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6년 12월 31일】나는 줄곧 어떤 일에 부딪혔을 때 안으로 찾아서 나자신을 수련할 줄 안다고 여겨왔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동안 많은 기회를 흘러 보냈으며, 많은 문제에 직면하여 진정으로 나자신에게서 찾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른바 나자신이 안으로 찾은 것은 일정한 범위내에 제한되었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과 모순이 발생했을 때 반드시 자신에게 찾으며, 당시에 자신의 심성을 파악할 수 없었어도 나중에라도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문제나 모순이 발생한 것을 듣거나 보았을 때, 또 정체에 무슨 문제가 나타났을 때, 특별히 표면적으로는 본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을 때, 나는 나자신에게서 많이 찾지 않았다. 이런 경우 도리어 다른 사람의 옳고 그름을 쉽게 논하면서, 문제에 빠져있는 상태에서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착했고, 모순 속에 빠진채 모순을 해결하려 하며 또 급하게 모순을 해결하려고 했다. 몇 년동안 나는 협조인 일을 하면서 많은 경우 모두 이렇게 피동적인 상황에서 정체적인 모순을 해결해 왔다. 또 어디에 문제가 있으면 모두 나를 찾았기 때문에 많은 문제들은 여러 사람들과 상의해서 해결해야 했다. 이렇듯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비록 여러 사람이 안으로 찾고 있으면서도 누가 옳고 그른가를 말했으며, 당신은 어떻게 하고 그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 식으로 안으로 찾는 것은 다만 표면적으로만 다른 사람과 상대하지 않을 뿐임에도 그렇게 하는 것이 바른 자세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을 나는 남을 도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비록 여러 사람들과 법에서 교류를 하면서 같이 심성을 제고했다고는 하지만, 유감스러운 것은 그런 많은 기회에도 불구하고 나자신에게서는 문제를 찾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저 다른 사람의 문제이며 그 지역의 문제라고만 생각해 왔다. 마치 평론가처럼 그들을 도와 안으로 찾으며, 이 사람 저 사람을 이야기하고, 일에서 일을 논하며 모순 속에서 모순을 해결하는 식으로 가라앉히려고 했다. 나는 제삼자로서 모순 속에서 뛰쳐 나와 모순을 보지 않고 나자신에게서는 문제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사실 많은 동수들도 다 이런 문제가 있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관건은 내가 어떻게 해결하는가 이다. 사부님께서는 「미국 수도법회 설법」중에서 우리들에게 “어떠한 일에 부딪혀도 모두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최저한도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앞으로 맞받아 나간다면 해결하려고 할수록 더욱 해결하지 못한다. 사실 당신이 그 마음을 줄곧 내려놓지 못하면서 앞으로 맞부딪혔을 때 기어이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를 가리려 한다면 설령 자신에게 잘못이 있더라도 또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을 텐데, 그러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고 말씀하셨다.
사부님의 설법을 반복적으로 학습하게 되면서 나는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나는 한 수련인으로서 문제에 부딪혔을 때 자신의 안에서 찾지 않는 것은, 우선 법에 있지 않은 것으로 법에 부합하지 못하며, 사부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으로 법에 어긋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안으로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문제를 처리하고 해결하려 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모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하고 있는 본신이 바로 밖으로 찾아 남을 개변시켜 자신과 부합되게 하려는 것으로,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수련은 바로 자신이 수련하는 것이다. 이 일을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자신과의 관계 유무를 막론하고, 누구에게 일어났던 나와 거리가 멀던 가깝던,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가를 막론하고,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서 찾고, 자신에게서 법과 어긋나는 곳과, 존재하는 문제에 대해 자신에게 찾으려고만 하면 꼭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부딪히게 되는 모든 일들은 전부다 우연한 것이 아니며, 우리로 하여금 보고 듣게 하는 우리 공간마당에 들어온 것은, 반드시 우리 공간마당에 있는 바르지 못한 것들과 대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좋지 못한 표현은 우리들로 하여금 자신의 좋지 못한 점을 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사람과 일에 미혹되지 말아야 하며, 일에서 뛰쳐나와 자신의 사상반응을 보며, 자신에게 있는 무엇을 건드렸는지, 다른 사람에게 있는 문제가 자신에게는 없는지 자신의 문제점을 찾아서 제거하고 부정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첫 째는 법속에 있는 것이며 법 속에서 문제를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한발 물러서서 이 일을 생각하면 여러 사람들과 상의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여러 사람들도 모두 이렇게 할 수 있어서 안으로 찾을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일부러 가서 해결할 필요가 없다. 이렇듯 안으로 찾는 기제(机制)는 이미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여러 사람들은 이 일에서 모두 자신의 문제를 찾아 자신이 수련하고 심성을 제고한 것이다.
며칠 전 소조 법공부 교류회에서 계속해서 어떻게 ㄱ와 ㄴ동수의 모순을 해결할 것인지 반복하여 여러 사람들이 토론을 하였다. 두 수련생은 서로 배합하는 과정에 많은 모순이 나타났고 서로간에 또 정이 존재했다. 저녁에 또다시 교류를 했음에도 해결방법이 없었다.
