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3월31일] 나는 현지에 있는 극소수의 기술 인원 중에 한 명이다. 한 번은 협조인과 함께 동수집에 있는 컴퓨터 문제를 해결하러 갔다. 우리는 서로간에 잘 모르는 사이였다. 가는 길에 협조인 수련생은 나에게 어디에서 살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략적인 위치를 말하고는 동수의 질문을 회피했다.
동수집에 가서 컴퓨터 문제를 해결한 후, 마침 12시가 되어 우리는 함께 발정념을 하였다. 발정념을 한 후, 나는 사양하지 않고 수련생이 마련한 점심 식사를 협조인 동수와 함께 먹었다. 밥을 먹을때 수련생은 또 나의 사업과 가정 등의 일부 개인적인 일을 물었다. 나는 당시 수련생이 나를 집에 오게한 것은 나에 대한 신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만일 자신의 상황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내가 그를 신임하지 않는다고 여겨 동수 사이에 간격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모두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수련생은 또 내가 모모(다른 한 기술이 있는 동수)를 아느냐고 묻었다.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나는 이 상황을 아내(동수)에게 말했더니 아내는 한바탕 나를 비평하면서 내가 수구를 하지 않았다고 여겼다. 나는 처음에 변명하면서 말했다. 나도 수련생이 나에게 이런것을 물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가 없이 그에게 진실을 말했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수구는 좋지 않은 말을 가르키는 것이지만 이것은 그런 것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자신이 동수집에 갔지만 수련생이 나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었는데 내가 어떻게 모른다고 말하겠는가? 마땅히 두려운 마음을 없애버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아내는 그래도 내가 회피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인정(人情)에 낯이 가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전법륜》 중의 ‘수구’라는 그 한 편의 문장을 펼치고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았다. “동문제자(同門弟子) 중에서 서로 간에 쓸모없는 잡담을 하거나” 나는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개인의 정보와 컴퓨터 해결 문제 사이는 조금도 관계가 없기 때문에, 그것은 ‘쓸모없는’ 것에 속하며 특히 이런 것들은 자료점과 관계가 있는 정보들로서 더욱 서로 알려서는 안 된다. 오직 법을 실증하는일에 영향을 주는 일이 아니라면 서로 너무 많이 알아서는 안 되며 이것도 자신에 대하여 동수에 대하여 정체에 대하여 책임지는 것이다. 이것은 두려운 마음이 아니다.
다른 한 방면으로 말하면, 만약 상대방에게 알리지 않으면 법을 증실하는 큰 일에 시간을 지체하게 되는 일이라면 응당 알리면서 두려운 마음을 마땅히 없애버려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것이 아니라면 왜 말하게 되는가? 무슨 마음에 잡혀 말한 것인가? 과시하는 마음, 아직도 쑥스러운 체면때문인가?
이밖에 우리 동수 사이의 관계는 속인 사이의 그런 친구의 관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 있을때 그런 속인 사이의 말을 삼가하고 어떤 것은 근본적으로 말해서는 안 되며 그런 속인 사이의 일을 적게 혹은 하지 말아야 한다.
문제에 부딪치면 반드시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 이번 일을 통하여 나도 자신이 마땅히 제거해야 할 몇 가지 사람의 마음을 찾게 되었다. 그것은, 주로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꾸물꾸물하고 망설이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사사로운 정에 집착하고 체면에 집착하는 것이다. 동수집에 가서 기술 문제를 해결하려는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려는데 목적이 있었지 다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 설령 식사시간이 되었을지라도 집에 갈 시간이 되면 마땅히 돌아가야 하며 신경쓰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인정에 거절하지 못하고 또한 수련생이 밥을 먹고 가라고 만류한 것은 감사의 마음과 기본 예절이라고 받아들였다. 수련생이 일부의 무관한 문제, 특히 개인의 정보를 물었어도 마땅히 호의적으로 회피했어야 하며 자신이 왜 알리지 못하는가를 말한다면 무슨 난처할 것이 없었다. 이것도 이 문제상에서 교류이며 수련의 체득이다. 마음속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도리어 말하게 되었다. 이것을 무슨 ‘진실’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당연히 이 가운데에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 과시하려는 마음, 그 외 일부 완전히 없애버리지 못한 사람 마음이 있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자료를 만드는 동수들은 마땅히 명혜주간을 중시하여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명혜주간에 수구에 관한 문장, 자료점의 안전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주의할 것인가 하는 많은 문장들이 올랐는데, 이것은 두려운 마음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동수들 사이에 그렇게 많은 개인 문제를 말하는 것도 역시 수구를 잘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도 협조인 동수들에게 각성하게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배치된 기술 동수와 자료점 동수들이 접촉할 때 그들 사이에 수구에 주의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은 원용한 것이다. 안전을 주의하는 것과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는 것은 서로간에 결코 모순되지 않지만, 느낌으로는 모순되어 보인다. 그것은 자신이 법을 잘 이해하지 못하여 마땅히 없애버려야 할 사람의 마음을 없애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에게 이러한 없애버리지 않은 사람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수구가 잘 되지 못하여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상은 나 자신이 이 층차와 상태에서 수구에 대해 깨달은 것이니 틀린부분이 있으면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문장 발표 : 2007년 3월 31일
문장 분류 : [수련 마당]
원문 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7/3/31/151801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