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3월 1일】 최근 현지의 어떤 수련생이 여러 사람들을 조직하여 24시간 릴레이 발정념을 하면서 현지 사악을 제거한다는 말을 들었다. 매 사람이 연속 한 시간씩(5분 전 자신을 청리하는 것은 포함하지 않음) 발정념 하는데 이렇게 하면 매 사람마다 연속 한 시간씩 발정념을 하게 되고 다음 한 시간은 또 다른 사람이 이어서 하게 되어 사악이 숨 돌릴 시간이 없게 한다는 것이다. 듣기에 이미 24명이 돌아가면서 시작했고(또 계속 확대하려고 한다) 매 사람은 고정적으로 어느 한 시간을 맡아 발정념을 하는데 법정인간이 올 때까지 견지한다고 했다.
상술한 방법에 대해 나는 약간 다른 생각이 있어 제출하여 동수들과 토론해보고자 한다.
만약 이렇게 한 사람이 한 시간씩 이어서 발정념을 해야만 사악이 ‘숨 돌릴 시간이 없게 한다’는 이것은 분명 극단적으로 법을 이해한 것 같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전혀 없지 않은가. 명혜 편집부에서도 지금까지 이렇게 제창한 적이 없다. 사악을 제거하는 것은 발정념이란 한 가지 방식에만 의한 것이 아니며 우리가 세 가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모두 사악을 제거할 수 있다. 정체적으로 놓고 말할 때 사악은 소멸당해 점점 적어지고 있다. 아울러 우리가 입장(立掌)을 하면 그것이 엎드려 있고 우리가 손을 내려놓으면 그것이 숨을 쉬고 다시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절대 다수 동수들을 놓고 말하자면 매일 직장 일과 속인 생활을 하는 이외에 법공부, 연공, 발정념, 진상을 알릴 수 있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다. 이 활동에 참여하는 동수들을 놓고 말하자면 매일 별도로 또 한 시간을 짜내어 발정념(어떤 사람은 새벽에 안배되었다)을 한다면 아마 법공부 혹은 다른 대법 일을 실증하는 시간을 감소시킬 것이다.
《미국 플로리다법회에서의 설법》에서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여러분 알다시피 중국대륙에서 대법제자들이 받은 박해는 참으로 심하다. 그러므로 매 한 사람의 수련생들은 모두 반드시 진정하게 자신의 책임을 뚜렷이 인식해야 한다. 발정념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마음을 조용히 하면 진정으로 정념의 작용을 일으킨다. 때문에 이는 지극히 관건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만약 매 한사람의 수련생들이 모두 이 한 점을 할 수 있을 때면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동시에 발정념 하는 그 5분에 사악은 삼계(三界)내에 더 이상 영원히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대뉴욕지구 법회에서의 설법과 해법》에도 다음과 같은 단락이 있다.
“문: 발정념할 때 첫 번째 5분간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구결로 그것을 제거할 수 있습니까?
사부: 발정념할 때 늘 구결을 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한번 읽으면 되며 작용을 일으키는데 특수한 정황은 제외한다. 당신이 조용해지지 않음을 느끼고 정념을 다시 조종하는 그것은 괜찮지만 역시 한 개의 잠시적인 것이다. 사실 정말로 조용해질 때 그 일념(一念)은 천지(天地)를 뒤흔들기 충분하며 못하는 것이 없고 단번에 정말로 당신이 뒤덮은 범위내의 일체를 모두 고정시키고 억제하는 것과 같다. 당신은 마치 한 개의 산 같고 단번에 그것들을 모두 억제시킬 수 있다. 사상이 늘 안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안정하지 못하면 그 한 점을 해낼 수 없다.”
사부님께서 상술하신 설법에서 내가 이해하기로는 발정념을 함에 있어 아주 중요한 것은 되도록 조용히 하는 것이며 이렇게 해야만 좋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용해지거나 혹은 입정한 후에는 자연히 얼마나 발정념하고 싶으면 그만큼 발할 수 있고 때로는 상태가 아주 좋아 발정념을 하는 시간이 아주 길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태는 강제로 구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애써 얼마나 긴 시간을 정해놓고 발정념한다고 하여 이런 상태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통일적으로 한 시간씩 정해놓고 발정념을 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은 나중에 다리가 아파 사상을 집중하기 어려울 것이며 사악을 제거하는 효과도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때 다리를 내려놓고 조용히 법공부를 하여 제일 좋은 상태로 조종한다면 몇 분만 발정념을 해도 마음을 조용히 하지 못하고 한 시간씩 발정념을 하는 효과보다도 좋다고 본다. 지난 몇 년 동안 명혜편집부에서 발정념에 관해 통지한 것에서도 모두 ‘5분에서 10분’, ‘최소한 5분’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어떤 수련생은 원래 매일 4차례의 전 세계 동시 발정념 마저도 잘 하지 못하는데 특히 저녁 12시 발정념을 할 때 늘 피곤하다. 지금 새벽에 또 한 번 꼬박 한 시간을 증가한다고 하는데 장기적으로 이렇게 한다면 자신의 수련에 인위적으로 어려움을 증가시킨 것이 아닌가? 이로 인해 사부님께서 질서 있게 안배하신 것을 교란하는 것은 아닌가?
