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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절단된 후 곤혹 속에서의 깨우침

글/허베이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2월 18일】 우리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공장이 하나 있는데 그 공장의 현장 주임 (속인)이 진상을 알게 된 후 주동적으로 탈당했을 뿐만 아니라 늘 대법제자들을 도와 탈퇴를 권유 하거나 진상을 알리는 일을 하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일하던 중에 한 쪽 손이 기계에 말려들어가 끊어졌다는 것이다. 고통 속에 몸부림치면서 그녀가 나에게 하는 말이 “당신이 말하지 않았어요? ‘하늘이 중공을 멸하려’ 하니 탈당 하여 평안을 보호하라고. 난 이미 탈퇴도 깨끗이 했고, 또 당신들을 도와 탈퇴를 권유하는 일도 아주 많이 했는데 왜 이런 액운을 당하죠?” 당시 그 말을 들은 나는 일시적으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우리의 인식상의 모호함으로 인해 이 일은 아주 오랫동안 현지 대법제자들이 법을 실증하는데 어느 정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한동안 대법제자들을 곤혹에 빠지게 했다. 이 일에 직면하여 나는 몇몇 동수들과 함께 모여 교류를 진행하였고 아울러 마음을 조용히 하고 사부님의 설법을 학습했다.

사부님께서는 《2005년 로스앤젤레스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중생들이여, 당신이 오늘 무엇을 하든지 간에 사실 아직도 모두 법을 위해 온 것이 아닌가?” 누구나 다 법을 위해 왔다면 그럼 이 현장주임도 예외가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수련계에서 元神(왠선)은 불멸이라고 한다. 만약 元神(왠선)이 불멸이라면, 그는 아마 그의 생전(生前)에 사회활동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생전의 활동 중에서 아마 누구에게 빚을 졌거나, 누구를 괴롭혔거나, 또는 기타 좋지 못한 일들을 했거나, 살생 등등을 했을 것인즉, 그렇다면 곧 이런 업력을 조성할 것이다. 이런 것들은 다른 공간에서 그것이 아래로 내리 쌓일 수 있으며 항상 따라다니는데”

“속인이라, 어느 날에 가서 병을 얻게 되고, 어느 날에 가서 무슨 번거로운 일과 마주치게 되며, 어느 날에 가서는 정신병을 얻거나 또는 갑자기 죽을지도 모를 것인즉, 속인의 일생은 바로 이러하다.”

그렇다면 이 현장주임이 한쪽 손을 잃게 된 데는 틀림없이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녀는 속인이지 수련인이 아니다. 그녀의 인생행로는 개변시켜 준 사람이 없다. 그녀는 탈당했고 또 대법에 유리한 일들을 좀 했고 자신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해 주었으므로 이 생명은 분명 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매 사람의 업력과 인생행로는 같지 않으며 인식 정도도 같지 않고 깨우침도 같지 않다. 그러므로 복을 받는 방식과 표현 형식도 같지 않다. 만약 탈당을 했고, 진상을 알게 되었다 하여 인생이 순풍에 돛단 격이 되어 그 어떤 나쁜 일도 전부 없다고 한다면 그건 인튜 사회가 아니라 신선 사회가 된 것으로 이것은 인류 사회의 이치가 아니다.

예를 들어 말한다면, 사람이 대법을 수련하면 물론 모두 큰 복이 있는 것이고, 생활의 길도 개변될 것이며, 대부분의 업력도 모두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에 의하여 떼여 버릴 수 있다. 하지만 대법 수련생의 생활 속에는 여전히 고난이 있고 모순이 있으며, 심지어 큰 마난도 있다. 이는 매 사람의 업력장, 근기, 연분, 역사 등의 원인으로 인해 조성된 것이다. 속인이 이런 모순과 고통을 겪는 것은 다만 업을 갚는 작용을 할 뿐이고 결국엔 여전히 육도윤회 중에서 좋으면 올라가고 나쁘면 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법 수련생이 수련 중에서 겪는 고통은 업력을 철저히 없애버릴 뿐만 아니라 또 心性(씬씽)을 제고할 수 있고,생명의 경지를 승화할 수 있으며, 반본귀진의 길에서 끊임없이 앞으로 전진(前進)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그 뇌혈전의 예가 바로 그렇다. 그 사람이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그는 단 번에 넘어진 채 다시는 영원히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법을 수련했기 때문에 마난이 아주 많이 줄어들었고, 아주 빨리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그가 수련을 하기에 사부님께서 책임지셨기 때문에 비로소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지 수련을 했는데 왜 아무런 변화도 없고, 왜 뇌혈전 증상이 나타났느냐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이 사람이 걷게 된 후, 오성이 따라서 좋아졌더라면 그중에서 수련의 도리를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는 이 일을 통해 층차가 제고 되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 당시 그는 오성이 너무나 낮았다. 이것은 나중에 한 말이다.)

속인도 마찬가지다. 진상을 알았다 하여 나쁜 일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든다면 한 사람이 원래는 중대한 교통사고를 당해 비참히 죽었어야 했는데 지금 진상을 알게 되었고, 아울러 오성도 좋아 차 사고가 발생할 위험한 고비에 즉각 “파룬따파하오”를 외침으로써 아무 일도 생기지 않거나 혹은 가벼운 상처를 입었을 뿐이다. 이것은 아주 큰 복을 받은 것이 아닌가? 이러한 사례들은 아주 많다. 위에서 말한 그 현장주임의 일도 마찬자기 도리이다.

만약 현대 속인들의 변이된 관념으로 복보(福報)를 이해한다면 곧 이해할 수 없거나 극단으로 나가게 된다. 복보는 인생에 고난과 모순이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니며, 속인 사회를 신선 사회로 변하게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사람의 성명(性命)이 보호 받고 생명이 아름다운 미래를 얻는 것이다.

법공부와 교류를 통해 우리는 곤혹을 풀었다. 대법에 비추어 자신을 찾아보았더니 아주 많은 부족점을 발견 했다. 때문에 진상을 알릴 때 흔이 말을 지나치게 하거나 혹은 보증하기도 했는데 이 모두는 자신이 법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함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단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부딪치면 곧 똑똑히 해석하지 못하여 법을 실증하는데 곧바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며, 중생구도에 방해를 조성하게 된다.

금후 진상을 알리거나 혹은 3퇴를 권유할 때 요점을 똑똑히 말할 것을 건의한다. 즉 “큰 난이 올 때 생명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라고.

그 외, 속인에게 ‘생명 호신부’를 줄 때도 마땅히 주의해야 한다. 특히 병이 좀 위중한 환자들에 대해 너무 지나친 말을 삼갈 것을 건의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이는 우리가 바라는 일이 아니며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볼뿐 이다. 환자가 참으로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인식하고 진짜로 자신을 대법과 대법의 사부님께 맡겨야만 기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한번 시험 삼아 읽어 보십시오, 병이 중한 많은 사람들이 읽고서 좋다고 합니다. 기적이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당신에겐 아무 손해도 없습니다.”

이상은 개인의 깨우침이므로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문장발표 : 2007년2월 1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7/2/18/1490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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