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11월30일] 2006년 9월에 나는 번화한 해변도시를 나와 고향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첫번째로 도착한 곳이 바로 천리 밖에 있는 동북 모 현의 시골이었다. 생활은 가난하였고 사업도 없이 주로 농사를 생계를 유지하였다. 나는 이곳에 와서 그들의 단체법학습에 참가하였다.
이 법공부 팀은 제일 많을때도 열 사람이 채 안 되었고 적을 때는 5~6명 정도였다.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은 50세가 넘는 부녀자였다. 그들은 오랜 기간동안 법공부를 중단한 적이 없으며 적게할 때는 하루 저녁에 한 강의씩 학습했으며 매시간 정각 발정념을 한다. 그들의 협조인은 날씨가 좋건 좋지 않건, 어떤 조건이든지 상관없이 그 주간의 명혜주간을 반드시 당일로 동수들이 볼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사부님의 신경문과 특수한 자료 등은 일분 일초도 지체없이 언제나 제때 보내준다. 자료가 오면 그들은 먼저 법공부와 발정념을 한 다음 서로 분담하여 잠깐 사이에 모두 배포한다.
어느 동수의 집에나 모두 대법 표어가 있고 집집마다 사부님의 초상을 모신다. 해마다 구정을 지낼 때면 주련에 쓰는 내용은 모두 대법에 관한 내용이며, 골목마다 길가의 전봇대마다 대법표어와 진상자료를 수시로 볼 수 있다.
나는 삼퇴에 관한 상황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98% 이상이 모두 탈퇴했다는 그들의 긍정적인 대답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또 외지로 나가서 삼퇴를 권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아마 이 숫자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곳을 떠난지도 벌써 석달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표는 100%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속인들은 자료를 다투어 보려하며, 못쓰게 만들거나 버리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또 어떤이는 대법속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명혜주간을 새것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그들은 말하기를, “이 모든 것은 대법제자들의 피와 땀, 생명으로 바꾸어 온 것이며 후세 사람들에게 남겨 놓으면 장래의 사람들이 보고 도움을 받게될 것이다. 이것은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수련 노정을 기록한 것이다.” 나는 듣고나서 몹시 감동되었다.
또 한 수련생이 있었는데 60여 세이다. 유리실소한 지 이젠 6년이 넘었다. 그녀에게는 원래 사업이 있었고 또한 가게가 있어 늙으막의 생활을 겨우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박해가 시작된 후 사업과 가게를 잃게 되었지만, 그녀는 흔쾌히 대법 수련을 선택하였고 결국엔 핍박으로 타향으로 떠돌게 되었으며 고독하고 청빈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겨울이면 손이 얼고 얼굴도 얼어 부었다. 그녀는 성냥마저 사기 아까워했다. 아껴 먹고 아껴 쓴 돈을 모두 대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리는데 썼다. 동북의 섣달은 영하 30도를 넘어 물방울 마저 바로 얼음으로 변한다. 그녀는 아무리 엄동설한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자료를 배포하고 표어를 쓰며 현수막을 내건다. 지금도 벽에 그녀가 쓴 ‘파룬따파 하오’라는 표어를 볼 수 있다. 자료가 없으면 스스로 쓴다. 내용은 모두 비교적 훌륭한 자료 중에서 인용한다. 몇 권이나 되는 편지지를 썼고 얼마나 되는 크레용을 썼는지 그녀 자신도 모른다. 그녀는 대법제자가 응당 해야할 일을 묵묵히 해 나가고 있다. 그 자신은 짠지만 먹는다. 여름에 푸른 나물을 뜯어다가 말려 겨울에 짠지를 해 먹으면서 지금까지 일 전도 낭비하지 않았다. 내가 그녀에게 심득체험을 쓰라고 했더니 그녀가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한 것은 내가 응당 해야할 일을 한 것 뿐이예요. 수련을 잘 한 사람들과 비교하면 난 너무나도 뒤떨어져 있어요.” 