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후베이(湖北) 전업수련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1월 13일】 나는 종교에서 13년 째 수련하고 있으며 출가해서 큰 명산(名山)과 작은 사찰에 있다. 종교는 말법(末法)에 이르러 수행할 방법이 없으며 오직 계율만을 지킬 뿐이다. 씬씽(心性)도 제고되지 않고 本體(번티) 역시 전변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몸이 약해서 병이 많았고 심지어 혼자서는 생활할 수도 없었다. 1997년 9월 인연이 있어 《전법륜》이란 보서(寶書)를 얻었고 이때 이후 나의 인생의 길은 곧 개변되었다. 그때 나는 법학습이 깊지 않았고 법리에 대한 이해도 높지 않았으며 법을 보호막으로 여겼다. 대법을 얻었으니 일체는 보장을 받을 수 있으며 체질도 모두 정상으로 되어 희희낙락했다. 법을 제1위에 두지 못했고 자신을 보호하는 것을 제1위에 두었다.
나는 대열에서 낙오한 제자로 또 곤두박질쳤다. 비록 법을 떠나지는 않았지만 잘 하지는 못했다. 나는 성격이 내향적이고 소심하며 낯선 사람을 두려워한다. 7.20 이후 모든 마음이 폭로되어 나왔으며 두려움, 사심(私心) 역시 나왔고 감히 진상을 알리지 못했다. 동수들의 여러 차례에 걸친 일깨움과 도움 하에 나는 비로소 걸어 나와 진상 자료를 만들고 3퇴 역시 소량이나마 하게 되었다. 비록 내가 한 것이 썩 잘한 것은 아니지만 전업수련제자로서 다른 동수들과 함께 진상을 알릴 기회가 적고 대부분 혼자서 해야 했다. 그러나 매번 진상을 알릴 때면 나는 근시인 까닭에 사부님의 가지(加持)가 있어야 했다. 한번은 아주 일찍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의 일이다. 6-7촌 높이의 섬돌을 걸어가는데 한걸음에 내려왔다. 다시 고개를 돌려 다음 걸음을 뗄 때에야 나는 발걸음이 너무 편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원래 대낮에도 주의하지 않으면 넘어지곤 했었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사부님의 보호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대법을 배운 후 이미 원래 있었던 사찰을 떠났다. 7.20 박해가 시작된 이후 원래 사찰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절이 사악과 악당(惡黨)에게 점거되고 파괴되었기 때문에 나 역시 고정적인 곳에 머물 수 없었다. 2000년 불법으로 6개월 동안 구류를 당했고 2001년에는 교란으로 형님 댁에 갈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원래 있던 사찰에 돌아갈 수도 없어 나는 외지(外地)로 운유(雲遊)하면서 풍찬노숙을 하며 살았다. 이 기간에 나는 소심한데다가 진상 자료도 없어서 아이들이 먹는 과자 포장지를 뒤집어 작은 표어를 써서는 나무에 끼워 길가 담에 끼우거나 혹은 줄에 매달아 나뭇가지에 걸어놓았다. 몇 차례 위험이 있었지만 사부님의 점화 하에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나는 혼자서 운유하며 풍찬노숙을 해도 두렵지 않았고 늘 사부님께서 신변에 계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번은 저녁에 기와를 굽는 가마에서 잠을 자는데 위험이 닥쳐왔지만, 사부님의 점화 하에 그곳을 떠났고 나는 비몽사몽간에 “수련을 잘해라.”라는 목소리를 들었다.
