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우리는 사부님을 백분의 백 믿는가?

글/대륙 충칭(重慶) 대법제자 난초(蘭草)

【명혜망 2006년 9월 23일】
한동안 줄곧 이런 한 가지 문제 즉, “대법제자는 사부님을 믿지만, 그러나 믿는 정도가 얼마나 깊은가? 백분의 백 믿는데 도달했는가? 나는 사부님을 믿는 정도가 얼마가 깊으며, 백분의 백 믿을 수 있는데 도달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사고 중에서 자신은 대법에서 9년 동안의 수련을 통해, 자신은 수련하는 마음이 반석처럼 굳건하며 사부님에 대해 백분의 백 믿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전 어느 작은 지역에서 친구의 생일축하 모임에 참석한 노년 수련생을 만나게 되었고, 그와 교류하는 중에 우리 수련인의 사부님과 법에 대한 믿음의 정도를 언급하게 되었다. 이때 나는 “거대한 난 속에서 박해받는 중에 지금 우리 얼마나 많은 수련인들이 사부님에 대한 믿음, 법에 대한 믿음의 정도가 백분의 백에 도달했습니까, 우리 많은 수련인들이 아직도 한 손에는 부처를 잡고 놓지 않고 다른 한 손에는 사람을 잡고 놓지 못하는데 바로 《금부처》 문장 속에서 부처를 믿는 두 사람과 같습니다. 사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왔으면 조만간 모두 한번은 죽기 마련이며, 기껏해야 좀 빨리 죽는 것에 불과한데 또 무슨 내려놓지 못할 것이 있단 말입니까?”

이때 이 노년 수련생은 아주 평온하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요, 오직 사부님을 믿기만 한다면 어떤 일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담담한 한 마디 말이 내게 매우 큰 진동을 주었다. 이 담담한 한 마디는 우리 두 수련인의 진실한 경지의 대조였으며, 사부님께 대하여 그녀가 백분의 백 믿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나는 무엇 때문에 기껏해야 한번 죽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지,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 순간, 나는 자신이 사부님께 대하여 백분의 백의 믿음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비록 표면상으로 볼 때는 믿는 것 같지만, 사실 반영되어 나온 것은 사람의 마음이었다. 비록 표면적으로는 생사를 내려놓은 것 같았지만, 사실 속인의 영웅심리가 반영되어 나온 것으로 사실 여전히 후천적으로 형성된 사람의 관념으로 일을 대한 것이지 수련인의 신념(神念)이 아니었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2001년에 우리에게 초상적인 능력과 신통을 주셨고 ‘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지금 우리는 아직도 신(神)처럼 되지 못하는가? 무엇 때문에 지금 우리 많은 대법제자들은 박해를 박고 있는가? 바로 사부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백분의 백이 되지 못한 것으로, 바로 우리가 아직도 이미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초상적인 능력과 신통을 가지고 있음을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자, 충족한 신념(神念)이 부족하기에, 신처럼 되지 못하는 것이다. 박해가 발생할 때, 만약 우리의 가슴이 오르내리거나 뛰지 않고 평온하고 상서로움을 유지하며 사부님을 생각할 수 있다면, 자유롭게 사부님께서 주신 우리의 초상적인 능력과 신통을 운용할 수 있을 것이며, 사람의 마음, 사람의 관념과 사람의 자아의식으로 대하지 않고 수련인의 신념(神念)으로 대할 수 있었다면, 사부님께서는 바로 박해를 사라지게 하셨을 것이며, 곧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부님에 대한 우리의 백분의 백 믿음이 진실하게 체현된 것이다.

이 노년동수와의 간단한 교류를 통하여, 나는 인식이 승화되었고, 경지도 제고되어 올라왔다. 그렇다, 진정하게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일에 부딪히거나 어떤 번거로움을 겪거나, 어떤 교란에 부딪히거나, 어떤 마난(魔難)에 부딪혔을 때, 만일 사부님을 백분의 백 믿을 수 있고, 법으로 자신의 일사일념(一思一念) 일언일행(一言一行)이 모두 부동한 층차의 요구에 부합되게 하며, 자신의 정념을 확고히 하고,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사람의 각종 관념과 자아를 내려놓고, 정념으로 자유롭게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초상적인 능력과 신통을 운용할 수 있다면, 그럼 정말이지 유암화명우일촌 (柳暗花明又一村)일 것이며, 어떤 일, 어떤 번거로움, 어떤 마난이든 모두 우리가 제고하고 승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대법제자의 반석같이 견정한 수련에 대한 신심(信心)의 내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사부님에 대한 백분의 백 믿음에서 오는 것이다. 대법제자는 견정하게, 백분의 백 사부님의 말씀에 따르고 법의 요구에 따라야만, 그래야만 진정하게 신(神)의 길에서 걸어가는 사람이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신처럼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장발표 : 2006년 9월 2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6/9/23/138392p.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