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8월 26일】몇 년 동안 늘 명혜망에서 동수들이 색욕심을 제거하지 않아 사악한테 틈을 타게 된 글을 보았는데 개인수련과 법 실증에 미봉할 수 없는 손실을 가져다 주었다. 비록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이미 설법 중에서 우리에게 색심의 해로움을 엄숙하게 경고했으나, 또한 한번 또 한번 이 방면에서 착오를 범한 적이 있는 수련생들이 고칠 기회를 주셨지만, 지금까지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끊임없이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 아프게 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천목이 열린 일부 수련생들은 이것이 다른 공간의 마의 교란임을 알고 있지만 수련생들이 일시적으로 청성하지 못해 큰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수련인으로서 어떠한 일이 나타나도 모두 안을 향해 찾아야 하는데 우리는 왜 교란 당했는가? 한 개의 올바름은 백 가지 사악을 제압한다! 한 개의 순정하고 금빛 찬란한 위대한 신에게 저층의 타락한 생명이 어찌 감히 접근하겠는가? 교란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 사상과 행위에 아직도 바르지 못한 요소가 존재하여 비로소 사악이 기회를 타서 들어온 것이 아닌가? 법 공부를 통하여, 그리고 전통문화를 보면서 나는 현대의 변이관념은 바르지 못한 요소가 존재하게 하는 원인 중의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전통교육을 받은 중국인은 모두 알고 있는데, 중국고대에서 유(儒), 석(釋), 도(道), 정통문화의 광범한 전파로 사람들의 도덕은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일거일동조차 사소한 것을 중시했고 남녀 인륜에 대해 요구하는 것은 더욱 엄격했다. 전통문화에서는 ‘남녀수수불친(男女授受不親)’ ‘부부는 손님처럼 서로 존경하고’ ‘색을 피함을 화살을 피하듯이 하고’ ‘고생을 같이 한 처는 버릴 수 없다’ 등등을 이야기한다. 옛 사람들이 자신의 수행 태도에 대해 엄격했음이 체현된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전통문화가 파괴됨에 따라 인류의 도덕은 쏜살같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오고 변이된 관념은 사람의 본성을 매몰했다. 가장 선명한 것은 바로 남녀가 만나면서 더 이상 몸을 깨끗이 하지 않고 거리가 없으며 아주 제멋대로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슨 과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도 이 환경 속의 한 개 분자이다. 온종일 큰 염색독 속에 빠져 보고 듣는 것이 모두 이런 것들이니 저도 모르게 오염되었지만 자신은 모르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속인사회의 거센 흐름[大洪流], 큰 염색독[大染缸]의 오염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옳다고 인정하는 많은 일들은 기실 모두 잘못된 것이다.”(《전법륜》) 수련인으로서 만약 우리가 자신을 진지하게 찾아보면 우리는 정말로 자신의 사상, 행위에 이런 변이된 것들이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바로 내가 알고 있는 수련생은 남녀의 사소한 것에 대해 주의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나이가 좀 많은 남자 수련생은 젊은 여자 수련생을 자신의 아이로 여기어, 가끔 기쁘면 저도 모르게 여자 동수의 어깨를 두드리거나 혹은 손을 여자 동수의 어깨에 올려놓는다. 젊은 남자수련생은 자신보다 좀 어린 여자 수련생을 자신의 여동생으로 여기고 만날 때 작은 예의를 주의하지 않는다. 비록 과분한 행위가 없지만 이미 전통의 도덕 요구에 부합되지 않는다.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온 속인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수련인으로서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수련하는 사람은 더 높은 이치로 요구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런 것들이 모두 좋지 않은 행위라고 의식하지 못하는가? 원인을 찾아보면, 나는 현대의 변이관념의 영향을 받아 자신을 방종하였다고 생각한다. 옛말에 “악이 작다고 방심하면 안 된다”는 말이 있고 또 “나쁜 일이 아직 경미할 때 더 이상 커지지 못하게 방지하다” 란 말이 있다. 모두 작은 일에서 주의하지 않으면 큰 잘못을 저지른다는 도리이다. 만약 우리가 평소에 남녀가 서로 만나면서 사소한 것에 조심하지 않고 자신의 행위를 절제함에 중시하지 않으면 시간이 길어져 변이의 요소는 천천히 강화될 것이다. 이로써 엄중할 때 우리는 통제 당하여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하고 큰 잘못을 저지른다.
정견망 2006년 7월 27일 한 편의《출가하면 스님으로 한다》의 불가이야기가 있었다. 석가모니 제자 대가섭의 수련이야기이다. 젊었을 때 용모가 출중한 대가섭은 다섯 가지 욕구가 싫어 한 마음으로 수련하려고 했다. 그러나 부모의 압박에 의해 할 수 없이 결혼했다. 신혼의 밤, 서로 마음속의 말을 나누었는데 신부도 한마음으로 수련하여 정과를 얻어 고해를 벗어나려고 함을 알았다. 그래서 이들은 명의상 부부가 되고 함께 수련하여 같이 정과를 얻기로 했다. 두 사람은 저녁에 윤번으로 잠을 자고 윤번으로 가부좌하며 수련에 정진했다.
