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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으로 수개를 대하자

글/산둥(山東)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10월 3일】
정념으로 수개를 대하는가 아니면 속인의 마음으로 수개를 대하는가 하는 이것은 하나의 엄숙한 수련문제이다.

어떤 수련생은 《전법륜》의 글자를 고치는 문제를 속인의 일로 혼동하고 엄숙하고 진지하지 못하며 마치 속인의 임무를 완수하는 식으로 대한다. 어떤 수련생은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데 특히 이미 고친 글자를 다시 고쳐야 할 때는 마음이 편치 못한 감각을 느낀다.

글자를 고치는(改字) 과정의 실질은 사부님께서 정법 중의 수요에 따라 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법제자로서는 법을 실증하는 동시에 대법제자가 수련하고 대법에 동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에 대한 당문화(黨文化)와 변이된 문자의 영향은 너무나 심하고 우리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전통문화는 너무나 적거나 심지어 어떤 것이 전통문화인지도 뚜렷하지 않다. 어떤 때는 문자 상으로도 맞는지 틀리는지 정(正)인지 사(邪)인지조차 뚜렷이 구분하기 어려운데, 이는 우리로 하여금 대법을 인식하는데 간격과 장애를 조성하였다. 개인적인 이해로는, 우리가 오늘날 사부님을 따라 글자를 고치는 것은 사실 또 이런 것들을 깨끗이 제거하는 것으로 사부님의 법의 요구에 따라 순정(純淨)한 심태로 가서 한다면 모두 대법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고 제고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변이된 사상, 변이된 물질 역시 따라서 깨끗이 제거되며 사상경지 또한 승화될 것이다.

글자를 수개하는 것은 바로 미래에 대한 사부님의 선택이며 인류의 문자로 대법을 표현하기 위해 어떻게 고치고 어떤 글자를 사용하는가는 모두 사부님의 결정과 사부님의 선택에 따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대법의 수요이고 우주의 수요이며 미래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무엇을 선택하셨다면 여기에는 수많은 요소들, 여러 방면의 요소들을 고려하실 필요가 있으셨을 것이며 이는 우리 수련자의 각도에 입각한다 할지라도 알기가 몹시 어려운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중에서 “속인의 이런 층차, 이런 각도, 이런 사상경지 중에서는 진정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다. 하물며 우리들의 사존(師尊)께 대해서야 두말할 나위도 없다. 속인의 마음으로 수개를 바라보고 스스로 여전히 깨닫지 못하면서 더 나아가 사부님께 대해 추측한다면 이는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이것은 수개과정에 부딪힌 일부 문제들에 대해 법학습을 통해 깨달은 것으로 동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문장완성 :2006년 10월 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6/10/3/139195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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