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2006년11월4일] 최근에 여러 번 박해를 받았던 일부 동수들을 만났는데, 이러한 동수들과 어떻게 교류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나의 인식을 이야기 하겠다.
먼저 내가 넘어졌었던 경과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수련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로 기억 된다. 한 법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내가 아는 동수의 소개에 의하면 이번에 온 동수들은 모두 몇 번씩 감옥에 들어갔다 온 사람들로서 대단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법회에서 동수들은 각기 자신들이 불법수감되었을 때 어떻게 뛰쳐 나왔는가에 대해 교류를 했는데 그 정절은 참으로 사람을 놀라고 아슬아슬하게 하였다.
그들의 ‘기세 드높은’ 행위는 나의 부러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 사상은 법에 부합 되지 않지만, 그 당시 나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더러 그후로도 한동안 법에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진상을 하던 중 악인의 신고로 불법으로 납치를 당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바로 나에게 정념이 없었고,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법리상 인식이 명석하지 못하여 인위적으로 구한 마난이었던 것이었다
그 후,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하여 불법수감은 근본상 그 무슨 자랑할만한 일이 아니며,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반박해 속에서 수련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사부님은 《2004년미국서부법회에서의 설법》에서 말씀 하셨다. “나 이 사부로서 말한다면, 정법 중에서 이번의 사악한 박해를 이용하여 대법제자를 고험하는 것을 나는 절대로 승인하지 않는바, 대법제자들도 박해를 감당함으로써 높게 수련할 수 있다는 착오적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한다. 대법과 대법제자는 박해를 반대하는바 이 역시 대법제자로서의 책임이다. 법에서 수련하지 않고, 박해를 감당하는 자체로는 더욱 높게 수련할 방법이 없으며 대법제자의 표준엔 더욱 도달하지 못한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 하셨다. “우리 어떤 수련생은 병원에 가서 남의 주사 바늘을 몇 개나 구부려 놓고 마지막에 그 약을 모두 뿜어버렸어도 찌르지 못했다. 그는 알게 되었다 ― 아이쿠, 나는 연공인(煉功人)이잖은가, 나는 주사를 맞지 않겠다. 그는 그제야 생각나서 주사를 맞지 않았다.” 법가운데서 만약 우리가 처음부터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고 낡은 세력의 배치를 부정하였더라면 불법 수감이란 존재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나와 같은 관념을 가진 사람이 그때 아주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집안의 가족 세 사람 모두 수련을 하였는데 부모들은 모두 몇 번씩 박해를 당했다. 한 차례 교류를 하면서 아이가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위덕이 없어요,! 상세하게 교류를 해보니, 수련생은 부모로서 법으로 그를 지도해 주지 못하고 언제나 자신이 정념으로 고비를 넘긴 경력만 이야기 하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매번 고비를 넘길 때 자신이 어떻게 법에서 제고하였고, 그로인해 사부님이 도와 주셔서 그 고비를 넘을 수 있었다는데 대해서는 이야기 해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경력을 교류하기만 좋아하고, 법리는 아주 적게 혹은 아예 말하지 않는 동수의 주위에, 만약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하는 수련생이 있다면 그 영향은 상당히 큰 것이다. 만약 이러한 수련생이 한 지역의 책임자라면, 그렇다면 그에 수반되는 위험은 더욱 클 것이다.
예전에 한 동안 어느 구역에 갔었는데, 그 곳 몇몇 책임자들은 박해받은 일이 특별히 많았고 그동안 받은 혹형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경력을 들어 보면 그야말로 놀라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경력을 말할 때 법은 아주 적게 말하며 법에서의 인식은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주변 동수들 가운데 두 가지 상황이 나타나게 하였다. 일부분 사람들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생각하게 한다. 그마저 그렇게 많은 것을 감당 하였는데 내가 되겠는가? 일부분 사람들에게는 의뢰심이 생겨나서 생각을 한다.
그가 그렇게 많은 난을 뚫고 나올 수 있었으므로 무슨 일이든 그에게 물어서 하자. 그래서 무슨 일이든 모두 그를 바라본다. 여러 사람은 날마다 함께 법공부를 하는데,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반나절이나 읽었다고 하지만 무얼 읽었는지 모른다. 문제를 만나면 함께 교류한다 하지만 법에서 어떻게 말했는가는 말하지 않고, 도리어 자신이 이러한 문제에 부딪쳤을 때 어떻게 했는가만 말하여 문제에 부딪히면 법을 생각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법은 법대로이고 일은 일대로 되어 버린다. 그러다보니 일이 생기면 곧 동요하고 곧 두려워 하게 된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그(그녀)의 인식이 법이 아니며, 그의 경력은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가 한 말대로 했으니 어찌 위력이 있을 수 있겠는가?
사부님은 《전법륜》중에서 말씀 하셨다.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투철하게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마땅히 법에 입각하여야 하고 이래야 비로소 우리를 움직일 사람이 없으며 ‘뿌리’가 진정으로 있게 된다.
오직 법리를 통해 교류해야만 비로소 우리를 교훈 속에서 더욱 성숙되게 할 수 있으며, 우리를 시시각각 법으로 가늠하게 하여 문제에 부딪히면 법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오직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성숙해 질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깨우침이므로 부당한 곳이 있으면 동수님께서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06년11월4일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6/11/4/141617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