어느 날 밤, 대가섭의 아내 묘선이 침대에서 자고 있고 대가섭은 가부좌를 갓 끝냈는데 독사 한 마리가 침대 앞에 있는 것을 보았다. 마침 묘선의 손은 침대 밖으로 나와있고 독사와 거리가 아주 가까웠다. 대가섭은 아주 조급했다. 다급히 옷으로 자신의 손을 감싼 후 다시 가볍게 묘선의 손이 있는 침대에 올려놓았다. 이 동작은 꿈 속에 있던 묘선을 놀라게 했다. 그녀는 조금 화가 나서 물었다. “무슨 일이예요?” 대가섭의 해석을 통해 그녀는 비로소 시름을 놓고 또 대가섭을 오해한 것에 대해 미안함을 표시했다. 바로 이렇게 그들은 함께 12년을 지냈고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냈다. 후에 그들은 함께 석가모니의 제자가 되었고 정과를 얻었다.
이 문장을 본 후 감촉이 아주 깊었는데, 대가섭이 색심을 움직이지 않고 자신의 경지를 엄격히 요구한 것에 깊이 탄복했다. 현재 대법제자들은 속인사회에서 수련하고 최대한도로 속인상태에 부합되었다. 비록 대가섭의 그러한 방식으로 수련하지 않지만 집착심을 버림에 있어 절대로 흐리멍덩해서는 안 된다. 절대로 속인상태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구실로 우리의 집착심을 덮어 감춰서는 안 된다.
또 일부 동수들은 남녀사이의 일을 이야기하기 아주 좋아하고 신이 나서 이야기한다. 수련생이 진솔하게 뉘우치면서 자신의 수치스러운 행위를 폭로한 것을 곳곳에 다니며 전하고 평가한다. 하여 그 동수에게 아주 큰 압력을 조성하고 무형 중에 정체에 간격을 형성했다. 이는 얼마나 강한 집착심인가! 왜 이런 일에 대해 이렇게도 흥미를 느낀단 말인가? 자신의 집착심에 부합되는 것이 있어 비로소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 속인 중의 정직한 사람들도 풍속을 문란케하는 일을 듣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는데 하물며 우리는 수련인이다.
색욕의 마음에 대해 아주 많은 사람들은 이성 사이에 비로소 이런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색심은 동성간에도 표현되는데 단지 우리가 주의하지 않았을 뿐이다. 예를 들어, 나는 여성의 미모를 좋아하는데 자신이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속인일 때 아름다운 여인을 보기만 하면 칭찬하고 동시에 또 몇 번 더 보려고 한다. 수련한 후 진상자료 속에 이쁘게 생긴 수련생이 있다면 더 많이 보려고 하였다. 가끔 사진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으면 마우스로 크게 확대하여 본다. 해외의 홍법사진에서 퍼레이드 대오 속에 선녀로 분장한 동수들 중에 이쁘지 않은 수련생이 있으면 아주 아쉬워한다. 어찌하여 이쁜 수련생을 찾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는 얼마나 좋지 못한 마음인가! 그러나 동성간의 좋아하는 것, 변이된 관념이기 때문에 나로 하여금 이것이 집착임을 인식하지 못하게 했고 최근에 와서도 인식하지 못했었다.
우리는 오늘날 이 만고에도 만나기 어려운 우주대법을 만났고 이렇게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직접 우리를 데리고 수련하시는데 이는 얼마나 큰 영광인가. 인간세상의 일체는 모두 가상이고 속인은 가상에 미혹되었으나 우리는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난세의 혼인연분은 업력 윤보의 일종의 체현인데 우리는 또 하필 그것에 얽매여 있단 말인가? 정에 이끌려 이지가 흐려지면 안 되고 더 이상 색욕에 교란당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세간에 온 목적은 진정으로 자신을 깨끗이 정화하고 반본귀진하여 자신의 사전의 서약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삼가 일시적 집착 때문에 자신의 영원을 훼멸시키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또 색욕심이 있는 동수들이 사존의 설법을 많이 배우고, 전통문화를 많이 보고 자신의 집착심을 정시(正視)하며, 자신의 사상과 행위를 바로 잡아 그것을 진정으로 제거할 것을 건의한다.
이 문장은 주위 동수들이 끊임없이 색욕에 교란당하는 것을 보고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인식을 써낸 것이다. 동수들과 함께 교류하고 정체적으로 제고하여 우리의 길을 더욱 바르게 걷자. 인식이 적절히 못한 곳이 있으면 자비하게 시정해주기 바란다.
문장완성:2006년 08월25일
문장발표:2006년 08월26일
문장갱신:2006년 08월26일 00:38:03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8/26/136431p.html