그녀는 몇 글자 밖에 몰랐었는데, 지금은 대법의 모든 경서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또 이런 시골이 있다. 이곳은 지금까지도 기름을 넣고 다니는 차 한 대도 없고 오토바이조차 없다. 산길은 다만 소수레와 멜대를 메고 다니는 사람 뿐이다. 이 고장에 전기가 들어온지도 아직 5년이 채 안 된다. 이곳에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대법을 배운 사람은 적지 않다. 대법이 박해 받은 지 7년이 넘었지만 이곳은 평안 무사하다. 대장 등이 모두 대법을 수련하고 있으며 촌 지도자들도 대법이 좋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나는 이곳의 한 동수집에 늘 가는 손님이다. 아들 둘은 대학을 졸업하였지만 집 식구들은 여전히 세 칸짜리 흙집에서 빈궁하게 살아가고 있다. 2001년 여름 무렵, 큰 아들이 집에 돌아와서 저녁에 가부좌하고 앉아 있을 때 뱀 한 마리가 뒷 창문으로 들어와 그의 몸으로 기어 올랐다. 그는 그것을 떼어버리고는 연공을 계속하였다. 한번은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데 바람이 너무 센 것 같아 한 손으로 문을 닫으려 했으나 닫히지 않아 문턱을 만져보니 뱀 한 마리가 문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뱀을 밀어 버리고는 계속 연공하였다. 두 아들이 모두 대법을 수련을 하였는데, 박해를 받아 불법(不法)으로 체포되어 큰 아들은 중형을 판결받았고 작은 아들은 풀려나온 후 부득불 타향으로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들은 채소와 옥수수, 콩 등을 얼마간 팔 수 있었는데, 무엇을 팔던 간에 모두 아주 멀리까지 멜대로 지고 가야 한다. 산을 오르고 골짜기를 지나 한 진에 가서 팔아야 하는데 한번 팔아보았자 겨우 몇 원, 십몇 원을 벌 수 있어 옥수수 전병에 짠지를 먹고 끓인물을 마시면서 살아가고 있다. 한번은 길에서 배를 가득 담은 광주리를 지고 걸으면서 한편으로 소리치는 것을 보았다. “배 사세요~” 이 집의 남자 수련생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아주 먼 곳에 가서 삯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 그들은 약간의 쉴 시간도 없으며 밤까지 바쁘게 보낸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을 잊지 않으며 밤이 아주 늦어서야 휴식한다. 네 번의 발정념 시간마다 빠짐없이 발정념을 하고 법공부와 연공은 모두 밤에 한다. 농사일이 한가할 때면 단체법공부를 하고 농망기에는 그들 스스로 시간을 배치한다. 어떤 때는 아주 멀리까지 가서 자료를 배포하는데, 어떤 날은 온 하루 저녁을 배포하고는 날이 밝은 다음에야 돌아오고는 한다. 그들은 진수제자가 응당 해야할 일체를 하고있는 것이다.
하루는 내가 외지로부터 그의 집에 도착했을때는 오후 한 시가 넘었다.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찾았지만 옥수수 가루 전병 밖에 없었고 짠지마저도 없었다. 원래 그들의 점심식사는 끓인 물에 전병이었던 것이다. 나는 책을 찾아 법공부를 하려고 서랍을 열었더니 안에는 종이돈 한 묶음이 있었다. 1 전 짜리도 있었고, 10 전, 20 전 그리고 1 원 짜리도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가슴아프게 울었다. 그들은 이렇게 모아서 진상하는데 쓰는 것이다! 그들은 달마다 자료점에 약간의 돈을 보낸다. 또 불법(不法)으로 감옥에 갇힌 동수들에게 돈을 전달해주고 옷을 부쳐 보내거나 유리실소한 동수들에게 생활비를 제공한다. 더욱 내가 생각지 못한 것은 그들의 집은 원래 소형 자료점인 것이었다. 이 몇 년이래 그들은 모두 점조직이므로 밤에 자료를 만들 때 일체 소모품 등의 절대 다수 물건들은 모두 그들 자신이 아껴 모은 돈으로 산 것이며, 산을 넘어 메오고 만든 다음에는 또 밖으로 지고 나가고,…… 지금 상황은 조금 변화가 있기는 하다.
이상은 다만 몇 가지 예를 들어 이야기했을 뿐이다. 이것은 다만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한 매우 많은 일들을 우리는 알 수 없다. 이러한 동수들을 보노라니 자신을 생각해 보게 된다. 오직 정진에 정진하도록 분발하고 노력하여 모든 마성(魔性)을 닦아버리고 정법 노정을 따라가야만 할 것이다.
문장발표 : 2006년 11월30일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6/11/30/143574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