후에 그들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다른 사람만 두고 말하고 있는지, 그들 자신들에게서 좀 찾아보자고 하여 결국 그들은 모순속에서 자신들의 관대하지 못한 점을 찾아냈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자신이 어떻게 하였는지 법으로 자신을 가늠하지 않고, 늘 법으로 다른 사람만 가늠하면서 다른 사람을 수련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표현한 점에서 어떤 동수들은 자신에게 깊이 파묻힌 정을 보았는데 그저 그렇게 표현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각자 모두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으며 또 문제의 실질을 보게 되었는데, 두 동수의 문제에 대해서는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에게 실질적인 문제로 반응되어 나오는 것은 실은 우리 정체의 문제이며 여러 사람들의 문제였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여러 사람들이 모두다 안으로 찾고 자신을 수련하게 되었다. 그 후 내가 두 수련생을 찾았을 때는 그들처럼 두 사람의 모순은 이미 해결된 상태였다.
모두가 다 정말로 안으로 찾은 특수성을 체험하였는바, 어느 수련생이 말한 것처럼 정체에 문제가 나타났을 때 여러 사람들 모두에게 다 그렇게 돌출하게 표현되게 할 수는 없으므로, 가능하게 개별적인 사람에게 표현되도록 하여 우리들에게 보여 준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들 모두 다 한몫이 있으며 가능하게 우리 정체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 문제는 마치 책임전(责任田)과도 같은데, 매 사람마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을 감당하지만 밭에 있는 잡초를 없애버리면 문제는 자연적으로 해결 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은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다” (《미국 수도법회서의 설법》라고 하셨다. 일에서 일을 말하고 모순 속에서 모순을 해결하는 것은 밖에서 찾는 것으로 낡은 우주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며 낡은 세력의 배치에 부합 된 것이다. 근본적으로 말하면 아직도 낡은 세력에 대해 부정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모순을 해결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낡은 세력이 대궁을 구하려고 함에도 왜 그들은 할 수 없으며, 도리어 스스로 훼멸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이다. 문제를 만났을 때 안으로 찾을 수 있는가 하는 이것은 낡은 우주의 생명과 새로운 우주 생명의 근본적인 구별이며, 일을 만났을 때 안으로 찾는 것은 우리에 대한 대법의 요구에 부합되는 것이다. 부단히 자신을 갱신하며 더러운 것을 제거하고 자신을 개변해야만 남을 포용할 수 있으며 자비를 수련하고 구도중생을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안으로 찾는가 하는 원칙론에 완전히 머물러있지 말아야 하며 더구나 형식에만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법에 동화된 후의 한 생명의 자연적인 표현으로, 다시 말해서 우리는 반드시 법 공부를 잘해야 하며 또 엄격히 법에서 자신을 요구하여 일체를 가늠해야 한다. 어떤 정황이든지 막론하고 어떤 문제와 모순을 만났을 때 표면적으로는 이 일이 자신과 관계없고 자신이 얼마나 잘하였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일에서 한발 물러서서 이 일을 사고하여 자신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제 저녁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미국 수도법회 설법》을 3번 외우면서 며칠간 나의 언행을 대조해 보았는데, 많은 면이 법 속에 있지 않았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최근 나는 새로운 지역에 가보았는데 안전 방면에 많은 걱정거리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바, 서로 수구를 하지 않고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는 것이었다.
가장 주요한 자료점에 6- 7명이 다 각기 열쇠를 가지고 있어서 출입이 자유로웠고, 법 공부를 중시하지 않고 일하는 것만 중시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나는 그 지역 연락인과 자료를 인쇄하는 수련생을 찾아서 그것을 지적하며 의견을 제기하였더니 그들도 문제의 엄중성을 인식하면서 나의 의견을 받아들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였다. 내가 그렇게 한 것에 대해 나는 나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을 조용히 한채 사부님의 《미국수도법회 설법》을 공부하면서 나의 행위를 돌이켜보니 나 또한 틀린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 지역의 문제를 보면서 먼저 나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나에게 이것을 보게 하였는가, 나에게 다른 사람의 그릇된 것을 보게 한 것에 대해 나는 왜 내 생각이 그렇게 옳다고만 생각하는지, 모순에 부딪혔을 때 나자신을 보지 않고 급히 다른 사람을 도와서 문제를 해결하곤 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가르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들은, 내가 이전에 부동한 층차 부동한 시기에 깨달은 이치를 다른 사람에게 밀어버리고는, 자신을 옳다고만 생각하여 나자신의 관념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한 게 아닌지 되돌아 보지 않았다. 또 나에게 이런 일을 보게 한 것은 가능하게 나에게 이전에 방법을 고치고 관념을 갱신하여 법에서 비틀어진 곳을 바로 잡은 다음 또 동수들과 위의 문제들에 대해 해결할 것을 상의하는, 원래 방법을 사부님께서는 이 방면에서 이미 명백하게 우리들에게 알려주셨다.
우리는 무조건 법에 동화되어야 하며, 오랜 시일에 걸쳐 형성된 사람의 이치를 돌려세워 사부님의 말씀대로 하여야 한다. 나는 최근에 나자신을 이렇게 요구하면서 정말로 많은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다. 근본적으로 위사 위아의 관념을 개변하였으며, 오랜 시일에 걸쳐 일하려던 사고방식과 습관도 개변하였다. 우리들이 마땅히 청성해야 할 점은, 우리가 하고 있는 그 어떤 일이거나 부딪히게 되는 어떠한 문제와 모순 속에서도, 우리 자신을 수련인이라고 생각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일하는데 집착하지 말고 급히 문제를 해결하려 하거나 모순을 없애려고 하지 말며, 그 중에서 자신의 마음을 수련하여 심성을 제고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제고가 제 일위이기 때문이다 .
이상은 최근의 수련 체험으로서 합당하지 않는 곳은 동수들이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완성:2006년12월29일
문장발표:2006년12월31일
문장수정:2006년12월30일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6/12/31/1457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