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 대법제자 찡스(靜思)
[명혜망 2006년 12월 3일] 나는 비교적 법을 일찍 얻은 제자이다. 법을 얻을 때 병을 치료하려는 마음이나 혹은 그 무슨 좋지 않은 목적없이 마치 ‘아주 자연스럽게’ 대법을 수련하는 대문에 들어섰다. 법학습을 깊이 있게 하고 꾸준하게 연공을 하면서 신체의 변화가 매우 컸으며 고집스럽고 화내기를 잘 하던 옛날의 성격이 단번에 개변되었다. 그리고 늘 법을 배울수록 도량은 더욱 넓어지고 명쾌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문제에 부딪히거나 모순이 발생했을 때 모두 탁 트이게 보게 되면서 담담하게 볼 수 있었다. 법이 이처럼 좋으니 내가 후에 형성시킨 관념 하나를 더하여 나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것은 끝까지 걸어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는 ‘시종일관’, ‘하나의 축’ ‘한 갈래 길에서 끝까지 달려가다’이었다. 또 대법이 좋다는 것을 똑똑하게 알고 있는 그 힘이 나로 하여금 견정불이 하게 사부님을 따라 오늘까지 걸어오게 했다.
나는 닫혀진채 수련하고 있다. 정법노정의 추진과 더불어 내가 감당해야 할 자료를 만드는 책임이 중대해짐에 따라 하나의 마음이 슬그머니 나타났다. 그동안 이 마음을 쉽게 자각할 수 없었으며 나자신이 사부님과 법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 않다는 사실을 감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 자료를 만들면서 실수가 나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안을 향해 찾아보니 자신감은 자료를 만들 때 착오를 발생시킨 원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부님과 법을 확고히 믿지 못하게 하는 장애의 근원이었다.
11월 14일, 나는 소책자 하나를 다운로드 받아 바로 인쇄를 했다. 아주 빠르게 홀수 페이지 인쇄가 끝났고 다시 짝수 페이지를 인쇄할 때 그 진도가 홀수 페이지 보다 늦어진 것을 발견했다. 인터넷을 보니 페이지 수가 배로 증가해 있었다. 당시 기계를 멈추고 중복되어 나오는 것을 검사해야 했었지만 마음속으로 멈출 필요없이 절반만 인쇄하면 된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는 자료를 이미 2년 넘게 만들었는데 홀수, 짝수조차 잘못 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러한 자신감은 관념의 기초 위에 만들어진 것이지 수련의 일념이 아니었다.
아주 빨리 인쇄가 끝났으나 정리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러 갔다. 이튿날 자료를 정리할 때에야 비로소 페이지가 틀린 것을 발견하고 몹시 놀랐다. 어찌 이렇게 큰 착오가 나타날 수 있는가! 이전에 자료를 만들 때는 사부님께서 늘 점화하셨고 보호해 주셔서 큰 착오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이번에는 사부님께서 점화해 주시지 않으셨는가? 종이를 낭비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중생구도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누락이 어디에 있는가? 한 걸음, 한 걸음 안을 향해 찾았다. 기계를 멈추고 검사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인터넷을 멈추지 않았는가. 주요하게 나는 잘못할 수 없다고 자신했던 것이었다. 한 걸음 물러서서 말하면 사부님께서 점화하시겠지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틀린 이상 보완 할 수 있는가 보자. 인터넷 앞에서 나는 무의식 중에 9월 16일 페이지를 눌렀더니 갑자기 동수의 한 문장이 나의 눈에 들어 왔는데 ‘자료를 잘 만들지 못한 데 대한 견해’였다. 수련생은 어떻게 이 문제를 보는가? 문장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펼쳐보니 일체는 정상이었다. 800부를 인쇄하였을 때 환희심이 나타났다. 결과 그 중 20여 페이지는 두 면이 다 번지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양면에 모두 인쇄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고 난 뒤 나는 매우 기뻐만 했을 뿐 수련생이 있는 층차와 깨달은 도리에 대해서는 깨닫지 않고 다만 간단하게 이번에 구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정성껏 사부님께 향을 올리고는 사부님께 잘못 인쇄된 자료가 정상적으로 회복되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하지만 좀 지나도 동수와 같은 신비로움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 때 나의 마음은 정말 사부님을 썩 믿지 못했다. 심지어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부님을 원망하는 마음까지 생기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머리를 돌리고 조용히 처음부터 다시 정리하면서 안으로 찾아보니 내가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왕왕 어떤 사람들은 깨닫지 않는다라고 하셨던 그런 사람인 것이었다. 몇 번이나 되풀이 하면서도 그냥 잘못 깨닫곤 했다. 사실 확실하게 말하면 그러한 관념은 수련인이 법속에서의 ‘깨달음’이 아니라 속인 관념과 외래 교란이 나의 대뇌에서 작용을 일으킨 것이었다.
예를 들면 문장을 볼 때 동수의 문장에서 사부님의 ‘구함이 없으면 얻어진다.’ 이 층의 법리가 펼쳐주는 신기함을 보아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환희심이 나타나 사부님께 요구하는 유위적인 집착이 나타났다. 자료를 잘 만들지 못한 후 구하려는 마음을 품고 도리어 사부님께 누락을 보완해달라고 요구했으니 착오를 모두 사부님께 밀어놓고 사부님께 하시라고 한 것이 아닌가? 나에게 동수와 같은 그런 신기함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 자신이 정말 수련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는가? 사부님께서 만약 모두 해주시면 우리 자신들이 수련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의 머리에서 법을 공경하지 않는 위험한 생각이 튀어 나옴을 승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대법제자로서 사부님과 대법을 확고히 믿지 못한다면 정말 너무 위험한바 자신이 깨달아야 될 때가 된 것이다. 자료를 잘 만들지 못한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끝내 매우 깊게 숨겨져 있던 사부님과 법을 확고히 믿는데 대한 장애의 근원을 찾아내게 되었는데 이것은 곧 사람의 관념, 과거 어떤 상태의 관념상에서 비롯된 자신감 때문이었다. 나는 더욱더 법공부를 잘해서 강대한 정념을 발하여 철저히 이런 교란을 깨끗이 제거하고 법에서 견정불이하게 사부님께서 나에게 안배해 주신 길을 걸어 갈 것을 다짐한다.
개인의 깨달음으로 층차의 제한이 있기에 동수들이 자비하게 시정해 주시기 바란다.
문장완성 : 2006년 12월 3일
원문위치: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6/12/3/14362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