집착을 내려놓고 철저하게 안에서부터 자신을 제고하며 진정으로 자신을 개변하고 이성적으로 무조건 대법에 동화하는 것이지, 현실을 도피하거나 외부 환경의 개변이나 혹은 시간에 의지하거나 혹은 무슨 일을 하여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갈수록 명확히 알게 되었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苦度)에 감사드리며 나로 하여금 수련 중의 보따리를 하나하나 의식하고 없앨 수 있게 해주시고 진정으로 순정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걸어갈 수 있게 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
문장발표 : 2007년 4월 2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7/4/23/153276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