《2004년 미국서부법회에서의 설법》에서 다음과 같은 한 단락의 법이 있다.
“문: 발정념을 할 때 시간을 고정시킬 필요가 있습니까?
사부: 원래 명혜망에서, 정체상에서 전 세계 대법제자가 시간을 정해 발정념을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대단히 좋은바, 여러분들은 그렇게 하도록 하라. 기타 구체적인 것은 부동한 지역에 부동한 정황에 따라 할 수 있다.”
사부님의 이 단락 설법에서 내가 이해하기에 단체적인 통일 발정념을 놓고 말하자면 일반적인 정황에서 우리는 편집부의 통지에 따라 매일 4차례 전 세계 동시 발정념을 하면 된다. 또 각 지역에서 각자 조직한 몇 차례 발정념(우리 지역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주로 저녁 8시, 9시, 10시 이 3개 정각에 단체로 발정념을 하기로 정했다)도 요구에 부합된다고 본다. 특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예를 들면 장마두가 해외 혹은 대륙 모 지역에서 도망 다닐 경우 우리가 전문적으로 이것을 겨냥해 발정념 하거나 혹은 박해당한 모 수련생을 구원하기 위해 발정념을 하거나 혹은 중국 영사관 앞 특수한 곳에서 발정념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 우리는 어느 한 동안 시간 내에 겨냥성 있게 발정념을 많이 했고 심지어 24시간 정각 모두 발정념을 하기도 했다(그러나 매 사람마다 모두 한 시간씩 발정념을 한 것은 아니며 구체적으로 얼마나 길게 발정념을 할 것인가는 매 개인이 자신의 상태에 따라 융통성 있게 했다). 만약 어떤 동수들이 특별히 시간이 많거나 혹은 어떤 동수의 상태가 특별히 좋아 아주 적은 잠을 자고 장기적으로 밤중에 일어나 발정념을 하면서도 졸지 않을 수 있다면 당연히 더욱 좋다. 그러나 이것은 여기에서 토론하는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
여러 사람들을 조직하여 장기적으로 단체 발정념을 하는 행위를 놓고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이렇게 안배하지 말 것을 건의하며 사람의 사상을 섞어 발정념을 대하지 말아야 한다. 새벽 몇 시에 발정념을 하면 다른 시간에 발정념을 하는 것보다 효과가 정말 더 좋다고 말할 수 있는가? 법리적으로 근거가 있는가? 만약 효과가 그다지 좋지 않다면 되도록 기타 휴식에 영향을 주지 않는 시간에 안배하는 것이 더욱 좋지 않겠는가?
이 일에 대해 나는 위와 같은 생각이 있다. 어떤 생각은 꼭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제출하여 동수들이 같이 깨달아보기 바란다. 나 개인적으로 보고 들은 정황에 의하면 어떤 동수들이 이 활동에 참여한 것은 법에 있지 않은 일부 생각이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어떤 동수들은 자신이 하루 종일 원래 시간이 긴박한데다 또 새벽 2시 발정념을 증가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안 되면 이번에는 저녁 12시 발정념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의미는 우선 잠을 자고 설사 저녁 12시에 일어나지 못하더라도 2시에 다시 일어나 한 시간 발정념을 한다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일을 조직한 수련생이 수련을 잘했으니 그가 한 말은 마땅히 잘못이 없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이 참여하면 자신도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활동에 참여한 모든 동수들이 다 안으로 찾아보기 바라며 자신이 이 활동에 참여한 것이 법리적으로 이해함에 있어서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따라 배우는 것인가? 만약에 이렇다면 우리는《아태지역 수련생 회의에서의 설법》에 나오는 다음 단락을 다시 복습해보도록 하자.
“문: 최근 그 누님은 발정념하는 방식을 개변할 것을 고집하면서 5분간씩의 결합 순서를 변경했는데, 앞 5분간 자신의 사상 중의 모든 나쁜 염두를 깨끗이 제거하는 것을 먼저 흑수를 제거하는 것으로 고치고, 수련생들을 강박하여 그녀의 구결에 따라 하게 합니다.
사부: 보라, 그럴 것이라고 하니 바로 그렇게 되었다. (뭇 사람 웃음) 이는 그녀가 마음이 일어나게끔 조성한 것인데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당신들이 그녀를 별다르게 하도록 했다. 때문에 나는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사람이 어느 한 방면에서 잘 수련되었다면 그가 법 중에서 잘 수련했기 때문이지, 그가 법보다 더 좋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법을 배우지 않고 사람을 배워서는 안 된다. 사람은 수련 성취되기 전까지는 언제나 누락이 있지 않은가, 어느 방면이 좋다는 것은 전면적으로 모두 좋다는 것이 아니다. 이제 잘 되었다 ―― 수련생을 집착이 있게 만들었으니. 이런 일들을 주의해야 한다.”
이 문장을 쓴 것은 동수들이 단체 발정념의 적극성에 타격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더욱 잘하고 극단으로 걸어가지 말며 형식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공동으로 더욱 바르게 걷고 더욱 잘하기를 바란다.
이상은 개인의 생각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로 지적해주기 바란다.
문장완성: 2007년 2월 2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7/3/1/149942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