이렇게 피비린내 나는 몇 년을 지내는 중에 중국 대륙의 전업수련제자들도 적지 않겠지만, 매번 속인 중에 있는 대법제자를 만나 명혜망 원고, 교류를 빌려보곤 했지만 전업수련제자의 문장은 보지 못했다. 나는 자신이 배운 것이 짧고 또 글을 잘 쓰지 못할까 두려웠으며 게다가 수련도 잘하지 못하여 명혜망에 투고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수련생이 “우리가 어떻게 했던지 상관없이 마땅히 최근 몇 년 간 한 일체를 써내야한다. 우리 매 사람은 오로지 대법 중에서 수련하기만 한다면 한 것이 어떻든지 막론하고 모두 신기한 동시에 당신이 쓰는 과정 중에 수많은 좋지 않은 마음이 폭로될 것이다.”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요 몇 년간 고정된 곳에서 머물지 않았고 내가 머물렀던 절도 적지 않다. 다른 전업수련제자는 어떻게 이 몇 년을 지냈는지 모르겠다. 절에 있으면 예불을 올리고 경을 읽어야 하는데 전업수련제자들은 어떻게 했을까? 나는 어떤 때 다른 종교의 제자들과 함께 머물며 아침저녁으로 예배를 드렸다. 어떤 때 그들이 큰 소리로 경을 읽으면 나는 작은 소리로 《논어》를 외웠다. 또 어떤 때 나 혼자 작은 암자에 있을 때면 예불이나 독경도 하지 않았고 단지 아침저녁으로 향(香)만 올렸다. 공양드릴 사부님의 법상(法像)이 없었기 때문이다(당시 절에서 사부님의 법상을 공개하기에는 조건이 갖춰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란 역시 몹시 커서 일 년을 머물면 곧 떠나야 했다. 나는 최근에 또 한 작은 절을 맡았는데 안에는 3개 우상(偶像)이 있었다. 하나는 불교의 나한상이고 다른 두 개는 그나마 불교 중의 상도 아니었다. 건물에 들어간 첫날 밤 나는 사부님 법신께 청하여 이곳에 있는 상도 개광해 주십사 요청 드렸다. 하지만 교란이 무척 커서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고 또 두려웠다. 다음날 현지 동수들과 교류한 후에 수련생이 사존께 청리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 드리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한 노인 동수와 함께 절로 돌아왔다. 물을 이용해 상(像) 위에 ‘滅’자를 썼고 또 태울 수 있는 것은 다 태웠다. 아울러 사존께 나를 도와 일체 바르지 못한 요소들을 청리해주실 것을 요청 드렸다. 이후에는 두렵지 않았으며 잠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사본께 이 3개의 상에 개광을 해주실 것을 청했다. 나는 사존의 법신께 개광을 청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사존께 개광해주실 것을 청합니다. 개광하실 수 있다면 개광하시고 개광하실 수 없다면 청리해주실 것을 청합니다.” 내가 이렇게 한 것이 혹 맞는지 어쩔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드리고 법기(法器)를 두드리면서 ‘경(經)’을 읽는데 다음과 같은 식으로 하고 있다.[묘당에는 작은 북과 목어(木魚), 경(磬)만 있을 뿐이다.] 북을 치면서 “약인유료지 삼생일체불(若人有了知,三生一切佛)”을 읽는 대신 “法輪大法好”라고 말한다. 두 번 읽으면 10글자가 되기 때문에 원래 글자 수와 일치한다. 이렇게 3차례 북을 친다. 두 번째로 목어를 치면서도 역시 “法輪大法好”라고 말한다(연속 3번 한다). 경을 칠 때는 “法輪大法是正法”을 외는데 연달아 세 번 한다. 그리고 나서 연달아 《홍음》에 나오는 〈다시 재도〉(1번), 《논어》를 왼다(3번 내지 9번). 게(偈)를 할 때는 《홍음》 〈다시 재도〉와 《홍음(2)》 〈큰 액운(洪劫)〉을 읽는다.
또 향을 사르는 문제가 있다. 속세의 대법제자들은 조건이 되면 직접 사존께 향을 올릴 수 있지만 우리 전업수련제자들은 매일 우상을 마주하고 향을 피워야 한다. 나는 매일 향을 올릴 때 이렇게 생각한다. 향을 피울 때는 ‘리훙쯔(李洪志) 사존(師尊)’이라고 세 번 외고 다시 《홍음(2)》 〈불법은 끝이 없어라〉, 〈종루(鐘樓)〉, 〈고루(鼓樓)〉를 왼다.
