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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하면’ ‘당 정치’를 타파할 수 있다

글/어우양 페이(欧阳非)

【명혜망 2007년 2월 26일】(명혜평론) ‘정치’는 일본인이 영문 ‘Politics’를 번역할 때 만들어 낸 단어인데 중국어에서 그대로 인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손중산은 “정(政)은 뭇사람들의 일을 가르키고 치(治)란 관리를 말한다. 뭇사람들의 일을 관리하는 것이 정치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공산당 사회에서‘정치’는 이미 그 면모가 철저히 달라져 있다. 정치는 백성들의 생활 곳곳에 침투되어 있다. 생명이‘정치생명’으로 바뀌었고 사상은 ‘정치사상’으로 변했으며 도덕도‘정치각오’로 바뀌었다. ‘정치’는 서방에서 왔지만 지금 중공의 정치개념은 영문과는 그 뜻을 대응할 수 없게 되었다. 예를 들면 중공이‘정치 각오를 높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선전하는데 중국인은 듣기만 하면 더 해석할 필요없이 금방 알아 듣는다. 하지만 이를 영문으로 번역해 놓으면 서방 사람들은 아예 무슨 소린지 모른다.

그것은 중공이 말하는‘정치’는 곧 ‘공산당과 고도의 일치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추상적이면서 구체적인 개념을 말하기 때문이다. 공산당이 소위 말하는 ‘정치각오’는 간단히 말하면 ‘공산당이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다.

만약 공산당이 거짓말을 할 때 당신이 이를 폭로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당이 당신을 비방할 것인데, 이에 대해 당신이 해명하려 한다면 안 되는 것이다. 즉, 당이 사람을 박해할 때 당신이 중지하라고 호소한다면 바로 당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며 ‘정치각오’를 잃은 것이다. 공산당의 정치는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며 정치 진공(真空)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중공은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수호하는 ‘불정치’행위를 ‘정치를 한다’고 말한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민간의 표현이고 중공의 정식 용어는‘사람들에게 알릴 수 없는 정치적 목적’을 말한다. 무엇 때문에‘사람들에게 알릴 수 없는’단어를 넣어야 하는가? 그것은 공산당의 악행을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권리를 찾으려는 목적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단지 헌법이 허용하는 제일 기본적인 정당 권익을 찾으려는데 있다. 예를 들면 언론자유, 신앙자유 등 이런 요구는 어떤 정치적인 목적을 두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그러므로 중공은‘사람들에게 알릴 수 없는 정치목적’이라는 용어를 쓸 수 밖에 없다. ‘죄를 씌우려고만 한다면 어찌 구실이 없음을 걱정하랴.’이렇게 사람들에게 ‘정치를 한다’는 꼬리표를 달아 놓고 비방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정치를 한다’는 꼬리표만 달아 놓으면 중공이 마음대로 박해할 수 있는가?

간단하게 말하자면 정치 운동 중 기만하여 구슬리고, 달래고 또 속이는, 피비린내 나는 중공의 살육 현장을 목격해 온 중국인들은 정치에 대해 열광하다가 정치에 대해 냉담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정치를 싫어하고 회피하며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물론 한 극에서 다른 극단으로 넘어갔으나 중공의 정치 기현상[怪圈]을 벗어나지 못했다. 마치 시소(跷跷板)에 앉은 것마냥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옮겨가도 여전히 시소 위에 있는 것과 같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철저히 순종하게 만들며, 만약 기본 인권을 쟁취하고 중공에 대해 공정한 처사를 요구하는 것은 모두‘정치를 한다’고 규정해 버렸다.

몇 십년동안 사람들은 중공은 사람을 혼내는 정치를 한다는 고정관념이 박혀 버렸다. 공산당이 당신을 혼낼 경우 당신은 참고 있다가 누명을 벗겨주면 감지덕지해한다. 그것은 공산당의 강대한 권력앞에서 당신은 권리를 말할 수도 심지어 말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이 틀에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고 중공을 폭로하거나 중공의 악행을 제지시키려 한다면 당신은 중공의 관할범위에서 생활해야하는데, 이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초월한 것이기에 당신은‘정치를 하고’있는 것이다.

일단 당신이‘정치를 한다’고 인정되기만 하면 성질도 금방 변하게 된다. 사람들에게 곧 ‘양지착위(良知错位)’가 발생한다——‘정치를 하는’것은 마치 혼을 잃게 하는 약(迷魂药)처럼 사람의 제일 기본적인 선악과 시비를 가르는 표준이 비뚤어지게 한다. 중공이 무고한 사람을 아무리 참혹하게 살해하여도, 모든 비열한 수단을 써도, 모든 망나니 짓을 다 해도 사람들은 ‘정치’라는 이 ‘당경(党经)’만 건드렸다고 인정하면‘정치를 한다’는데 미혹된 사람들은 수난자를 동정하고 가해자를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수난자를 질책하며 그들을 성원하려 하지 않는다. 마치‘정치를 하는’것이 중공이 살인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이라 여기는 것 같다.

이런‘양지착위(良知错位)’가 바로 중공이 바라는 것이다. ‘정치를 한다는’이 모자는 중공이 ‘정치 냉담기’에 사람들을 선동하여 중공의 폭행을 경시하게 선동하는 제일 악독한 무기라 할 수 있다.

‘정치를 하는 것’이 정말 그렇게 무서운 것인가? 파룬궁 수련생들과 그들 지지자들이 끊임없이 호소하고 전세계에서 평화적으로 청원을 하고 있으며, 박해에 항의하고 진상을 알리며 범죄 원흉을 기소하여 중공의 폭행을 강력하게 제지하고 있다. 중공은 매체를 이권으로 매수하여 많은 매체들은 중공의 반인류 죄악을 묵과하고 있으며, 심지어 중공을 대신해 요언을 퍼뜨리게 하였다. 이에 파룬궁 수련생들은 신문과 텔레비전 방송국을 설립하여 파룬궁 진상을 널리 알렸고,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폭행, 특히 생체 장기적출 후 시체는 소각하는 전례 없던 죄악을 전세계에 폭로하여 중공의 망령된 행동을 효과적으로 억제시켰다.

8년의 반박해중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이 한 것은 진상을 똑바로 알리고 중공을 폭로하여 박해를 제지하려는 것 뿐이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정치적 목적이 없고 수련자는 세상의 권리에 대한 집착을 포기해야 한다. 중공의‘정치를 한다’는 논조는 사람들로 하여금 중공의 선량한 민중에 대한 탄압과 비방을 묵인하고, 맹목적으로 이를 따라하게 하였으며 사람들이 파룬궁 진상을 아는데 거대한 장애가 되었다. 《9평 공산당》이 공산당의 사악한 본질을 뚜렷하게 폭로하자 퇴당 고조가 일어나 사람들이 중공의‘정치’에서 탈출토록 하여 중공의 정치 기현상[怪圈]에서 철저히 벗어나 정상인의 사유과 정상 생활을 회복하게 되었다.

만약 인민들의 반박해, 중공 해체와 당문화 해체를‘정치를 한다’고 하면 이런 정치는 많은 사람들이 하면 할수록 좋으며 인민들에게 더 유익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정치를 하면’ 중공의 속박과 인민을 박해하는 당정치를 철저히 배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정치’를 왜 정정당당하게 하지 못하는가? 공산당이 없으면 ‘당정치’도 깨끗이 제거될 것인즉, 사람들이 선악과 시비를 가르는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생길 것인데,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문장 발표:2007년 2월 26일
문장 분류:수련자 평론
원문 위치:http://www.minghui.ca/mh/articles/2007/2/26/1497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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