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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운 정을 닦아 버리고 가정 환경중에서 바르게 걷자

【명혜망 2007년 2월 3일】 명혜주간 263호(역주: 한글 명혜주간 제28호에 해당)의 문장을 본 후 이 방면의 심득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가정은 거의 모든 대법 수련자들이 모두 직면하는 것으로 직장 등 사회 환경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수련하는 씬씽(心性)이 어떠한지 그 속에서 체현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속인에게는 가정은 사람의 피난처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수련인으로서 가정은 우리 사람마음의 피난처가 아니며 가정의 사소한 일은 모두 우리 씬씽이 진실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작은 일이라고 하여 작은 것이 아니다. 나는 이 방면에 교훈이 있으며 지금까지 줄곧 걸어오면서 사람 마음을 끊임없이 타파하면서 가정 역시 갈수록 원용해졌다.

남편과 나는 대학 동창으로 그는 세심하고 자상한 성격이다. 비록 무신론의 독해를 심하게 받아 신불(神佛)을 믿지는 않지만 99년 이전에는 늘 법학습 장소까지 나를 태워다 주곤 했다. 나는 그때 휴일이면 늘 단체 법학습과 홍법에 참가했기에 그는 혼자 집에 있어야 했다.

99년 4.25이후 비록 법학습 장소 주변에 사복 경찰이 깔렸지만 우리는 단체 법학습을 견지했고 북경에 가서 법을 수호하는 것을 교류했다. 그때 끊임없이 북경에 가서 법을 실증하고 돌아오는 수련생들이 있었으며 수련생들은 모두 주동적으로 법학습 장소에 찾아와 교류했다. 엄혹하고 심한 공포분위기 속에서도 정념의 장은 나를 단련시켰고 나로 하여금 한 차례 또 한 차례 자아를 내려놓고 북경에 가서 대법을 실증하도록 했다. 어떤 때는 시간을 잊고 교류하다가 귀가가 늦어지곤 했는데 남편은 창밖을 바라보면서 내 안전을 걱정했다.

내가 4차례 북경에 가서 호법하는 기간에 사악 역시 여러 차례 남편 직장에 가서 소란을 피웠고 내가 불법으로 노교소에 감금된 기간에는 그 역시 파출소에 불려가 취조를 받아야 했다. 남편은 나 때문에 이렇게 커다란 압력과 위협을 감당해야 했다.

불법으로 노동교양을 받는 기간에 근본 집착을 제거하지 못하고 너무나 고통스런 압력을 견디지 못해 나는 사오(邪悟)에 빠졌고 하루 종일 나가서 가족들과 단란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고 싶었다. 집에 돌아온 후 도 3년이란 시간 법학습을 하지 않았고 하루 종일 남편과 산수 유람을 다니며 흐리멍덩하게 살았다. 나중에 나는 임신을 했지만 속인으로 전락했기에 오래지 않아 유산되었다. 당시 나는 정말로 내가 왜 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때 어떤 수련생이 나에게 진상 CD와 경문을 보내주었다. 사부님의 설법은 마치 커다란 망치처럼 내 마음을 때렸고 모든 경문을 다 보고난 후에 나는 ‘전화(轉化)’란 잘못임을 깨달았으며 새롭게 수련을 시작하기로 했다.

남편은 내가 다시 수련을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는 이전의 자상하던 태도에서 돌변하여 정말로 이혼하려고 했다. 기한을 정해 나더러 옷가지를 수습하게 하고는 자신이 나가던가 아니면 나더러 나가라고 했다. 나는 요 몇 년 동안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집에는 내 물건이라고는 없었기 때문에 그더러 나가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일단 수련생을 찾아가 돈을 좀 빌린 후에 방을 얻고 또 직장을 구해 어쨌든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바로 당일 그가 집에 와서는 자기 친구가 내 일자리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이것은 사부님의 격려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고 부모님은 나더러 고향에 와서 함께 있자고 하셨다(친정집은 온 가족이 수련생임). 그래서 나는 진상 CD와 경문을 가지고 친정에 갔다. 친정에 있던 두 달 동안 그들은 본래 나를 설득하려 했지만 도리어 나에게 설득 당했다. 돌아올 때 남편이 비행장까지 나를 마중 나왔고 이혼이야기는 더 이상 꺼내지도 않았다. 내가 친정에 가 있던 기간에 남편은 새로 방을 구했고 우리는 사부님의 자비하신 보호 하에 다시 새롭게 시작했다.

내가 출근을 하면서 월급을 받았고 나는 이 돈으로 컴퓨터와 타자기를 사서 자료를 만들었다. 처음에 그에게 진상책자를 주자 아무런 말도 없었다. 나중에 서서히 말이 많아졌고 나중에는 그도 주의 깊게 들었다. 그 뒤 남편 직장에서 그더러 작업 능력이 뛰어나다며 입당(入黨)할 것을 권했으나 거절했다. 그는 공산당이 아내를 박해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남편이 이익 앞에서 정확한 선택을 한 것에 나 역시 기뻤다.

아래에서 나는 씬씽 방면의 깨달음을 말해보고자 한다.