또 한 가지 이야기할 일은 우리 지역에 있는 몇 명의 동수들이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홍법과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모두 진상을 듣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절에 가서 향을 올렸다. 이 몇 동수들은 사람들이 진상을 듣지 않고 절에 가서 향을 올리는 것은 분명 이 절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저녁에 절 근처에 가서 발정념으로 청리했다. 절 안에서 청리할 때 어떤 때는 거대한 소리를 들었고 또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어떤 때는 검고 진한 연기를 보았다. 그들은 절을 청리한 후 꿈속에서 절 안에 있던 우상을 보았는데 작은 우상은 넘어져서 죽었고 큰 우상은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움직일 수 없었고 단지 두 눈만 깜박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다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자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였다. 이전에는 늘 절에 가서 향을 사르던 사람들이 이후에는 가지 않게 되었고 어떤 사람은 염주마저 불에 태워버리고는 곧 ‘法輪大法好’를 외웠다. 어떤 사람은 수련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어떤 동수들은 인식이 같지 않아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이유는 사부님께서 《전법륜》 개광 중에 언급하신 다음 단락 때문이다.
“과거에 지상불(地上佛)・지상도(地上道)라는 것이 비교적 적었지만 현재는 특별히 많다. 그것이 나쁜 짓을 할 때면 위에서도 그것을 죽이려 하는데, 죽이려 하면 그것은 불상으로 도망쳐 올라간다. 속인의 이 이치를 일반적으로 대각자는 경솔하게 건드리지 않고, 더욱 높은 각자일수록 속인의 이치를 더욱 파괴하지 않으며 조금도 건드리지 않는다. 아무튼 갑자기 한 차례 벼락으로 불상을 쳐부술 수는 없으며 그는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이 불상으로 도망치면 상관하지 않는다. 그것을 죽이려 하면 그것이 알고 그것이 도망친다. 그러므로 당신이 본 관음보살은 관음보살인가? 당신이 본 부처는 부처인가? 말하기가 아주 어렵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동수들이 지적하여 바로 잡아주거나 보충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더욱이 전업수련제자들이 대법을 실증하는 수련경력을 명혜망을 통해 교류하여 공동으로 제고하기 위해서이다.
현재 특히 농촌에서는 거의 모든 마을마다 다 작은 절이 있으며 아울러 대다수는 부체(附體)를 가진 사람들이 지키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절에 가서 향을 사르고 돈과 재물을 구하거나 명리를 구하는데, 구하면 구할수록 그것이 사람들을 더욱 통제한다. 사람들이 절하고 구하는 대상은 모두 나쁜 것이며 두려운 것이지만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진상을 아는 것을 저해하고 있고 대법제자들이 진상을 알리는 데에도 어려움을 가져왔다. 나는 조건이 가능한 동수들이 당신들 부근에 있는 마을의 절에 가서 마땅히 발정념으로 청리할 것을 건의하는데 이렇게 하면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데에도 순조로울 것이며 또한 보다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불교 중의 승려들은 대부분 착실한 수련을 중시하지 않으며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 역시 진정한 전수를 얻을 수 없고 수련이 아주 어렵다. 그러나 그들도 현재 불교 중의 법(法)은 사람을 구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지 미륵불(彌勒佛)이나 혹은 법륜성왕(法輪聖王)께서 세상에 내려와 사람들을 구도하실 때를 기다려서야 비로소 제자들이 정과(正果)로 수련 성취할 수 있을 뿐임을 알고 있다. 경서 중에도 기재가 있다.
