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타인을 위한다”에 대해 인식한 점

글/ 대륙대법제자

【명혬 2006년 12월11일] 주위 동수들은 나에게 법을 잘 깨닫는다고 하지만, 최근 한동안 나도 모르게 과시심이 비교적 중하여 나자신을 높이 보는 과시심이 생겼다. 항상 내가 그 한 층에서 깨달은 법리를 남에게 강제로 주입하려 했고, 남들에게 내가 말한 것에 대해 찬성하게 하는 동시에 가끔 동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의 부족점을 찾으려고 했다. 후에 더 심해져서 수련생을 만나기만 하면 상대방의 집착심을 찾아 냄으로써 자신이 깨달은 것이 좋다고 과시하는 지경에 달했다. 집에 돌아온 후 이런 상태가 좋지 않은 과시심이고 환희심, 명을 구하는 마음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것이’ 나오기만 하면 그것을 제거했지만 여전히 아주 강력했다. 그리하여 나는 그 뿌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줄 알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최근 며칠 동안 3층에 사는 이웃이(나의 집은 5층) 나를 찾아와, 내가 빨래를 짜지 않고 널어서 그녀의 집 베란다에 오래전부터 물이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1층에서 4층에 사는 이웃들은 모두 우리 집에 두 살짜리 어린아이가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양해하라고 하여 찾지 않았다고 했다. 그 당시 나는 내심으로 불만이었을 뿐 그것이 사부님의 점화임은 깨닫지 못했다. 또 이틀 정도 지나자 수련생이 우리 아이를 데리고 그녀의 화장실(수련생은 가게를 하고 가게는 그녀의 집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에 있으며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로 갔다.

그때 동수의 부모가 들어오면서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어찌하여 장애인에게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합니까?” 수련생은 소아마비라서 쌍지팡이를 짚고 다니다가 수련 후 쌍지팡이를 버리고 부목을 대고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이 우연이 아님을 알고 한 동수와 교류를 했다. 수련생은 “당신이 남을 위해 생각하지 않은 것이예요.”라고 했다. 나는 그 당시 “아닌데, 나도 동수에게 아이를 데리고 가라고 하지 않았는데.” 라고 생각했다. 얼마 안 가서 수련생이 나의 아이를 데리고 들어왔을 때 동수에게 물었더니 그녀는 이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에서 남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 당시 가게에 있던 다른 한 동수 역시 일부 실예를 들었으나 나는 대수로와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부님께서 이렇듯 애타게 점화해 주셨고 심지어 그렇게까지 명백하게 점화해 주셨지만 나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니 정말로 부끄러웠다. 오늘 아침에 가부좌할 때 비로소 한 점을 깨달았고, 이 문장을 쓰면서 비로소 크게 깨닫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정말로 시시각각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우리의 곁에 계시며 우리를 이끌어 매 한걸음을 걷고 계신다.

나는 이전에 정공을 연마할 때 반시간을 억지로 견지하고 또한 반가부좌를 했다. 오늘 아침에 가부좌할 때 단번에 알게 되었는데 나를 이렇게 오랫동안 교란한 과시심, 환희심, 명을 구하는 마음, 또 타인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심 전부 그 낡은 우주의 위사위아의 본성에서 기원된 것이었다. 이런 마음 배후는 모두 이기적으로 자신을 위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이런 마음이 나올 때 첫 일념은 모두 나는 어떻게 어떻게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

만약 정말로 사부님의 말씀대로 한다면, 문제에 부딪힐 때 우선 이 일이 남에 대해 상해가 없을가를 생각하고 남이 감당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면, 마음 속에 ‘나’가 없으면 진상을 알릴 때 또 이것 저것을 두려워할 수 있겠는가? 동수 사이에 그렇게 많은 마찰이 있겠는가? 마음 속에 오로지 ‘나는 사람과 우주 중의 중생을 구할 것이다’란 일념만 있다면 두려움이 없어지고 사람의 각종 관념이 없어지는데 진정으로 순정해진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펼쳐 놓고 말하면 법은 매우 크다. 극히 높은 점에 이르러 말한다면 그것은 아주 간단하다. 왜냐하면 법은 마치 금자탑 모양[金字塔形]과도 같기 때문이다.” 인 즉 나는 사부님의 이 한마디 법리의 한 층의 내포(나 자신이 이 한 층차에서 깨달은 것)를 깨달았다. 만약 우리 매 개인이 어떠한 일에 부딪쳤을 때 첫 일념이 바로 상대방을 위한 생각이고 나의 이것 저것이 없다면 수련은 또 정말로 간단한 것으로서 어떤 난, 관들을 당신은 한 걸음에 지나갈 수 있다.

이런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가부좌할 때 다리가 어떻게 아플 것이라는 생각을 더는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일념은 바로 이기적인 염두이고 첫 일념이 바로 ‘나’를 생각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우리더러 하라고 하셨다면 조건없이 행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세 가지 일을 하라고 하셨고 세 가지 일 중에는 연공을 포함하지 않았던가? 그럼 나는 사부님께서 요구하신대로 할 것이며 연공도 할 것이다. 사부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면 무엇을 하고 머리 속에 이 일념을 채우고 조건없이 법에 동화되어 사부님께서 요구하신대로 해야 한다. 이 한 점에 도달했을 때 정말로 “유암화명유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다. 가부좌했을 때 다리는 더 이상 그렇게 아프지 않았고 마음도 차분한채로 앉아있을 수 있었다. 만약 우리가 모든 일에서 이 한 점에 도달한다면 수련은 또 정말로 아주 간단하다.

바르지 못한 곳은 동수들께서 시정해 주기 바란다.

문장완성:2006년 12월10일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12/11/144422p.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