1. 매사에 안을 향해 찾고 사사로운 정을 닦아버리다

우리가 새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남편과 직장 여자 동료와의 관계가 미심쩍다는 것을 발견했다. 함께 식사를 할 뿐만 아니라 생일선물로 값비싼 물건을 주고받고 핸드폰 문자 메시지가 빈번히 오갔다. 여 동생이 불법으로 노동교양을 받아 내가 고향에 다녀온 기간에도 남편은 여전히 그녀와 함께 여행을 갔다. 나중에 나는 심각한 상처를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후 나는 늘 남편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남편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를 보려 했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그가 잘못한 것이지만 그러나 나는 한 가지를 소홀히 했다. 바로 이 일이 왜 나타났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나의 어떤 마음을 겨냥해서 온 것인가? 만약 나의 장(場)이 순정(純正)하다면 좋지 않은 것들이 어떻게 들어올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당시 집착심에 이끌려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다. 안을 향해 찾고 싶지 않았고 단지 그가 무엇을 잘못했는가만 보면서 또 전통적인 논리로 그를 설교하며 나의 마음속 불만을 해소했다. 그러나 이런 권고는 표면적으로는 그를 위하는 말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이익을 수호하고 감정이 상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남편이 바로잡혀 우리 가정과 부부의 정은 보전될 수 있기를 바란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이 변하길 바라면서 자신은 변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수련이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고통스러웠던 근원은 무엇인가? 나의 남녀 사이의 사사로운 정에 대한 집착과 아름다운 감정에 대한 동경은 마치 한 속인과 마찬가지로 남편에 대한 소유욕과 감정적인 의지 및 또 질투심이 있었다. 속인으로 있을 때를 회상해보면 나는 바로 이런 것들을 몹시 중요하게 보았고 힘써 지키려 했는데 지금은 그야말로 정곡을 찔린 셈이었다. 이런 것들에 대해 서서히 담담히 보게 되었고 이런 일들이 더 이상 재현되지 않게 되었다.

또 한 번은 남편이 갑자기 전립선염을 앓게 되었다. 의사는 매주 한 차례 이상 부부생활을 가지면 좋아진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이런 병에 걸리자 남편에 대한 정신적 부담이 꽤 컸다. 나는 당시 이것은 나의 색욕심이 제거되지 않았기에 색마가 이런 틈을 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고층차 상에서는 이런 것이 마땅히 있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가 다시 검사해보니 아무 문제도 없었다.

2. 사심(私心)을 닦아 버리고 진정으로 남을 위해 생각

나는 어려서부터 줄곧 다른 사람의 보호를 받아왔으며 학교에서도 모범생이었기에 체면을 중시하고 명예에 집착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관심과 배려를 갖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겨왔고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고려하고 감당하는 것은 아주 적었는데 즉 사심(私心)이 무거웠다. 때문에 직장에서 다른 사람 앞에서는 최대한 잘하려고 했지만 집에 돌아와 가족들 앞에서는 곧 쉽사리 자신의 마성(魔性)을 방임했다. 사실 이때야말로 씬씽의 진실한 체현인 것이다. 왜 늘 잘하지 못하는가, 진정으로 본질상에서 대법에 동화되는 것만이 진정한 수련이다.

나는 이전에 늘 내가 수많은 역경을 지나왔으며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모두 큰일이라고 여겨 집안의 사소한 일은 아예 중시하지 않았으며 태도에 성의가 없었다. 마음속으로 자신은 중요한 일을 한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정이라는 이 환경 속에서 착실히 수련하지 못한 것이다. 아이를 낳고 난 후 시부모님이 아이를 돌봐주실 때에야 나는 비로소 이런 집안의 이런 작은 일들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발정념을 할 때도 마음이 조용해지지 않았는데 이런 것들은 수련 초기에 마땅히 제거해야할 것들임에도 나는 지금까지 남겨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인식하자 정말로 부끄러워 진땀이 났고 마치 비로소 수련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이 사(私)는 바로 낡은 우주의 속성으로 지금 나는 끊임없이 그것을 의식할 수 있고 시부모님과 남편 및 아이를 위해 생각한다. 진상을 알릴 때도 이전처럼 그렇게 강경하게 주입하거나 설교하려고 하지 않으며 그들의 각도에 서서 이해하려고 하며 최대한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한다는 원칙으로 직장과 가정 및 단체 법학습 및 법을 실증하는데 참가하는 관계를 잘 평형 시키고 있다. 이렇게 되자 온 가정이 화목해졌고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나의 사심(私心)이 나올 때면 나는 원망하면서 우리 가정은 위로는 노인이 있고 아래로는 아이가 있어 정말이지 가고 싶으면 어디나 갈 수 있는 수련생이 부럽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나의 정법수련의 길이며 또한 후인들에게 참조로 남겨줄 것이다. 나는 자신의 차이가 아주 큼을 알며 이런 기회를 통해 법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순정하게 하고 자신을 바로 잡으며 중생을 구할 수 있게 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문장발표: 2007년 2월 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7/2/3/148234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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