아울러 그들은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올리면서 모두 轉法輪을 청하고, 부처님께서 세상에 머무실 것을 청한다. 아침에는 《보현(普賢)보살 십대소원》을 읽는데 이 중에서 “⑥ 법륜(法輪)을 돌려주실 것을 청함, ⑦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래 머물기를 청함”이 있다. 저녁에 읽는 《참회문》에는 “전어무상묘법륜(轉於無上妙法輪)”, “청불주세전법륜(請佛住世轉法輪)”이 나온다. 또 초하루와 보름에는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을 읽는데 사실 이 역시 오늘날 대법이 전해지기를 청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왜 法輪을 돌릴 것을 청하고 부처님께서 세상에 머무시기를 청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내가 이런 것들을 써서 승려나 혹은 학식이 있는 거사에게 진상을 알릴 때는 예언 중에 나오는 미륵불이나 혹은 법륜성왕이 세상에 내려와 사람을 구도하는 기록을 가져간다. 이런 내용은 그들이 받아들이기 쉽다. 나는 종교 중의 제자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곧 법륜성왕과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와 세인을 구도하는 관계를 말한다. 어떤 여자 신도는 늘 절에 갔는데 절에 가면 늘 돈을 말했으며 마치 돈으로 공덕을 교환할 수 있 것 같았고 극락에 가는 것은 마치 거짓말처럼 여겼다. 그녀의 남편은 학식이 있는 사람이며 그녀 역시 아주 많은 종교서적을 읽었다. 종교 서적에서 미륵불과 법륜성왕이 세상에 내려와 사람들을 구도한다는 등의 말을 본 적이 있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더러 절에 가지 못하게 하면서 말했다. “지금 절에서는 수행할 수 없고 사람을 구도할 수도 없으니 곧 돈만을 말할 뿐이야.”
나중에 그녀는 인연이 있어 나를 만났고 나는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종교는 이미 말법에 이르러 수행하기가 아주 힘듭니다. 모두들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오시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실 미륵불은 이미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나는 또 파룬궁(法輪功)과 법륜성왕, 미륵불의 관계를 말해주었다. 그녀는 바로 받아들였고 공을 배웠다. 그녀의 가족들마저도 수련의 길로 들어섰다.
나는 어떤 때 다른 종교 중의 제자에게 말한다. “불교도들이 왜 아침저녁으로 法輪을 청하고 부처님께서 세상에 머무시길 청하는가?” 그러면 오성이 좋은 사람은 말한다. “그럼 바로 파룬궁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불교도들이 아침저녁으로 法輪을 청하는데 우리는 생생세세로 얼마나 많은 윤회를 거쳤는지 모릅니다. 지금 대법이 전해져 바로 큰 法輪을 돌리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法輪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거짓말을 믿으며 아직도 法輪을 비방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오성이 좋은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법륜성왕과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와 3자 진경(眞經)을 전한다는 등의 예언을 가져와 보여주자 보자마자 단번에 말했다. “이 예언은 정말 잘 썼군요. 지금의 불교는 확실히 사람을 구도할 수 없습니다.”
어떤 남자 거사는 예언을 본 후에 좋다고 했다. 나는 사부님의 《홍음》에 나오는 시를 그의 접수능력을 고려하여 몇 수 적어주었다. 그는 보고 나서 “이 시는 정말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것은 우리 사부님께서 쓰신 시인데 이것 말고도 좋은 것이 많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내게 책을 보여 달라고 했고 나는 책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그럼 외워서 써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했다. 나는 《홍음》을 전부 베께 써 그에게 보도록 했다. 3일 뒤에 그는 말했다. “당신의 사부님께서 쓰신 시는 다 좋습니다. 너무너무 좋아요. 경서도 볼 수 있습니까?” 나는 책이 여러 권 있지만 주요하게는 한 권이라고 했다. 그는 그렇다면 그 책을 구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내가 《전법륜》을 가져다주자 그는 “이 예언서는 제가 가지고 가서 고향사람들을 구도하고 이 《전법륜》 책은 제가 가져가서 본 후에 다음에 가져다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십여 일이 지난 후에 그는 아주 기뻐하면서 다시 절에 왔다. “제가 예언서를 고향사람들에게 보여주자 모두들 다 좋다고 했어요. 경서는 제가 보고 있습니다.” 그는 웃으면서 “장래는 곧 法輪大法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절에서 또 한달 남짓 머물다 돌아갔다.
