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순정한 마음과 엄숙한 태도로 대법서적을 만들어야 한다

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9월25일】 최근 우리 지역에 하나의 현상이 출현하였는데, 수련생이 사부님의 설법을 책으로 만들 때, 자기 판단대로 일부 책 표지에다 사부님의 법상(法像)과 비천(飞天)의 사진을 넣었으며 이렇게 책을 만드는 경험을 다른 동수들에게 알려주었다. 일부 지역에서 이런 일들이 발생했고 이렇게 만든 책들이 대량으로 동수들 사이에서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책을 만드는 문제에 대한 개인의 인식을 말하려고 한다. 우선 대법책을 제작하는 것은 하나의 비할 바없는 영광이고 신성하고 또한 엄숙한 일이다. 한 명의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하나의 순정한 심태와 엄숙한 태도로 이 일을 대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대(大)뉴욕지역법회에서의 설법과 해법》에서 명확하게 우리 대법제자들이 어떻게 책을 만드는 문제를 대할 것인지를 지적하셨다. 아래에 우리는 다시 한번 사부님께서 《대(大)뉴욕지역법회에서의 설법과 해법 》에서 말씀하신 두 단락의 설법을 읽어보자.

‘그러므로 우리 수련생들은 함부로 책을 만들고 스스로 주장하거나 혹은 그것으로 돈을 벌면 안 된다. 당신이 비록 돈을 벌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스스로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정법시기에 어떠한 누락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이며 이 기간에 일부 일은 주의해야 한다. 장래의 인류를 놓고 말할 때 사람의 도덕은 모두 제고되고 사람마다 준수하고 사람마다 모두 이렇게 하지 않고 사람마다 모두 감독할 것이다. 지금은 안 되는 바, 사악이 틈을 타고 있고 사람의 마음이 바르지 않음으로 우리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 책으로 돈을 벌려고 하면 더욱 안 된다.’

‘물론, 현재 중국대륙의 특수한 환경 하에서 수련생들은 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서라면 괜찮지만 원서의 문자 한 점도 움직이지 않음을 보증해야 한다. 중국 대륙 이외는 안 된다.’

사부님의 위의 설법 중에서 볼 수 있듯이 책을 만드는 일은 얼마나 엄숙한 일인가? ‘원서의 문자 한 점도 움직이지 않음을 보증해야 한다.’ 그럼 왜 어떤 동수들은 마음대로 ‘원래 책’에 물건을 더 가하는가? 어떤 동수들은 가능하게 괜찮다고 생각하며 사진을 넣으면 책이 더욱 아름답고 보기 좋지 않는가 라고 하며 자신의 관념을 주장한다. (이렇게 만든 책이 더욱 좋고 미관적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당신이 한 개의 사진을 넣으면 좋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도 자기가 설계한 책 표지가 좋다고 하며 역시 더 만들어 넣는다. 그럼 여러 사람들이 자기의 관념에 부합되고 자기가 인정하는 것이 좋다고 마음대로 더 가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만약 이렇게 원칙 없이 표준 없이 끊임없이 섞으면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게 만든 대법책은 모양이 다양하고 각양각색일 것이다.

기실 명혜망에서 공개적으로 발표한 대법저작은 모두 사부님의 심사와 동의 하에 인터넷에서 발표한 것이다. 책 표지, 내용과 사부님의 법상(法像)을 포함해서이다. 그런데 당신이 만든 대법책은 사부님께서 동의하신 것인가? 명혜망에서 공개적으로 발표한 것인가? 답안은 긍정적으로 아니다. 그럼 사부님께서 공개적으로 말씀하신 것을 당신이 어떻게 개변할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불성무루(佛性無漏)》에서 ‘나는 법 중에서 석가모니 교의 경서와 말법의 출현을 여러 차례 이야기한 적이 있다. 주로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말, 자신의 인식을 불법 중에 섞어 넣음으로써 조성된 것이며 이는 역사상 한 차례 가장 큰 교훈이다. 그러나 어떤 제자는 속인의 마음이 제거되지 않아 입재주, 글재주에 집착되고 과시심의 마성에 이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법을 파괴하고 있다.’

우리의 얼마나 많은 동수들이 침통한 대가를 지불하며 걸어온 길이었던가? 왜 아직까지도 우리는 깨닫지 못하는가!역사상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자기도 모르게 불법을 파괴하여 지금까지 그때 불법을 파괴하여 조성한 죄악을 갚고 있는가? 교훈은 심각한 것이다. 이런 작법은 후세 법을 전하는 과정에서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가? 미래의 법을 얻은 생명들에게 무슨 작용을 일으키겠는가? 우리는 정말로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을 보아야 한다. 어떤 관념으로 했는가? 정말로 법을 위하고 중생을 위한 생각에서인가? 아니면 자신의 애호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는 관념으로부터 행한 것인가?

사부님께서는 《불성무루(佛性無漏)》에서 우리에게, ‘나는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실 당신들의 이전의 본성은 자신을 위하고 이기적인 것을 위하는(爲我爲私)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을 함에 있어서 먼저 남을 생각하고 무사무아(無我無私),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성취 하도록 하라. 그러므로 당신들이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역시 남을 위하고 후세 사람까지 생각해야 한다! 대법의 영세불변(永世不變)을 위하여 생각해야 한다!’ 라고 알려주셨다.

이것은 책을 만드는 문제에 대한 나의 인식이다. 부당한 곳이 있으면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완성 : 2006년 8월17일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9/25/138455p.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