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싼둥(山東)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9월 14일] 동수 서로 간에 모순이 나타날 때, 모두 안으로 찾아야 하며 동수의 어느 면의 부족함을 보았을 때도 역시 자신은 어떠한 문제가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이러한 말들은 나와 동수들이 입에서 떠나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해 타이를 때, 법리상에서는 비록 ‘안으로 찾다’의 함의는 똑똑히 알고 있으나 진정 문제에 부딪칠 때 안으로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그처럼 뼈를 갈아내는 듯한 아픔과 베어 버리기 어려움, 자신을 바로 잡으면서 상해를 받고 싶지 않는 그러한 마음, 이때에야 비로소 집착을 버리는 것이 그처럼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떤 동수들은 자신의 그 어느 면이 부족함을 지적 받았을 때 말로는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매우 불편해하며 심지어는 일부 객관적 원인을 강조한다.
나는 늘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의 어떠한 좋지 못한 마음이 있는가를 본다. 왜냐하면 그 어떤 마음이던지 모두 수련인의 천적(天敵)이므로 그 마음을 버리지 못하면 그 마음이 나의 전진하는 발을 동여 놓는다.
때문에 수시로 법리로서 자신을 가늠하면서 무슨 문제가 나타날 때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 공부를 하며 법으로 집착을 없애버려야 함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아주 엄폐적인 그 마음을 발견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서 자신이 그것에 의해 좌우지 당해도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되어서는 도리어 그것에 따라 자신의 집착을 더욱 크게 하여 동수들 사이에 대치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그 매우 자사적인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곧 자신은 법리상에서 인식이 좋고, 세 가지 일을 잘 하고 있다고 느끼면서 자신에 대해 매우 만족해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표준으로 수련생을 가늠하고는 수련생이 자신의 표준에 도달할 것을 요구한다. 일단 수련생이 자신이 만족하는 정도에 도달하지 못하면 정말 동수에게는 약간의 장점도 없다고 인정하면서 눈으로 보는 것은 전부 동수의 부족한 것뿐이다. 그래서 동수에게 반드시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지적하는데 이때는 무엇이 ‘안으로 찾다’를 모르는바 수련자의 관용을 보아낼 수 없다.
지금 마음을 조용히 하고 생각해보니 우리는 모두 수련 중에 있는 사람들로서 그 누가 잘못이 없겠는가! 매 동수마다 모두 자신의 수련의 길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으로 동수들을 지도하여 잘하게 하는 것은 법으로서 결코 어느 동수의 표준이 아니다. 내가 자신의 사적인 것을 인식하게 되자 정말 내심으로 매우 부끄럽다. 사부님은 우리들에게 일마다 모두 법을 스승으로 모시라고 하셨다.
동수들 사이에는 홍대한 관용이 있어야 한다.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른 동수의 장점을 보고 배우며 동수의 부족을 포용할 줄 알고, 수련의 길에 따로 본보기가 없기에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한다. 앞으로 나는 꼭 자신에 대해 엄격히 요구하면서 진정하게 자신을 잘 수련하겠다.”
문장완성 : 2006년 9월 13일
문장발표 : 2006년 9월 14일
문장갱신 : 2006년 9월 13일 22:09:39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9/14/13777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