나는 그의 일체 관념과 언행이 다 개변된 것을 보았고 대법의 말, 풍격, 心性(씬씽) 수련과 참음을 말하며,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는 등을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내게 “모모 스승님(나를 가리킴) 저는 이전에 절에 가서 염불할 때 승려들이 모두 어떻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별로 흥미가 없었고 그들과 함께 법당에 가서 예불을 올리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렵니다.” 그는 또 “제 고향에도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와 연배가 비슷한 사람인데 불법으로 오랫동안 감금되어 있었지만 나온 후에는 여전히 견정하게 수련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남자 거사는 6월 19일까지 머문 후에야 떠났다.
또 한 번은 내가 어떤 중간 규모의 사찰에 간 적이 있는데 현성(縣城)과 거리가 비교적 가까웠다. 그곳에서는 작년부터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내가 간 3월 하순까지 줄곧 비가 내리지 않고 있었다. 연못은 말라버렸고 세탁과 음용수마저도 곤란했다. 먹는 물마저 산에 가서 길어와야만 했다. 내가 간 후 그 승려들에게 파룬궁 진상자료를 받은 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들은 지금껏 이런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몇 권의 예언서를 가져갔지만 두려움이 심해 감히 그들에게 보여주지는 못했다. 나는 사부님께 요청 드렸고 눈물을 흘리면서 도와주실 것을 청했다. 내가 용기를 내어 한 권의 예언서를 그들에게 보여주자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좀 있다가 또 두 번째 책을 꺼내 보여주자 또 비가 내렸다. 나는 이것을 별로 주의하지 않았다.
또 한참 후 나는 세 번째 예언서를 어는 보통 노인에게 주었다. 당시 그는 밭에서 혼자 김을 매고 있었다. 나는 책을 가만히 그에게 주면서 다 본 후에 돌려달라고 했다. 그는 “왜요?”라고 물었고 나는 읽어보시면 안다고 했다. 그는 밝을 때는 시간이 없으니 비가 내리거나 밤에 읽어보겠다고 했다.
다음날 또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그는 책을 다 보았고 아무도 없을 때 나를 찾아와 보자마자 두 손으로 허스를 하면서 말했다. “다 보고 돌려드립니다. 이 예언은 정말 잘 썼군요. 정말 좋습니다. 미륵불이 전하신 3자 경은 그 3글자의 진언(眞言)이 아닙니까(그는 나이가 많아서 ‘眞善忍’ 3글자를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또 다른 사람이 없을 때 그에게 호신부를 주면서 말했다. “이 글자를 잘 보세요. ‘眞善忍’이 바로 3자 진언입니다.” 그러자 그는 나를 향해 두 손으로 허스했다. 그는 또 내게 예언서를 주면서 말했다. “오늘은 비가 내려서 오전에 책을 다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비로소 이 지역에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었다는 것을 상기했다. 내가 3차례 예언을 그들에게 보여줄 때마다 곧 비가 내렸던 것이다. 이는 대법이 그들에게 가져다준 복이었지만 그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나중에 나는 또 사부님의 《홍음》과 《논어》를 베껴 적어 그에게 주었다. 그는 절을 올리면서 내게 감사하다고 했다. “이렇게 천리 밖에서 오시어 보배를 주시니 정말 감사 합니다.” 나는 확실히 천리 밖에서 왔던 것이다.
나는 수련을 잘하지 못하고 배운 것이 부족하며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동수들이 자비롭게 시정해주기 바란다. 전업수련을 하는 동수들이 명혜망에 투고하여 공동으로 제고할 것을 희망한다.
문장발표 : 2007년 1월 1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7/1/13/146309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