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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하지 못하는 상태를 개변한데 대한 약간의 체득

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1월 7일】 박해가 발생한 이래 비록 늘 법을 실증해야한다 법을 실증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 법을 실증하는 인식에 대해 사실은 아주 모호했다. 비록 현재는 과거의 개인 수련시기와 같지 않음을 알지만 법을 실증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똑똑히 몰랐다. 그래서 수련 역시 때로는 느슨하고 때로는 긴장했다. 사부님의 신경문이 나와서 경문을 볼 때는 좀 틀어쥐다가도 한 단락 시간이 지나면 또 느슨해지면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박해를 자기를 느슨히 하는 구실로 삼고 늘 마음속으로 일종 억울함을 느꼈다. 나중에는 또 낡은 세력의 교란으로 속인 중에 미혹되어 법을 잘 학습할 수 없었다.

때문에 2004년 연말 《9평》이 나온 이후 드문드문 낡은 세력과 공산사령(邪靈)은 병업(病業)을 이용하여 줄곧 나의 수련을 방해하였다. 특히 올해에는 몸에 많은 부스럼이 나타났는데 아프면서 가려워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자신에게 이것은 낡은 세력과 공산사령의 방해임을 알리고 이것을 제거하려고 했으나 의지가 늘 확고하지 못했다. 안을 향해 원인을 찾아 보니 또 집착이 너무나 많은 것을 느꼈고 그중 어느 것이나 다 이런 교란이 생기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어 어느 것부터 없애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때문에 늘 분명하고 효과적인 개선이 나타날 수 없었고 병업과 같은 상태가 줄곧 지속되어 청정한 마음으로 법공부를 할 수 없었다. 비록 이런 상태가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나 역시 점차 신심(信心)을 잃게 되었다. 나중에 나는 이런 고통을 참을 수 없어 약을 먹고 말았다.

이 단락 시간에 나는 매우 고통스러웠다. 한편으로는 나도 몹시 정진하고 싶었고 명혜망에 동수들이 쓴 정진하는 문장을 볼 때면 그들은 어쩌면 저렇게 수련이 잘 되었을까 하고 매우 부러워할 때도 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수련의 길에서 용맹정진 하고 싶었으나 늘 그렇게 해낼 수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수련이 잘 되지 않아 겪지 말아야할 일부 난들이 나타남과 동시에 마음속으로 또 자신이 이 난을 넘기지 못했기 때문에 고뇌하였다.

나는 분명히 스스로 정진하려고 하고 학습도 하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늘 정진하지 못하는가?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는 걸까? 나는 줄곧 곤혹스러웠다. 며칠 전에 ‘병업’ 현상이 또 나타나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도대체 이렇게 계속 약을 먹어야 하는가? 너무나 망연했다. 나는 ‘이것은 수련이 아닌가. 도대체 어디가 잘못된 것인가?’ 나중에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요청 드렸다. ‘사부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나는 명혜망에 올라온 병업에 관한 동수들의 일부 체험을 찾아 두 번이나 보았다. 보고난 후 동수들의 문장을 생각했을 때 갑자기 법을 실증하는데 관하여 작은 깨달음이 있었다. 나는 자신의 인식에 잘못된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줄곧 대법으로 나를 향해 실증하려고 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병업 상태가 나타나면 법을 학습하면 병업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나도 법공부를 하자. 병업의 상태가 소실되면 ‘야! 대법에서 말한 것이 참말이었구나.’ 하고 생각하며 병업 시간이 길어지면 ‘대법이 그렇게 대단한데 무엇 때문에 아직도 병이 제거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한 마디 우스갯소리를 하는데, 젊은 처녀들은 늘 미용하기를 좋아하며, 피부가 좀 희게 변하고 좀 좋아지고자 한다. 내가 말한다면, 당신이 진정하게 성명쌍수의 공법을 연마(煉)하면 자연히 이 일보에 도달할 수 있으며, 보증하고 당신은 미용할 필요가 없다.”(《전법륜》)고 말씀하셨다. 나는 내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관망하는 태도로 대하면서 ‘이것이 정말 될까’ 하고 생각했었다. 나는 마치 자신을 대법 밖에 놓은 것처럼 보인다. 마치 대법이 정말로 법에서 말한 것처럼 그럴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법을 실증하는 시기에 처해 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자기를 통해 세인들에게 대법은 정확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임을 실증하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대법을 속인들에게 펼쳐 보이는 무대가 되어야 한다.(이것은 개인의 깨달음이므로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찌 반대로 대법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대법의 진실성을 실증하도록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수련과정 중에 옳지 않은 상태가 나타나면 우리는 반드시 주동적이며 적극적으로 그것을 부정하고 그것을 배척하고 자신을 바로 잡고 자신으로 하여금 법에 용해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를 통해 세인들로 하여금 대법이 우리 몸에 펼쳐낸 아름다움을 보게 하며 세인들로 하여금 대법은 정말로 말한 것처럼 그대로 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점을 소홀히 한다면 자신이 수련하는 과정에서 시시때때로 피동적인 상태에 처하게 된다. 이것이 낡은 세력의 틈을 타게 되면 자신의 수련 중에서 줄곧 꾸준히 정진할 수 없게 된다.

자신에게 이런 잘못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나는 수련 중에서 반드시 이런 부정확한 태도를 시정하는데 주의해야 한다. 법공부와 연공을 중시하고 되도록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3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

비록 자신의 이 인식이 정확한지 또한 다른 동수들에게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자신의 얕은 인식을 써내어 다른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바르지 않은 곳이 있다면 삼가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7년 1월 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7/1/7/1463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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