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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류 서적을 읽어야 하는가에 관한 논쟁에서 생각한 것

글/명월(明月)

【명혜망 2007년 1월 7일】 최근 일부 동수들 사이에 약간의 논쟁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연속으로 듣게 되었다. 논쟁이 발생한 원인은 이렇다. 어떤 수련생들이 《밀레르빠부처의 수련이야기》, 《예수전》, 《신전문화(神傳文化) 이야기》(명혜망에서 다운받아 모은 자료) 등 문화류 서적을 보고 (수련에) 도움이 되고 의미가 있다고 여겨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동수들은 이를 보고 조급해져서 이는 불이법문(不二法門)에 관련되는 문제라고 여기거나 혹은 이는 법이 아니며 낡은 우주 중의 것으로 수련인은 마땅히 법학습을 많이 해야 한다고 여긴다.

이런 논쟁을 보고 나는 사부님께서 《미국수도법회설법》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일부 문제나 모순이 나타났을 때 자신이 안을 향해 찾지 않는다면 모순이 두드러질 수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집착이 조성한 모순의 두드러짐이다. 어떤 것은 갈수록 더 두드러지는데 실제상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한 것이다.”
“일만 있으면 당신이 맞는가 내가 맞는가 하면서, 이것은 당신의 문제이고 이것은 그의 문제이며 내가 한 것은 어떠어떠하다고 하는데, 보기에는 마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조금도 해결하지 못한다. 보기에는 아주 이지적이지만 사실 조금도 이지적이지 않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고 문제를 사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냉정하고 온화하게 이 모순 속에서 물러나와 이 모순을 보아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전통문화 관계 서적을 마땅히 보아야 하는가 보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말하자면 사실 동수 쌍방의 말에 다 도리가 있다. 그러나 논쟁이 발생했으며 아울러 이는 이런 ‘도리가 있음’에서 조성된 것이 아니라 각자 모두 제거해야할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빨리 반응해야 하는바 모순이 왔으니 사상이 일의 표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더욱이 단지 자신이 옳은 것만 보거나 다른 사람이 모순을 조성한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모두 제때에 자신을 보고 자신의 어떤 관념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어느 방면의 씬씽을 마땅히 제고해야 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수련생이 교란을 받을까 염려하는 이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자 좋은 마음이다. 하지만 관심 속에는 사상방법이 절대적이고 과격한 곳이 있는 것은 아닌가? 중국 대륙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당문화(黨文化)의 주입 하에 몇 세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전통문화(神傳문화)와의 연계를 잃게 되었다. 단지 내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사실 많은 사람들은 전통문화의 표면적인 이야기나 역사 지식, 佛道神과 사람에 대한 인식방면에 대해서도 모두 공백이며 머릿속에 가득한 것은 온통 다 당문화의 내용과 사상방법이다. 법학습을 통해 우리 많은 동수들은 중국의 오천년 전통문화(신전문화)는 모두 지금의 사람들이 법을 얻기 위한 기초를 다지기 위한 것이자 아울러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신이 바라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인가를 다지기 위한 것임을 발견했다. 신전문화(神傳文化)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아울러 전통문화의 정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속인들이 진상을 받아들이고 수련인들이 법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모두 많은 곤란을 조성할 수 있다.

과거에 전통문화 환경 속에서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은 모두 인과를 분명히 알았고 사람은 신불(神佛)을 존경해야 하며 하늘을 공경하고 명(命)을 알아야한다는 것에 분명했으며 수련이란 고생을 겪어야 하고 수련인은 사부님을 존경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고 제자는 반드시 사부의 말을 완전히 들어야지만 비로소 수련성취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수련을 하자면 반드시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며 어떻게 해야만 한 가지 일을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는지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는 것 등을 알았기에 해낼 수 있는 정도가 아주 높았다. 이것과 비교하자면 지금의 현대인들은 관념이 변이되었다. 특히 당문화에 세뇌된 속에서 오랫동안 성장해 온 중국인들은 이런 일에 대해 제멋대로이며 어떤 때는 말을 들어도 별로 개의치 않거나 혹은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거꾸로 이해하고 부정한다. 어떤 사람은 옳지 않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무엇이든 감히 함부로 한다.

그렇다면 당문화를 똑똑히 알고 당문화의 어리석음에서 걸어 나와 머릿속에서 당문화를 제거한 후에 어떻게 해야만 문화방면(책을 볼 수 있는 능력 및 현대교육체계에서의 학위가 있는가 여부를 말하는 것이 아님)에서 공백이 없을 수 있겠는가. 만약 완전히 신전문화에 대한 지식이나 교양이 없다면 설사 많은 과학지식을 배웠다 할지라도 혹은 학위가 있다할지라도 구체적인 언행의 표현과 사로(思路)상에서 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적인 함축이 부족하고 이 세대의 기초가 거의 공백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전통문화가 교양한 사람은 모두 일종 중화(中和), 활달(豁達), 너그러운 분위기를 띠고 있지만 현대인들은 대개 이렇지 못하고 대신 과격하고, 편협하며 기계적인데 이것 역시 신전문화와 단절되어 조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인식하기에 법학습에 대해 일정한 기초가 있는 대법제자로서 말한다면, 일부 전통문화의 이야기를 정선(精選)해서 한번 읽어보는 것은 수련과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리는데 있어 모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무슨 나쁜 일이 아니다. 물론 시간을 잘 안배해야 하는데 만약 이런 책을 읽느라 법학습, 연공, 발정념, 진상 알리기에 영향을 준다면 당연히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다. 이외에 이런 책과 이야기를 보는 것은 쇠뿔을 파듯이 하거나 또는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흡수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그런 것들 속에서 수련하게 된다. 또 과거 전통문화와 수련문화 중의 것을 일률적으로 좋다거나 혹은 나쁘다고 여기지 말아야 하는데 여기서 벗어나 보다 높은 각도에서 인식할 수 있어야지만 비로소 이익을 얻고 교란 받지 않게 될 것이다. 아울러 필경 그런 것들은 모두 대법제자의 수련지도로 삼을 수는 없으며 오로지 대법만이 우리의 수련을 지도할 수 있다. 우리 정법시기 대법제자들은 오로지 두뇌가 청성(淸醒)해야만 법학습과 명혜망 문장을 보는 것과 문화관계 참고서적 및 진상 자료를 보는 것의 관계를 바로 잡을 수 있다.

다시 원래 화제로 돌아가 만약 자신이 문화관계 서적을 보다가 다른 동수의 지적을 들었다면 사실 이는 바로 일깨워주는 것이니 자신을 한번 보도록 하자. 자신은 시간을 안배하는데 있어 지나쳤던 것은 아닌가? 책을 보는 기점에 편차가 있거나 흥미나 오락방면에 치우친 것은 아닌가? 지식을 구하는 것에 치우친 것은 아닌가? 환희심이 일어나지는 않았는가? 불이법문(不二法門)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등등이다. 어떤 모순이 왔건 모두 제고하게 하는 것이며 누가 수련하면 누가 얻기 마련이다. 관건은 자신이 자신을 찾으려 하는가, 자신이 수련인임을 깨달을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명혜망 신전문화(전통문화) 이야기책이 하루 빨리 정식으로 출판되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 2007년 1월 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7/1/7/146301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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