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11월 11일】 얼마 전 한동안 나는 갑자기 자신의 과시심이 매우 심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과시하기를 좋아하고 허영에 빠져 있었는데 게다가 이것이 몹시 완고하게 표현되었다. 그것은 내가 사람들과 왕래하는 과정 중에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3퇴를 권하는 과정에서 체현되었다. 나는 반드시 그것을 없애버리기 위해 뿌리를 파고 또 팠다. 나는 이것이 자신이 성장 과정과 매우 큰 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교육수준이 비교적 높아 석사까지 공부했다. 그러나 중공 악당의 교육 체제하에서 매우 많은 학교에서는 모두 주입식 교육을 채택하고 매우 많은 것을 기계적으로 외울 것을 요구하여 시험을 치렀다. 이외에 나는 성적이 우수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늘 선생님과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아왔다. 오직 답을 알기만 하면 어른들은 이 아이가 총명하다고 칭찬했다. 장기간 이렇게 내려오면서 지식을 영광으로 여기고 알긴 하지만 실질은 모르는 사유방식이 양성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것도 알고 저것도 알지만 그러나 앎이란 표면에 머물러 있을 뿐 아주 천박했다.
실제 일에 참가한 후 나는 비로소 자신의 실천 능력이 매우 부족함을 발견했다. 특히 나의 사유양식은 항상 일종 이론화의 방식에 빠져 들어가 매우 간단한 문제도 실천을 통해 해결할 수 있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물어 능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나는 오히려 참고서를 찾으려고 생각했다. 그 결과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만 하나의 문제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 과시심은 또한 내가 노교소에 있을 때 사오(邪悟)를 초래했다. 2001년 막 노교소에 들어갔을 때 나는 일찍이 그런 사오한 사람들을 끌어내리라 생각했다. 그 사람들이 나를 찾아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나는 모두 회피하지 않았고 늘 그들과 논리를 말했다. 낡은 세력도 나의 집착심을 보고 그것도 늘 나를 칭찬하면서 당신의 층차가 높고 소질이 높아 문화가 낮은 그런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하면서 나의 허영심을 만족시켰다. 그리고 그것들은 일부 단장취의(斷章取義)한 말을 이용했다. 특히 그것들은 원만에 집착을 포기하라는 사악한 논설을 주장하면서 나에게 아주 큰 미혹을 조성했다. 나는 분명히 매우 많은 동수들이 시간에 대한 집착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또 상생상극의 이치를 제출하면서 “이 사람들이 원만하려면 모두 고험을 거쳐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수련자들을 고험하는 것은 바로 보다 높은 층차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이런 왜곡되고 사악한 이치와 논설에 고혹되어 나는 미혹에 빠졌고 종일 이런 이론을 염두에 두고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생각이 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사부님의 후기 설법을 많이 학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심지어 나를 격려하면서 용감하게 자아를 내려 놓아야 하며 원만에 집착하는 사심(私心)을 내려놓고 걸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나는 사오(邪悟)로 걸어가게 되었다.
노교소를 나온 후 사부님의 경문 《길》을 보니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과거 역사상에서 일반적으로 정상적 수련에서 그러한 부(負)적인 생명들은 확실히 수련자 개인이 능히 원만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시금석(試金)의 역할을 하였다. 모래라면 반드시 도태되어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 다른 것은 천체(天體) 중에서 정법(正法)을 하고 있고 대궁(大穹)은 재조합 되고 있으므로, 대법에 대한 모든 소위 고험(考驗)은 모두 정법(正法)을 교란하고 있다. 또한 박해에 참여한 것은 또 모두가 대법에 대한 파괴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비록 낡은 세력이 과거 역사상 개인수련에 대해 한 일체는 능히 일정한 작용을 할 수 있었으나, 만약 이러한 수법을 정법(正法)중에 사용한다면, 비단 대법 요구의 표준에 도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정법을 놓고 말한다면 이는 심각한 교란과 파괴이다.”
그 밖에 나는 자신이 늘 일종의 이론을 변론하는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아는 것에 만족하고 자신의 칠정육욕(七情六慾), 각종 집착심은 도리어 진정으로 닦아 버릴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수련한 것이 높다고 여기고 터무니없이 원만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라고 큰 소리를 쳤다. 사부님께서는 《무엇을 수련이라고 하는가》 중에서 말씀하셨다.
“출가한 사람은 경서를 읽음에 노력하고 경서의 얼마를 장악한 것을 원만하는 방법으로 삼았다. 사실 석가모니 부처, 예수, 노자를 포함하여 세상에 계실 적에 경서가 전혀 없었으며, 오로지 실속있게 수련할 뿐이었다. 또한 사부님이 이야기한 말은 수련을 지도하기 위하여 한 말이었다. 후세사람들은 그들이 이야기한 말을 회억하여 책으로 썼으며, 경서라고 이름을 지어 천천히 불학(佛學), 법학(法學)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사부님들이 세상에 계실 적과 같이 진정으로 실속있게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 경전, 학문을 학습함을 수련으로 삼고 있다. ”
이 글을 써내는 이유는 단호하게 이 집착심을 닦아 버리는 동시에 일부 노교소, 세뇌반에 있는 동수들을 일깨워 이론의 변론 중에 빠져 이로 인하여 사악에게 빈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자신이 진정하게 착실히 수련하고 있는지 보아야 하며 진정하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에 따라 하고 있는지 보아야 한다.
문장발표 : 2006년 11월 1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6/11/11/1421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